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의 역사는 스페인의 다른 유적 도시에 비하면 역사가 그리 긴 편은 아니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9세기 후반경, manzanares강 유역에 성채를 쌓은 것이 기원이다. 그들은 그 땅을 Magerit라 불렀는데, 여기에서 오늘날의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의 지배하에서 그리스도교 국토 회복 전쟁(Reconquista)이 일어났고 1083년 마드리드는 카스티야 왕국의 알퐁소 6세에 의해 완전히 탈환된다. 카스티야 왕국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마드리드도 확장되고 역사의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똘레도의 중요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5세기말 스페인이 통일되면서, 합스부르그왕가의 통치가 시작되었는데, 스페인 대제국의 절정기에 있었던 펠리페 2세에 의해 1561년에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겼다. 천도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유력한 것은 마드리드가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있고 건설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엘 에스코리알 왕궁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수도로서 적합했다는 것이다. 왕궁이 세워지자 귀족, 관리,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도시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18세기 왕위계승 전쟁결과, 독일의 합스부르그가에 이어 프랑스의 부르봉왕가의 통치가 시작되고, 수도 마드리드도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그 모습이 변하게 된다. 18세기 후반 까를로스 3세의 해에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따라서 도시는 더욱 커져 현재의 마드리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추진력과 활기를 느낄 수 있다.
■ 알무데나 성당(Cathedral de Nuestra-Senora de la Almudena)
1880 마드리드 성당 계획 시작했고 1883년부터 110년 동안 신 고딕 스타일로 1993년에 완성. 1870년전까지 주요 회교 사원이었다. 1883년 아랍인 주거지의 성벽을 헐면서 성모 마리아 성상을 발견했고 바티칸에서 그 자리에 성당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발견 원인을 아랍시절 카톨릭 주인이 공사에 동원되었고 성모상의 아름다움을 아랍인이 해칠까 두려워 몰래 벽에 넣고 공사를 했던 것이 벽을 허는 공사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 왕궁( Palacio Real de Madrid )
부르봉 왕가문화의 대표적 유산, 1700년 카를로스 2세가 왕위 계승자 없이 사망하자 합스부르그 가와 부르봉 왕가의 왕위 계승권 싸움의 결과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펠립페 5세가 부르봉 가의 첫 왕으로 등극한 후, 현대의 왕인 후안 까를로스 1 세까지 계속되고 있다.
원래 지금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합스부르그 왕가(스페인에서는 아우스트리아 왕가)의 왕궁이 있었으나, 1734년 크리스마스 때에 소실된 합스부르그 왕가의 궁전 자리에 1736년 펠리페 5세와 왕비 이자벨 데 화르네시오에 의해 새로운 왕궁의 건축 계획이 세워지고 이탈리아의 건축가 슈바라에서부터 사케티, 사바티니 등으로 이어지면서 1764년 10월에 완성되었다. 알메리아 광장 및 발코 니는 프랑스 양식이고 내부는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양식으로 되어 있다. 사방 150m의 건물 안에는 2,700개에 이르는 방이 있어서 지금도 공식적인 행사에 이용되고 있다. 공식행사가 없는 날에는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 되어진다. 주위에는 사바티니 정원, 야외 공식행사로 쓰이는 왕실 소속 모로 공원 등이 왕궁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 마드리드 대성당
이 성당은 1993년에 La Almudana 성당이 완공될때 까지는 일시적인 마드리드의 대성당이었다. 이곳은 16세기의 주교좌로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혼합된 성당이다. 그 내부는 다양한 석상이 장식되어 있으며 성물들은 Francisco Giralte에 의해 디자인된 작품이다. 또한 내부의 외벽은 Villoldo el Mozo가 그린 벽화로 꾸며져 있다. 수도원으로 통하는 문은 거대한 플라테스크 양식의 문으로 매우 볼만하다.
■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가까이에 있는 솔광장과 함께 구시가지에 중심을 이루는 광장. 1617년 펠리페 3세에 의해 건축시작, 1621년에 완성. 1672년 화재로 부분적인 파손을 가져왔다. 현재의 광장은 18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광장 가운데에는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서있다. 모든 시민 집회활동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고 종교재판도 열렸었으며, 1846년까지는 투우경기도 이곳에서 열렸었다. 현재에도 모든 축제, 공공행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매주 일요일에는 우표, 고화시장, 연말의 크리스마스 나무 및 장난감 시장등이 열린다.
■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프라도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1785년 까를로스 3세때 건립하기 시작, 원래는 자연과학 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왕립 부속 미술관으로써 개관한다. colection의 양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특히 회화만 3,000점 이상으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미술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회화 외의 500여점에 이르는 조각들, 4,000점에 이르는 고야의 판화, 스케치 등은 빼놓을 수 없는 프라도 미술관의 중요한 collection이다.
1819년에 개관하여 스페인의 3대 회화 거장인 엘 그레꼬, 벨라스께스, 고야는 물론 스페인, 이태리, 독일, 네델란드 유명 화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회화의 또 다른 거장 피카소의 유명한 게르니까는 바르셀로나의 프라도 미술관 부속실에 따로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