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대교구 : 곡성 성당내 감옥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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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박해의 발상지이자 수많은 교우들이 붙잡혀 와 갇힌 옥터
![]() 정해박해 때 이곳 곡성 성당은 객사가 있던 곳이며, 그 앞으로는 남원진관(南原鎭管, 종3품의 첨절제사가 그 관장임)에 속한 종6품의 절제도위(節蹄尉, 곡성 현감이 겸임하였을 가능성이 있음)가 지휘하는 좌·우의 군관청(軍官廳, 일명 將廳)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당고개에서 주모 사건(酒母事件)으로 교우들이 수없이 잡혀 와 갖은 옥고를 치렀던 곳이다. 당시 동헌 자리에는 경찰서가, 사창(司倉) 자리에는 군청이 자리 잡고 있다. ![]() 정해박해는 1827년 정해년 전라도 곡성을 시작으로 전라도 지역, 경상도 상주, 충청도와 서울의 일부 지역에 일어난 박해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전국적인 규모의 박해는 없었으나 신유박해의 마무리를 위해 반포된 <척사윤음>은 천주교 탄압의 법적 근거가 되어 1815년 을해박해 등 전국 각지에서 소규모의 박해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교우들은 이여진(李如眞, ?~1830, 요한), 신태보(申太甫, ?~1839, 베드로), 정하상(丁夏祥, 1795~1839, 바오로), 유진길(劉進吉, 용심, 1791~1839, 아우구스티노) 등을 중심으로 교회 재건과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 곡성에서 시작된 박해는 전라도 전역에 파급되면서 240여 명의 교우들이 체포되어 전 주 감영으로 이송되었고 이어 4월 22일(음) 전주 포졸들이 경상도 상주에서 신태보를 체포, 전주로 압송해 가자 이를 계기로 경상도에서도 박해가 시작되어 상주에서 5∼6개소의 교우촌이 습격 당하여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또한 서울에서는 4월 21일(음) 이경언(李景彦, 1790~1827, 바오로)이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충청도 단양에서는 경상도의 박해를 피해 유성태(劉性泰, 1789/1794~1828, 라우렌시오)의 집으로 피신해 온 교우들이 체포되어 충주로 압송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서울 등지에서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동안 500여 명의 교우들이 체포되었으나 전라도에서 이경언, 이일언(李日彦, 1767~1839, 욥), 정태봉(鄭太奉, 관명 만보, 1796~1839, 바오로) 등 8명이, 경상도에서 박보록(朴甫祿, 박경화, 관명 도항, 1757~1827, 바오로), 김사건(金思健, 1794~1839, 안드레아), 안군심(1774~1835, 리카르도) 등 6명이, 충청도에서 유성태 등 500여 명 중 15명만이 옥사 또는 처형당해 순교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배교하여 석방되거나 유배되었다. ![]() 전라 감사 이광문(李光文, 1778~1838)이 추위와 더위, 굶주림에 약한 인간의 나약성을 매우 교묘하게 이용해, 붙잡힌 교우들의 대부분을 배교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정해박해는 종식되었으나 피해가 가장 큰 전라도 지방의 교회는 거의 폐허되었다. ![]() ▒ 갇혀서 여는 (곡성성당 감옥터에서) <김영수> ▒ 피 걸고 사랑하는 일보다 더 진하고 아득한 향기 있을까요 한 점 순간을 태워 영원의 불꽃 밝히며 눈물 깊은 사랑으로 달리던 이들 여기 감옥터 빈 곳으로 돌아와 꽃들로 흐드러져 있습니다 햇살들 부서지며 장엄히 일어서고 바람들 소망의 가슴 찧어 선연히 피 흘리고 있습니다 나는 눈을 씻으며 갇혀서 얻는 자유 갇혀서 여는 하늘 바라봅니다 내 이제는 하늘 닿는 꿈에 갇혀 사랑의 초원 아득히 달려볼까요 영원의 언덕 황홀히 날아볼까요 ■ 찾아가는 길 ![]() ■ 순례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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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식탁에 평화를...







주 감영으로 이송되었고 이어 4월 22일(음) 전주 포졸들이 경상도 상주에서 신태보를 체포, 전주로 압송해 가자 이를 계기로 경상도에서도 박해가 시작되어 상주에서 5∼6개소의 교우촌이 습격 당하여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