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루카 12,39-48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성실이란
신학생 때, 아니 그 전부터 저를 유난히 괴롭히는 유혹 중의 하나는 바로 청소였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래도 검사를 받으려고 억지로 청소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학교의 구역청소는 검사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이 편했지만
웬걸요. 매번 제가 배당 받은 청소구역은 꼭 표시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흙 바닥이 되어버리는 현관, 계단, 화장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발로 쓱~ 하고 문지르곤 했지요.
그런데 아침 식사 후에 항상 최선을 다해 성실히 청소하는 동료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며칠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매일 그렇게 청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 친구의 구역은 이틀에 한 번 해도 될 만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실이구나.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하는 것.
그때의 옛 기억을 떠올려보며, 주인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복음의 충실한 종이 아닐까 묵상해봅니다.
삶 안에서 충실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야겠습니다.
인천교구 서인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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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만 미카엘 신부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루카 12,39-48
충실한 종으로서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준비'를 당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이어서 준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충실한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로서 들려주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여기서 주인은 주님이시고, 주님의 뜻대로 관리를 하는 종은 바로 '나'자신입니다.
비약된 감이 있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묵상합니다.
주인의 뜻대로 관리를 해야하는 종인 나에게, 주님께서 무엇을 맡기셨을까?
그것은 현재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입니다.
나의 건강ㆍ능력ㆍ재산을 비롯해 나의 가족, 내가 안고있는 모든 일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주님의 뜻에 맞게 관리하는 종으로서,
매일매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자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마음을 다해 관리하고 운영해야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命)이자 나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마음이 찜찜합니다.
성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힘을 다해 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는 최선의 길임을 한순간도 잊지 맙시다.
오늘도 처해진 상황 속에서 주님께 의지하며
있는 힘을 다하는 충실한 종으로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서울대교구 홍성만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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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깨어 있어라.”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비유 말씀처럼 잠든 사이에 도둑이 내 소중한 것을 앗아 가지 못하게 깨어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내 생각과 의식을 열어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내적인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영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영적인 ‘깨어 있음’을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영적 태만과 위선, 기회주의적 자기애는 영적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적당히 꾀를 내어 내 편안함과 욕심을 채우려는 종의 모습은,
남이 나의 잘못을 알지 못하는 한 적당히 타협하면서 게으르고 위선적인 내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내 육신의 안락함이나 욕심보다는 주인의 생각과 뜻을 기다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종의 모습이 칭찬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덜어 내고 비워 내는 비움의 영성, 곧 청정한 빈 마음의 ‘무아’(無我)와 ‘무욕’(無慾),
그리고 ‘무위’(無爲)의 삶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욕망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면 삶의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내 힘이나 노력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예수님의 복음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넘치도록 받은 우리가 십자가의 빈 마음을 익히고,
믿음 안에서 확신을 갖고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