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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부장님

본문: 로마서05장01절~08절 제목: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2026년06월14일)

작성자영광|작성시간26.06.13|조회수20 목록 댓글 0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우리의 믿음이 의롭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의로움이 된 것은 육체의 노력으로 된 의로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체로서 의로움이 된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은 육체의 죽음으로 사망에 이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육체의 사망 때문에 예수님께서 육체의 사망에 죄의 값을 정하시고 육체 죄의 값을 소멸하여 주셨습니다.

[4: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 육신의 죄로 인한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심으로서 주어진 것은 새로운 생명,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은 우리 믿음을 의롭다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필수적인 삶은 바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육신의 몸으로 죽으심으로 육신으로 사는 모든 사람에 육신의 죄를 감당하셨으므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롭게 된 우리는 늘, 항상, 매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 한순간도 하나님과 관계가 벌어지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형성될 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삶에는 어떠한 환란이나 역경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세상의 어떠한 문제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다시, 말해서 항상 형통 삶은 어떠한 삶 속에서도 만족하는 기쁨하는 삶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이 바울의 증언은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이 입니다.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바울의 어려움에 대한 증언은 시련을 겪고 있는 각,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한 증언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환란 중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즐거워합니다. 지금의 시련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능력 속에서 오는 믿음의 인내에서 오는 연단을 통하여 절망이 소망으로 변화되는 능력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소망은 지금의 현실에서 아직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소망의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믿음으로 보게 되는 믿음입니다. 오늘 현실 속에서도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은 과학적 상상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일은 로봇입니다. 로봇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된, 기술의 발전은 과학 발전이 미숙한 때에 바라던 것을 계속적 연구의 진보로 이루어져 산업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학의 진보로 잃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일입니다. 즉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세상이 하나님을 잃어버릴 때 세상의 종말이 옵니다. 그 대표적인 시대가 바로 노아의 시대가 아닙니까? 노아의 시대 징계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5-7]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도 노아의 시대에 이같이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4:35-40]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41)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43)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세상이, 과학이, 초과학적으로 발전하더라도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의 지혜나 지식, 총명으로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육신의 지혜나 지식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앎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노아의 때와 같이 지구의 종말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육신으로는 알 수 없는 종말, 아무도 모르게 이 땅에 종말이 임합니다. 지구의 종말을 결정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지구의 종말을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육신이 종말의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에 있어서 자격은 없습니다. 누구나 모든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은 어떠한 의인의 인품을 갖춘 도덕적인 사람을 더 의인의 품격으로 만들기 위한 죽으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의인 되게 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누리게 하셨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단 하나에 조건과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나를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세주 되심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즉 세상에 속한 어떠한 것도 요구되는 것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육신에 대한 어떠한 수련의 과정도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의인 된 이후 의인으로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의인으로 삶은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인이 된 믿음의 사람들에게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이같이 선포합니다.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의 충만 삶만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과 화평한 삶이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뿐입니다.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삶은 하나님에 본체가 되시는 삶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육신의 모든 한계를 극복하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즉 육신의 의지가 아닌 오직 영이신 성령으로 하나님과 화평한 일을 하셨습니다.

[4:1-2a]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2)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4:18-19]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거듭남에 삶으로 우리 믿음의 소망을 이루는 기쁨을 얻습니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경건하지 못함으로, 우리의 경건함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경건하게 하사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했던 벽이 무너짐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은혜를 입었으므로 하나님과 화평한 삶을 누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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