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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서신 해석 (자료 : 바울에 대한 극단적인 비판과 극단적인 찬탄)

작성자Peace|작성시간08.04.21|조회수143 목록 댓글 0


 

서 문


바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 비판에서부터 극단적인 찬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자의 경우, 바울은 대 배교자,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로 바꾸어 놓은 인물, 여성의 역할을 열등하게 처리한 남성 등으로 묘사된다. 후자의 경우, 바울은 제2의 예수, 실제적인 기독교 교회의 창시자 중 한 사람, 이방인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최초의 신앙 인의(認義) 사상의 주창자 등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상이한 평가들은 바울서신 자체의 난해성(벧후 3.15-16)에도 부분적으로 기인하나,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의 상충에도 기인한다. 여하튼 적어도 바울에게 찬탄을 보내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영향력은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그의 삶의 모범과 선교에 대한 끈질긴 열정 그리고 그의 깊은 신학사상은 무수한 평신도들과 신학자들 모두에게 신학적 숙고와 경건을 불어넣어 주었다.

바울은 그 자신이 다른 어떠한 사도보다도 더 많은 수고를 한 사도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기도했고(고전 15.10), 자신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고후11.5). 이러한 평가는 그의 고생담(고후 11.23-27)과 그의 자기 소개(빌 3.5-6)를 주의깊게 읽는다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이러한 자평에, 우리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을 그의 결정적인 공헌을 하나 더 덧붙일 수 있다. 그는 문서화된 유산을 남겨준 사도였다. 실제로 신약 27권 중 13권이 바울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 사도행전의 절반 이상이 바울에 대한 보도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 중 바울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학자들 간에 분명한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는 소위 순수한 편지는 7편으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 등이 이에 해당된다. 목회서신들 곧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는 바울 이후의 것이라는 점에서도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후서의 바울 저자 여부에 관해서는 의견이 나누어져 있다. 바울의 저작으로 판명된 소위 순수한 서신들 가운데, 기록 연대가 가장 이른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이며, 가장 늦은 것은 로마서로서 모두 40년대 말부터 50년대 말 사이에 기록되었다. 이 연대는 신약 문서들 중 가장 초기에 속하기 때문에 그 의의가 크다.

바울서신은 어떠한 전망으로 그것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주요 메시지의 색깔들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된 신약성서에 대한 사회학적 주석은 이제는 다양한 신약해석 방법들 중 주요한 방법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회학적 이론은 인간 행위의 패턴과 이유를 설명하려 하고 그 패턴과 이유를 위한 "법칙들"을 확보하려 한다. 그것은 인간 마음 속에서만 배타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관심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심한다. 이론적 진술들을 생성하기 위한 사회학적 이론에는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인간의 행위보다는 그 행위를 제어하는 사회 구조를 분석하는 거시적(macro) 접근과, 역으로 사회 구조의 강제성에도 불구하고 각기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행위에 집중하는 미시적(micro) 접근, 그리고 인간 행위와 사회 구조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중수준적(meso) 접근이 있다. 곧, 이 세 이론들은 '나무', '숲', 그리고 '나무와 숲'에 각각 초점을 맞춘다. 이 세 가지 접근 중 중수준적 접근이 신약해석에 관한 한, 가장 적합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 저자들은 넓게는 당시의 로마라는 큰 사회, 좁게는 각기 처한 공동체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동시에 그것들에 의해 일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들이 영향을 주고 받는 수준이나 강도들도 각기 다르다. 신약 문서들은 그 저자들의 자율성과 사회적 강제성의 복합산물이지 그 어느 것 하나가 철저히 희생된 채 다른 것 하나에 의해 산출된 것들이 아니다. 이것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이 책의 부록, "신약성서 해석을 위한 사회학 이론"에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전망은 바울서신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바울과 각 지역 교회들과의 관계 설정의 변경을 동반하게 된다. 곧 지역 교회는 자체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미미한 기구로 축소되고 바울 개인은 완벽한 인품과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영웅으로 부각되는 전통적인 관계 설정의 도식을 재고하게 한다. 물론 바울의 서신들에서 바울의 억양이 지역 교회의 억양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서신이 지역 교회의 서신이 아니라 '바울의' 서신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실제로는 바울과 지역 교회들은 상호 영향 속에 있었다. 바울이 지역 교회들에 영향을 주었고, 역으로 지역 교회들은 바울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흔적은 바울서신 곳곳에 암묵적으로 또는 분명한 형태로 산재되어 있다. 이것은 비단 바울과 그가 직접 세운 교회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그와 그가 직접 세우지 않은 교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바울과 로마교회는 바울 자신의 표현으로도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하는"(롬 1.12) 관계로 소개된다. 결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관계도 그러하다. 바울은 그 교회를 "생각하고"(phronein)(빌 1.7), 그 교회는 바울을 "생각하는 것"(phronein)(빌 4.7)으로제시된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입장이 그들에 대한 혹독한 비난 (살전 2.14-16)에서 조건부 긍정적 태도(고후 3.14-17)를 거쳐, 우호적인 입장 (롬 9-11장)으로 변경의 과정을 거친 것도 결국 지역 교회들의 각기 다른 입장과 상황에 대한 바울의 인식과 인정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해되기 어렵다.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의 관계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바울이 그들 또는 그들 중 일부를 평가절하하거나 책망하면서도(갈 2.11-14)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제출한 것(갈 2.2)이나, 또는 그들과의 역할 분담(2.7-9)을 논의한 것도 자신이 받은 그들의 영향력에 대한 내키지 않는 인정의 전제 없이는 이해되기 어렵다. 따라서 바울의 표현된 주장 이면에는 지역 교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자신에 대한 지역 교회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 바울의 이중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하겠다.

주석 작업의 방향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표현의 행간 속에 숨겨진 바울의 의도를 포착, 규명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바울의 신학적 표현 이면에 숨겨진 사회학적 함의를 바울이 처한 상황과 지역 교회가 처한 상황과의 상호 관련 속에서 추적하려는 것이다. 이 책은 바울 서신에 대한 교과서식 개괄서의 형태로 기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울 서신의 본문 선택 및 주제 설정 또는 연구 범위 및 분량 등에 대한 균형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의해 제정된 [언더우드 신학 학술 연구비](1996)의 지원에 의해 가능했음을 밝힌다. 관계 기관과 그 선정 위원들, 그리고 동료 및 선후배 교수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원고 입력과 교정 작업을 헌신적이고도 섬세하게 도와 준 연세대 대학원 박사 과정의 유지미 양에게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필자는 한국 신약학과 종교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시고 이제는 소천하신 한국 신학계의 거목, 고 문상희 박사님을 추모하며, 삼가 이 책을 그 은사님께 헌정하고 싶다.



 

1998년 6월 연세대 아펜젤러관에서

서 중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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