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장요셉(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6.28
21절 “이스라엘을 구한 분이, 그 용맹한 분이 어쩌다 쓰러졌는가?”
묵상
데메트리오스는 니카르노와 그의 군사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보병 이만과 기병 이천 명과 함께 바키데스와 알키모스를 유다 땅으로 보낸다. 대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 병사들은 대부분 겁을 먹고 달아난다 남은 정병은 팔백 명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잠시 피할 것인가? 남아 있는 병사들은 우리 수가 너무 적으므로 일단 피하여 목숨을 구한 다음 힘을 모아 다시 싸우자고 제안한다. 유다는 “저들 앞에서 달아나다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죽어야 할 때가 닥쳤다면, 동포들을 위해서 용감하게 죽어 우리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말자.” 하며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다. 물리적으로 이미 패한 게임일 수밖에 없는 전투를 의기로 밀고 나간다.
-
작성자 장요셉(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6.28 유다는 우익군을 물리쳤으나 좌익군의 공격에 쓰러지고 만다. 그동안 유다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용감하게 싸워 핍박받는 백성을 구했다. 그런데 이 날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없다. 너무나 다급하고 정황이 없었을까? 21절 "이스라엘을 구한 분이, 그 용맹한 분이 어쩌다 쓰러졌는가?" 이 말씀은 절박한 상황에서 어찌 하느님께 부르짖지 않았는가? 왜 하느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명예만을 생각하며 무모하게 밀어붙였는가?를 묵상하게 된다. 하지만 유다는 참으로 의롭고 용맹한 사람이었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에 맞서 끊임없이 항쟁하며 백성과 나라를 구하고자 힘썼다. 본장을 읽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겠다는 묵상을 하게 된다. 주님,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소서. 아멘.
-
작성자 김소화데레사(carrot) 작성시간20.06.29 73 드디어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멈추었다.
묵상 <전쟁>
안티오코스, 리시아스의 박해로
더메트리오스, 니카도르, 바키데스
박해로
그리고 이민족의 편이 되었던 동족들과
동족의 사제 알키모스의 배반으로
이스라엘의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었고
용감히 싸웠었던 유다 마카베오를 비롯해
의로운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용감했었음을 상기해 본다.
그 당시 그들이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이민족들의 억압, 핍박 아래서
분명 자신의 고유성, 정체성을
완전히 잃고
종속된 삶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의로움으로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진 이들을
굴복시켜
마침내 전쟁을 멈추고 평화관계를 맺은
많은 의로운 이들에게 감사하고 -
작성자 곧은잔소리(마르티노) 작성시간20.06.29 10 그러나 유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들 앞에서 달아나다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죽어야 할 때가 닥쳤다면, 동포들을 위해서 용감하게 죽어 우리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말자.”
<묵상>
유다는 굴복, 비굴, 피신, 도망을 하기보다는 의로운 죽음, 명예, 용기를 선택합니다.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전력 차이에도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며 목숨이라도 내놓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우리도 세상을 살다보면 명예,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지요.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명예, 품위를 저버리고 굴복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지요.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면 어려움이나 고통은 참을 수 있지요.
주님! 저희가 어려움이나 고통에 벗어나기 위해 명예나 품위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시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에 살 수 있도록 자비와 은총을 내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