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학 바오로 신부
12월 20일(대림 제4주간 화요일)
루카 1,26-38
얼마 전 한통의 휴대폰 문자가 왔습니다. 물론 많은 문자 메시지 가운데 특별한 한통입니다.
‘저 냉장고 없어서 시집 못가요.’ 문자를 보는 순간 수년전 여러 차례 선을 보고도 시집을 못간
노처녀에게 술김에 ‘네가 시집가면 냉장고 사준다.’고 큰소리 쳤던 기억이 났습니다.
사람에게도 다 때가 있는지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뜬금없이 시집을 간다는 소리에
기쁨도 있었겠지만 모아둔 돈이 없는 저에게는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성당의 후배로서 또 동생으로서, 친구로서 지내기에는 너무나 진솔하고 편했지만,
그에게는 큰 결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잣대를 들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능력은 있나, 나쁜 습관, 버릇, 사고방식 등등 이것저것 보다 보면 그만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보낸 세월이 아마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한 번은 그녀의 집 앞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노처녀라 그런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어머님과 가족들이 다 내다보고, 심지어 그녀의 조카들이 무슨 구경이라도 난 듯 내려와
유심히 살피며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짓기도 한지도 꽤 된듯한데 시집을 간다니...
다들 시집가면 이것 저것 사준다던 동기들은 다들 오리발을 내밀더라며...
믿는 건 신부님뿐 이랍니다.
요즘 냉장고 하면... 백만원이 넘는게 기본이라던데...
이리저리 모아 반값 정도 보내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혼자 살면서 모아둔 돈두 없나.’라고 면박까지 받았습니다.
‘혼자 사니까 그런 거 없어도 돼.’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입니다.
아마 성모님은 더 황당하셨겠지요. 결혼이 낼 모랜데 임신이라니..
그것도 누구 아이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는 상황을 겪어야 할 텐데..
하지만 루카 복음은 먼저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의 성모님 잉태,
그리고 유명한 ‘성모의 노래’로 탄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황당한 사건을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미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사건은 구약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노년에 아이를 갖는다는 이야기는 하느님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즉 과거의 약속의 실현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다음에 이어지는 성모님의 동정 잉태 사건은 아직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건이면서도
구약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주고 있습니다.
성모님 역시 즈카르야처럼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묻지만
천사는 의심했다고 질책하기 보다는 엘리사벳의 사건을 말해주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라고 믿음을 더해 줍니다.
즉 과거에도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신 하느님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다른 상황이 닥치면 금새 과거의 기쁨도 잊은 채 원망을 늘어놓기가 일쑤인데..
성모님은 ‘예, 과연 그렇네요.. 전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받아들입니다.
저는 황당했던 일을 통해 생각합니다. 제 형편 뻔히 알면서도 꼭 냉장고를 사달라고 했던 마음을..
냉장고를 열 때마다 상하지 않고 싱싱하고 시원한 것을 꺼낼 수 있는 기쁨과
‘관계’라고 하는 기쁨이 더하여 있다고 하는 것을 배우게 해줬습니다.
성모님의 노래는 이 관계의 기쁨이 한층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없을 사건 속에 자신이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쁠까요?
저는 예수님의 탄생과 같은 사건은 다시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시 술김에 ‘뭐 사준다’는 얘기를 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산교구 원정학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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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양 요셉 신부
12월 20일(대림 제4주간 화요일)
루카 1,26-38
이것이 은총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천사 가브리엘의 알림대로 엘리사벳에 의해 잉태된 지
6개월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임신을 알렸던 천사 가브리엘이 이번에는 나자렛의 성모 마리아를 찾아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를 찾아가 인사하며 이제 마리아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서
주님을 잉태하게 될 것을 전합니다.
바로 이 천사의 인사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가
바로 우리가 매일 드리는 성모송의 시작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
기쁨에 넘쳐서 성모님이 될 마리아께 칭송을 드렸던 인사를 모아서 성모송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 마리아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이라고 칭송을 했고,
엘리사벳 또한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다."고
찬미 드림으로써 복을 충만히 받은 분이라고 성모님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 은총과 복을 청합니다. 어떤 은총과 복을 주십사고 청하고 있습니까?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거나 남들보다 한 50년은 더 살게 해달라고 청하십니까?
그런데 실은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더 살면 무엇하며 돈을 많이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죽으면 다 놓고 가야하는 그것들은 복이 아니지요.
돈은 쓸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으면 그 만큼 욕심이 많이 생기고 근심 걱정 또한 그만큼 쌓이게 됩니다.
하느님께 재물의 풍요를 은총으로 청하려고 한다면 마음을 바꾸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재산과 적당한 건강이지 넘치는 재산과 건강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될 은총은 무엇이며
또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떠한 변화를 보이게 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를 은총이 충만한 여인이라고 칭하는데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은총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은총을 받으면 기쁨과 평화가 가득합니다. 항상 감사 드리는 삶을 살게 되지요.
삶이 즐겁고 결코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참 기쁨과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으로써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재물을 얻어서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먹고 입게 되는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잠깐의 기쁨 후에는 고민이 생기게 되지요.
그것을 지키려고 애써야 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계속해서 흘러넘치기 때문에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재산이나 건강을 통해서 기쁨과 안정을 얻으려고 하지만
거기에서는 끝없는 갈증만 얻게 될 뿐입니다.
오랜 시간 수련을 한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면 참 고요하지요.
그들은 후손도 없고 재산도 없으며 건강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잔잔하면서도 여유 있고 평화롭지요.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은총을 받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두 번째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건강을 잃을까, 자식이 어떻게 될까, 또 재산이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1,30)
천사는 마리아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처녀 잉태를 예고 받았을 때, 마리아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약혼자와의 관계, 부모와 이웃 사람들의 시선들, 또 그 당시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는 처형을 받는 장면 등이 순식간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러한 처지에서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알면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바로 순교자들이 그랬습니다.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평화와 사랑이 가득 찬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요. 이것은 비단 스테파노만이 아닙니다.
모든 순교자들이 다 그랬고 누구보다도 시련과 고난이 많았던 바오로 사도 역시
감옥 안에서 하느님께 감사하며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은총을 받으면 하느님께 순명합니다. 하느님이 첫째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것에 다 순명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은총 없이는 순명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순명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아브라함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늘그막에 그토록 원했던 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순명했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요청을
아버지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모든 갈등과 이해관계를 넘어서 하느님께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불순종, 또 비판적인 모습들은
그들이 결코 하느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지요.
참으로 하느님을 알면 불순종하거나 비판하는 모습 따위는 보일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모 마리아께서 보여주신 대로
"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며 받아들일 수가 있지요.
그리고 이 세상보다도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차원이 다르지요. 은총이 충만한 성인, 성녀들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은총을 하느님께 청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의 신심은
초보자의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박복하게 살게
내버려두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그런 은총은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부수적인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은총은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 없이 기쁨과 평화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차원 높은 삶을 선물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5,16-18)
이것이 바로 은총 받은 사람의 표징입니다.
은총 받은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 드릴 수 있는 사람이며
그러한 삶의 모습일 때 그 은총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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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2월 20일(대림 제4주간 화요일)
루카 1,26-38
오늘 동정녀 마리아는 아기를 가지리라는 천사의 말에 이렇게 수락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대답을 하기까지 마리아는 얼마나 깊게 고심했겠습니까?
만일 아기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앞날에 미치는 영향을 곰곰이 생각했더라면
도저히 승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가 받아들인 이유는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성경을 보면, 황당하게 여겨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 분들이 많이 있지요.
아브라함은 75세에, 낯선 땅으로 떠나라는 말씀을 듣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하느님 말씀을 따르다 보니, 결국 시련은 복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너무나 많지요.
그래도 많은 분이 이런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그분들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치고, 더는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을 맞았더라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하느님께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성모님처럼 하느님과 일치되는 큰 선물을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