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의 안료가 붉은색인 이유를 알려면 우선 도장의 역사를 되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도장의 역사는 길게 거슬러 올라가면 신석기 시대의 질그릇에 문양을 찍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는 문양 즉,모양을 찍는 것이 전부였기때문에 오늘날의 문자를 찍는 도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인장은 인류최고의 도시문명을 일으켰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서,기원전 400년경에 이르러 이미 사용된 흔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즉, 돌이나 조개껍질 따위를 이용해서 문자나 문양(紋樣)을 인각(印刻)한 스템프식 인장이나 원통형의 인장이 당시의 상류계급이었던 슈멜인에게 장신구(裝身具)의 구실을 함과 동시에 호신(護身)의 부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고대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황금충(黃金蟲) 형상을 본딴 스카라브(scarab) 라는 석인(石印)이 있었는데 그것에는 회문자(繪文字) 또는 왕명,인명,때로는 제신(諸神)이나 성수(聖獸)의 모습을 음각(陰刻) 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황금충을 "케베리"라고 호칭하여 창조(創造)의 신(神) 태양의 신으로 숭배했던 것이므로,스카라브는 귀신을 쫒는 호부로서 인체에 간직되었으며, 인재(印材)로는 주로 활석질(滑石質)을 사용하였으며, 金,銀으로 된 것은 흉장(胸章)이나 지환(指還)으로도 사용하는 풍습이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기원전 1600년경 에게 문명의 중심지였던 지중해의 크레타 (島)에서는 상형문자(象形文字,crete문자)를 새긴 인장이 사용되었습니다.이것을 사용하면 모유(母乳)를 나게 한다는 신심(信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전하는바,당시의 사람들이 인장을 생명과 성장의 근원인 어머니의 젖 줄기에 비겨 생각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점들로 미루어 보아,도장이 인간의 집단생활에서 필요로 저절로 생길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알수 있죠.
솔직히 인간은 출생신고서에 도장찍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망신고서에 도장찍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마무리하니까요..
위의 내용으로 짐작컨데 도장은 각 문명권에서 저절로 생겼다고 봐야 옳겠죠.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속한 지역은 중국의 문명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볼때 우리는 중국의 도장의 안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인주(印朱)에서 朱(붉을 주)자의 어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나무 목(木) 중간에 점을 찍어 붉은 빛을 표현했는데,이는 나무의 속이 붉기 때문입니다.질이 좋은 소나무는 속이 붉으며 이런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하고 왕이나 왕비의 관을 짜는 데 썼고.미인을 주순호치(朱脣皓齒)-'붉은 입술에 하얀 이'라는 뜻.도장을 찍을 때 쓰는 인주(印朱)를 일명 주육(朱肉)이라고 하는데 이 고급 인주의 원료는 주사(朱砂)-'수은'과 아주까리 기름입니다.
이렇든 중국은 붉은색을 옛부터 대우했는데 이 전통이 도장의 안료에도 나타나게 되죠.
참고로 아주까리 기름을 쓰는 이유는 불건성유(공기가 반응하지 않음)이고 점도가 매우 높으며(종이에 잘 묻음) 열에 대한 변화가 적고 응고점이 낮다(빨리 굳는다)
이러한 성질은 도장에 가장 적합한 성질이죠.또 이 아주까리 기름의 색이 붉은색입니다.따라서 인주의 색도 붉은색이죠. 붉은색을 크게 대우하는 중국인들과 아주까리의 성질은 엄청난 궁합을 보여주죠?- -;
이러한 연유로 중국에선 붉은 인주가 쓰이게 됐죠.
우리나라로 넘어오죠.우리나라에선 도장의 시초가 우리나라의 시조인 환웅이 하늘로부터 가져왔다는 천부인( 天符印). 그러나 그 후 2000년동안의 도장이 쓰여졌다는 기록이 없기에 이 이야기는 그냥 자부심으로 가지면 좋을 내용이고, 실제기록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도장의 역사는 중국의 한나라에 복종한다는 의미의 중국의 한나라왕이 하사한 도장이 그 시초이죠. 때문에 인주 또한 함께 전래됐습니다.
그 후로 우리나라에선 국새나 옥새,그리고 토지문서등등의 공문서에 도장을 과 함께 붉은 인주를 사용하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