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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리 교회의 교회됨을 위한 회개와 선언

작성자콩세알|작성시간11.02.18|조회수136 목록 댓글 0

낮은자리교회의 교회됨을 위한 회개와 선언

 

현대는 자본에 의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이로 인해 정의는 늘 가진 자의 편에 서 있고, 평화도 힘 있는 자에 의하여 조정되며,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세계와 자연의 창조 질서는 무차별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안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진리와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온 민족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의 제자를 양육하고, 성도들 간에 사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이 세계에 다양한 모습으로 보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교회로 하여금 시대정신을 따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인데, 우리 교회는 오히려 이 시대와 영합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역사적으로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고 많은 교회가 신사참배의 강요에 굴복하였고, 군사독재를 비호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세계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악과 싸우고, 민족의 회심을 위하여 헌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생명과 희망의 공동체인 교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낮은자리교회는 우리는 현재 부끄러운 모습들이 무엇인지 묻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과 민족을 향하여 회개하며 교회됨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1. 낮은자리교회는 어떤 직분(職分)도 신분(身分)화 하지 않습니다.

과연 누가 성직가이며, 목회자입니까?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동등한 신분(身分)을 가집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란 구별된 개념은 본래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이며, 서로를 ‘보살피는 자’입니다. 모든 직분(職分)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성령의 다양한 은사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집니다. 그 중에 목사는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직분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별을 스스로 조장하였고, 목사를 “성직자” 혹은 “목회자”라고 부름으로써 특정 직분을 신분으로 이해하는 오류에 빠져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에는 독단적인 교권중심의 성서해석, 배타적인 당회의 기득권 행사, 그에 따른 신도들의 무관심과 자발적 자기 헌신의 결여 현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왜곡된 신분 구별을 철폐하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본래적 신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특히 목사의 권위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고 말씀에 바르게 봉사하는 것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함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와 성직자임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동등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

또한 섬김의 직분에 차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섬김에서 모든 자들에게 부여된 사도적 동등성을 존중합니다. 여기에서는 출신 지역, 인종, 학력, 성별, 재산, 신분과 같은 것들은 사도직 수행에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이 주시는 각양의 능력에 따라 섬기는 자유와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도적 동등성보다는 인종, 계층, 남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불평등을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가진 자와 남성, 그리고 인간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은사 이외의 다른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특정인에 의하여 사유화됨으로써 세습이 관행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습니다. 여성이 교회의 섬김에 참여하는 영역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섬김의 사도적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차별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따라 민주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교회 전반의 의식개혁과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가 솔선하여 사회적으로 약한 자, 소외된 자, 무력한 자들이 섬김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 낮은자리교회는 이웃과 함께 하는 성찬과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웃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이 역사 속에서 만나는 자리이며, 죄 용서의 은총을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예배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기억을 통해 개인과 역사에 의해 저질러진 죄악과 아픔을 고백하며,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예배는 역사 가운데 소외되고 삶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배에서는 아무리 좋은 축제의 양식이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부활의 기쁨이 경험될 수 없으며, 자기 변화를 위한 회개 역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를 상실한 종교집회에 불과하고, 교회의 비역사성과 무책임성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가 민족의 아픔과 죄를 기억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예배는 민족의 역사 가운데 죄로부터 구원, 죽음으로부터 부활, 부름에 대한 헌신이 일어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참된 예배의 회복은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만찬은 바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말씀과 성만찬은 교회에 주어진 은혜의 통로입니다. 교회는 말씀 안에서 생명을 누리며, 성만찬으로 ‘성도의 사귐’을 나눕니다. 말씀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 교회는 말씀보다 은사를 앞세우고, 성만찬을 형식적인 절기예식으로 절하시키고 있습니다. 말씀보다 은사를 강조함으로 사람이 드러나게 되었고, 성만찬을 소홀히 함으로 하나됨의 정신조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특정인들의 권위주의적, 물질주의적 성공을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사유화(私有化)되고, 성만찬은 그 의미를 잃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달자에 대한 순종에서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형식적인 성만찬 행사에서 살아있는 성만찬 예배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성만찬의 회복을 통해 교회의 생명이 충만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말씀이 지시하는 진리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하며, 성만찬이 말하는 나눔과 하나됨의 정신을 실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3. 낮은자리교회는 시대의 소금과 빛이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 시대의 소금과 빛입니까? 교회는 세상 안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일하는 성령의 교제가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안에서 이루도록 보냄 받은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는 시대성을 넘어 민족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세속의 가치에 편승하며, 현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기조차 합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정의를 세우며, 사랑을 실천하라는 사명을 저버리고 있으며, 부패의 사슬에 얽매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 전하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기적 욕심으로 인해 세상을 향한 나눔과 섬김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비윤리적 과학주의와 천민적 자본주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용인함으로써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도 불의를 방관하는 집단으로 의심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자랑스럽게 전하며, 그리스도인 원래의 본분으로 돌아가, 세상의 악에 대항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분열된 민족의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자본과 과학기술이 파괴된 환경을 회복하고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는데 기여하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는 원래 하나임을 잊었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한 성령을 고백하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무조건적 통합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창조적인 화합입니다. 우리 가운데 분열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따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나누어짐과 갈라짐을 개성과 필연성으로 미화시키고 이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단간 화해시도에 대한 내부의 비난, 이 백 여개의 교회 분파, 부실한 신학교의 난립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교회 연합을 추구하는 가운데서도 자기확장과 기득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하나 된 교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연합 운동까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짐과 갈라짐에 대한 죄의 고백은 무엇보다도 기득권 포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조화를 통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교회는 각개의 지역 교회와 교단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자매 형제임을 고백하며, 끊임없이 연합해 나가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때에, 낮은자리교회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이와 같은 회개와 다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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