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이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아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산과
언덕등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The_Sound_Of / Silence 가사와함께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자네랑 이야기하려고 또 왔다네
왜냐하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어떤 환상이
자기 씨를 심어놓았기 때문이지
내 뇌리에 깊히 박힌
그 환상은
아직도 여전히
침묵의 소리로 남아있다네
불안한 꿈속에서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혼자 걸었지
가로등불 밑에 다다랐을 때
차갑고 음습한 기운때문에
옷깃을 세웠다네
그때 반짝이는 네온 불빛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 네온 불빛은 밤의 어둠을 가르며
침묵의 소리를 감싸안았다네
적나라한 불빛가운데서 만명 정도?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나는 볼 수 있었다네
그사람들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듣는체 하지만 실제로는 듣지않고
심금을 울리지도 못하는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침묵의 소리를 깨뜨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네
그래서 나는 '바보들
암과도 같은 침묵이 자라고 있음을
당신들은 알지 못하나요?
당신들을 깨우치는 내 말을 들으세요
당신들에게 내미는 내 손을 잡으세요'
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러한 내 말은
소리없는 빗방울처럼 떨어져
침묵의 샘 가운데에서
공허한 메아리같을 뿐이었다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네온 神에게 허리굽혀 기도했다네
그러자 네온이 만들어내는 단어중에
경고의 문구가 번쩍이었지
네온은 이렇게 말했어
'예언자의 말은 지하철의 벽이나
싸구려 아파트 현관에 적혀있다' 라고...
침묵의 소리 가운데에서
그렇게 속삭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