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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의 사람

작성자푸른꽃|작성시간12.09.22|조회수287 목록 댓글 0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 (2011)

 

영화 줄거리

시대와 민족을 초월한 뜨거운 우정!
조선을 사랑한 최초의 한류팬, ‘아사카와 타쿠미’의 숨겨진 감동 실화!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지 4년 후인 일제강점기 1914년, 한 명의 일본인 청년이 경성에 왔다. 조선의 산을 푸르게 하겠다는 사명감을 품은 임업기술자 ‘아사카와 타쿠미’(요시자와 히사시).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만난 조선인 동료 청림(배수빈)을 통해 조선땅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백자로 된 항아리와 사발, 밥상과 장롱 등 조선공예품의 미에 매혹되어 싼 값에 팔리고 있는 조선 백자에 안타까움을 갖는다. 또한 조선의 아름다움에 반해 청림에게 우리말을 배우는 등 시대와 민족을 초월한 우정을 쌓아간다.

타쿠미 못지 않게 조선 문화에 관심이 많은 형, 노리타카. 조선의 민중문화를 널리 알리고 지키기 위한 조선 민족 미술관 개관에 앞장서던 노리타가와 타쿠미 그리고 청림. 그러나 조선에서는 이미 일본에 대항하는 대규모 독립 운동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었고 청림은 그의 아들 인화가 던지려 한 폭탄을 제지하다 결국 감옥에 투옥된다. 일본인에 대한 반항심과 억울함에 타쿠미와의 우정마저도 져버리고 싶었던 청림. 하지만 타쿠미는 시대의 격류 속에서 청림과의 뜨거운 우정도 조선의 아름다움도 모두 지켜내고 싶어 남은 일생을 조선의 산과 조선인을 위해 살아간다.

 

 


 

 

 

책소개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는 조선의 예술과 삶 뿐 아니라 조선 민중까지도 사랑하였던 아사카와 타쿠미의 실화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영화 《백자의 사람》의 원작이 되었던 작품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조림학을 배우고 조선 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하였던 임업인이자 최초의 한류팬으로 기록되는 아사카와 타쿠미의 휴먼 스토리가 펼쳐진다.

 

한일간 역사의 어둠에 봉인되어있던 감동의 휴먼 스토리!
100년의 세월을 거쳐 다시 태어난 일제강점기 감동 실화!
한일 양국의 문화적 가교 역할과 화해의 장을 제시할 웰메이드 소설!


일본에서 더 유명한 한류스타 배수빈 출연의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의 원작으로서, 역사소설이지만 100% 실화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인물 평전 및 미시사(微示史 : microstoria)의 성격도 띈다.
다쿠미는 출생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복자로 태어난다. 다쿠미의 어머니는, 장남 노리다카, 딸 사카에, 막내 다쿠미 3남매를 혼자의 힘으로 키운다.
대한해협을 건너 서울에 정착한 이들 가족은 러시아와 중국, 일본이 조선의 나무를 남벌하고 산림자원을 약탈하여, 조선의 산들이 모두 민둥산이 된 것에 비통해하며, 조선의 숲과 산을 푸르게 가꾼다.
다쿠미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마사도시의 여동생 미쓰에와 결혼하여 딸 소노에를 낳지만, 미쓰에는 어린 딸을 남겨둔 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미국, 일본 및 서구열강의 도자기 수집가들이 도굴하다시피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을 밀반출하는 것에 맞서, 노리다카·다쿠미 형제는 조선의 문화재를 조선땅 안에 지키기 위해,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한 후, 도자기를 수집해 모두 이곳에 기증한다.
다쿠미는, 일제강점기하에서 급속히 사라져가는 조선의 목공예·도자기에 대한 책을 쓰는 한편,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하기 위한 식목일 행사 준비로 과로하다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순직한다. 그는 2012년 현재 서울 망우리에 묻혀 있다.
역사속 실존인물과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이며, 약 70개의 영화 스틸컷이 함께 실려있어, 읽는 감동 못지않게, 영화를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지금까지도 한일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 그 시대, 여기 한편의 일본 소설이 그 시대, 일제강점기에 다가간다.
1914년 23살 청년이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름은 아사카와 다쿠미. “병든 산을 푸르게 하는 게 임업기술자로서 내가 할 일이다.” 라고 다쿠미는 다짐한다.

‘내 벗이며 스승인 참새여, 닭이여, 해바라기여, 소나무숲이여, 대지여, 창공이여, 오늘 하루도 덥겠지. 건투를 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벗으로, 자연을 스승으로 살아온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예술과 삶을 사랑했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시대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하에 두면서 두 민족의 대립은 격렬해졌다.
차별과 박해가 난무하는 속에서 아사카와 다쿠미는 인간으로서 올바른 길을 가겠다며 목숨을 걸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지키려 하지만....
둘도 없는 친구 이청림과 민족을 초월한 뜨거운 우정을 중심으로, 격동의 조선을 중후하고도 감성적으로 그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휴먼 드라마!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오늘 그들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지금 우리는 아사카와 다쿠미가 걸은 길, 그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일본에서만 통산 20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이 책을 원작으로 연극, 드라마, 뮤지컬, 오페라 등, 많은 작품들이 탄생했고,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제작보고회 이후, 한국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의해 제1회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지원사업 대상작으로 선정되어, 한·일 양국의 공동 투자로 영화가 제작·완성되었으며, 2012년 상반기에는 일본에서, 하반기에는 한국에서 영화가 개봉된다. 요시자와 히사시, 배수빈 출연, 다카하시 반메이가 감독했다.

추천평

이어령
(前문화부장관, 중앙일보고문)
아사카와 다쿠미의 헌신적인 한국사랑은 한·일 간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 민족이 현재 시련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바탕이라 믿습니다.
이 책이 한·일 양국의 각계각층에서 널리 읽혀서, 아사카와 다쿠미의 선지자적 사상과 삶을 선양하여 양국간 아픈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만제
(前 한일협회 회장,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회장)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산림녹화를 위한 수많은 논문 외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저서로서 『조선의 밥상』,『조선의 찻잔』,『조선도자명고』 등을 집필했다. 나는 『조선의 밥상』 마지막에 “피곤함에 지쳐 있는 조선이여,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기보다, 지니고 있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자신에 찬 날이 올 것이다.”라는 부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다쿠미의 이러한 업적도 중요하지만, 특히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의 인간성(人間性)은 많이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한다.

책속으로

연말에 일본의 원호(元號)가 대정(大正)에서 소화(昭和)로 바뀌었다.
그 해 다쿠미는 두 사람의 조선인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소화 원년은 6일간밖에 되지 않았으며, 곧 1927년(소화 2년)이 되었다.
다쿠미는 정월 초부터 자기 집에 어린애를 받아 초등학교에 보냈다. 이렇게 하여 수년 사이에 10명을 넘는 조선 어린이들이, 다쿠미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청림의 막내동생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쿠미는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알았어?”
라고 굳게 입막음을 했다. 형 노리다카조차도 전혀 몰랐다. 정말로 다쿠미의 행동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라는 바로 그것이었다.
다쿠미는 밤이 되면 가끔 거리에 나갔다. 고물상 가게는 낮에 볼 수 없으면, 반드시 밤에라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는 사람을 보면 포장마차에 데리고 가 함께 술을 마셨다.
다쿠미는 언제나 막걸리를 주문했다. 다쿠미가 낀 술자리는 항상 허물이 없고 밝았으므로 어느 사이엔가 낯선 조선인까지도 술자리에 함께 어울리는 적이 많았다. 그날 밤 여자 거지를 만나면 호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을 전부 주어 버리기도 하고, 남자 거지를 만나면 다음 날 아침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동사무소에 데리고 가서
“이 사람을 위해서 뭔가 일을 주었으면 좋겠다.”
고 직업의 알선까지 했다.
다쿠미의 집으로
“제 자식의 이름 좀 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의뢰하러 오는 조선인도 있었다.
다쿠미는 일본인으로서가 아니고 이 나라의 습관에 따라서 어린애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본문 135∼136쪽

 

 


<관련 기사>

 

일제시대 한국을 그토록 사랑했던 일본인 아사카와 망우리 묘지엔 아직도 참배객들이 늘어선다는데…

 

총독부 산림과서 일하며 산림 녹화 사업에 전념, 현재 인공림 37%가 그의 작품
조선인들과 어울려 살며 전통 공예 문화 연구 업적
5일 학술대회 열고 韓·日 합작 영화 제작 중, 80주기 맞춰 책도 출간

 
 
일제시대에 조선인과 전통 공예를 사랑했던 총독부 삼림과 일본인 직원 아사카와 다쿠미의 27세 때 모습. /효형출판 제공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동묘지 '사색의 길'은 '님의 침묵' 시인 한용운, '황소' 화가 이중섭 같은 위인의 묘소로 유명하다. 그 사이 눈길을 끄는 무덤이 하나 더 있다. "한국의 산과 민예(民藝)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묘비명의 주인공은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묘를 돌보는 임업연구원 책임자는 "단 하나, 한국인에 의해 보존되고 있는 일본인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그를 기리는 학술대회가 9월 5일 서울 한복판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주제는 '시대의 국경을 넘은 사랑: 아사카와 다쿠미의 임업과 한국민속공예에 관한 연구'. 서울국제친선협회 주최, 일본국제교류기금·수림문화재단 협찬,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축사한다. 일제시대 조선 목재 수탈을 지원했던 기관인 총독부 산림과의 한 직원을 두고 왜 이 야단일까.

1914년 24세의 나이로 조선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그는 '조선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몇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조선에 있는 것이 언젠가는 무슨 일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게 해 주소서.' 기도로 맘을 달랜 그는 '한국에 사는 한 한국인과 같은 것을 먹고 마시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말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조선인 마을에서 온돌방에 살았고, 바지저고리 차림에 망건을 쓰고 외출했다. 그의 전기 '조선의 흙이 되다'(효형출판) 저자인 다카사키 소지는 "일본 순경들은 버스 안에서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자를 발견하면 '요보(조선인의 '여보'를 비하한 말)'라 조롱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강요했다. 그런데도 그는 한복을 고수했다"고 썼다.

그는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 것이 소명이라 믿었다. 전국을 다니며 맞는 수종을 고르고 식목을 거듭했다. 자연 상태 흙의 힘을 이용하는 '노천매장법' 방식으로 조선오엽송 종자를 싹 틔우는 방법도 개발했다. 조재명 전 임업연구원장은 생전 "한국 잣나무는 당시 2년간 길러야 양묘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아사카와씨가 고안한 양묘법 덕분에 1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의 인공림 37%가 다쿠미 선생이 공을 들인 나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조선 공예를 사랑했다. 친형이 '조선 도자기의 신' 아사카와 노리타가(1884~1964)였다. 조선 각지의 가마터에서 도자기와 파편을 구해 형에게 전하는 한편 스스로 조선의 소반문화를 연구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중국 아류라는 다른 일본인들 주장에 맞서 조선 밥상을 들어 조선 문화의 독자성을 변론했다. 생전에 낸 책 '조선의 소반'에는 이렇게 썼다. '피곤에 지쳐 있는 조선이여, 다른 사람 흉내를 내기보다 갖고 있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으면 멀지 않아 자신에 찬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공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후에는 조선 도자기 연구서인 '조선도자명고'도 출간됐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우리 공예와 도자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보물 같은 책"이라고 했다.

1931년 4월 2일 만 40세로 요절한 그의 장례식이 임업시험장 광장에서 치러졌을 때 억수 같은 비에도 조선인들이 서로 상여꾼을 자원해 돌아가면서 멨다. 유언에 따라 흰색 바지저고리 차림에 조선인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지금 망우동 공동묘지로 이장됐다. 포천시 광릉 국립임업연구소(구 임업시험장)에는 그가 심은 오엽송들이 우뚝하다. 그의 고향인 야마나시현 호쿠도시에는 2001년 노라다카·다쿠미 형제 기념관이 섰다. 그의 인생을 다룬 영화 '백자의 사람'도 한·일 합작으로 제작 중이다. 이달 합천과 부안 등지에서 촬영에 들어가 내년 개봉 예정이다.

망우리 묘지에도 참배객이 늘고 있다. 80주기에 맞춰 국내 출간된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부키)에는 한국 고교생들의 소감문이 실려 있다. '이웃 나라 조선을 그토록 사랑한 아사카와 다쿠미의 나라 일본은 이제 내게 알고 싶은 나라로 다가왔다.'(청담고 2년 박세은) 이순주 서울국제친선협회 회장은 "이번 학술회의가 양국 국민이 서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성숙한 지구촌 시민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전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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