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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21,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 이상훈 바오로 신부,함승수 세례자 요한 신부

작성자Lee Andrea|작성시간21.09.20|조회수453 목록 댓글 0

 

이상훈 바오로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큰 사랑을 이뤄 한몸같이 주를 섬기라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천주교회는

2021년 한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여 많은 신자들이 성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주신 믿음의 모범을 따라 살도록 초대하며,

특별히 한국의 모든 사제들이 성 김대건 신부님을 닮아 신자들을 향한 사목적 열정으로 불타오르기를 권고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종식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그 기세를 떨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신앙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많은 것에 불안한 것이 우리들의 현 상태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의 마음에 성 김대건 신부님이 쓰신 편지글이 큰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상황에서 신자들을 향해 편지를 쓰시는데, 그 편지 가운데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님들께! …부디 환난에 짓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서 뒷걸음치지 말고, 오히려 지난날 성인 성녀들의 발자취를 아주 많이살펴 이를 본받고 실행하여

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이며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하십시오”(21번째 서한, 마지막 회유문 중에서).

 

코로나19로 미사 참례와 기본적인 성사 생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많은 신자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체를 모시고 미사성제에 참례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이자 뿌리임을,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뿌리가 점점 약해지고 흔들리며 우리의 신앙이 위기에 처하게 됨을 절감하지만,

나약하기만한 우리는 이 같은 위기와 환난의 상황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뿐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성 김대건 신부님은 분명한 답을 제시 해 주십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말씀 그대로 코로나19라는 환난에 짓눌려 하느님을 받드는 일과

영혼을 구하는 일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지난날 성인 성녀들의 발자취,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성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한국천주교회의 순교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며 본받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한국 모든 사제들의 수호자이자 한국의 첫 번째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께서 우리의 작은 노력에 함께하여 우리의 삶을 축복해 주시고

하느님의 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부디 서러워하지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다가, 죽은 후에 함께 영원히 하느님 앞에서 만나

길이 영복을 누리기를 천 번 만 번 바랍니다.”



수원교구 이상훈 바오로 신부

2021년 9월 20일

 

**********

 

함승수 세례자 요한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라

 

5월부터 지금까지 계단 오르기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혀도, 장대비가 내려 나가기 귀찮아도 ‘날마다’ 하루 한 시간씩 꾸준히 계단을 오른 결과,

지난 몇 년간 늘 ‘다이어트’를 해왔음에도 꿈쩍 않던 체중이 빠지기 시작해 총 11㎏ 정도 살이 빠졌지요.

 

이 체험을 통해 어느 한 가지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겨우 체중 몇㎏ 줄어든 정도도 이렇게 큰 기쁨을 느끼는데, 만약 내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하고 행복한 삶을 선물로 받게 된다면 얼마나 더 기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려면

어떤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먼저 ‘자신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구원에 별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것들을 덜어내라는 뜻입니다.

좋아하고 원하는 것만 하려고 드는 나의 취향, 성격, 계획 등 자기중심적인 것들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예수님 중심의 삶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이는 절망이나 포기와는 다릅니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여름에 감나무가 덜 익은 열매들을 털어내듯이, 가을에 활엽수들이 그 많던 나뭇잎들을 떨구듯이….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꾸준함을 ‘날마다’라는 말로 표현하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청하듯이,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그 날 분량의 만나 만을 거두어들였듯이,

하루하루의 삶을 주님께 의탁하고 봉헌하는 과정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 삶은 십자가를 지는 행동으로 구체화 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생활에 동반되는 온갖 고난과 시련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편하고 쉬운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어렵고 힘든 길로 가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십자가의 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비효율적, 비합리적인 생활양식이 아닙니다.

구원의 길을 걷다 보면 중간에 높은 산과 깊은 강을 만나는데, 그렇다고 ‘천국’을 내버려두고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그냥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이 ‘어쩔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짊어진 채 힘겹게 끌고 가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지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원래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듯,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어 안고 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아프게 찌르고, 손해와 희생을 주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에

사랑과 순명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 성인들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신 분들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분들이 고난을 당하고 벌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분들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고통이 그저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단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본받고 싶다면 우리도 구원에 대한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그 희망은 신앙인다운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처럼 하는 이들은 그 마음가짐을 굳건히 가지기 어렵겠지요.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그리스도인답게’,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해야 마음속 희망이 굳건해집니다.



서울대교구 함승수 세례자 요한 신부

2021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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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요셉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복음 9장 23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오늘의 대축일은 우리에게 참된 용기와 위로를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모든 현상을 넘어 원리와 진리의 지혜를 찾도록 인도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믿는 이들의 선택은 훈련이고 교정이며 시험을 거친 것이지요.

도가니 속에서 금이 정제 정련되듯,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믿는 이들이 당신 뜻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천상적 지혜와 지식을 얻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을 제시해줍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복음 9장 23절).

 

먼저, 세상의 많은 것을 버린다 해도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갈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럴 진데, 자신을 버리는 일이 어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러기에 매일 우리는 자신을 비워내는 수련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피하는 게아니라 짊어져야 할 대상입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이 모든 일을 죽음으로 수행하신 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큰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이 단련의 기회요 순수하게 정련되고

정제되는 기회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 할 좋은 기회임을 잊지 맙시다.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어려워하며 떠나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요한 복음 6장 67절) 하고 물으셨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 같기도 합니다.

‘너희도 정녕 떠나려 하는가?’ 

많은 이가 떠나더라도 우리 신앙인마저 덩달아 떠나서야 되겠습니까?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6장 68절).

 

우리 모두 오늘 들은 독서 말씀들에서 힘을 얻어 순교자들처럼 믿음을 증거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지혜서 3장 2절-6절).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서 8장 31절.35절.38절-39절).

 

 

의정부교구 이영재 요셉 신부

2021년 9월 20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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