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Kim 님의 두 번째 문의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교리적인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류의 논쟁은 되도록 피하고자 하려는 것이 본인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이 점을 먼저 밝혀둡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고 차근차근 따져가면서 그 사실여부를 밝혀내는 일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포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태도라는 점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위한 투쟁"을 권했던 것은 참과 거짓을 마지막까지 가려보라는 뜻이었다는 점도 밝혀둡니다. 귀하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진리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논리적인 싸움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그 "논리적인 싸움"이라는 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참과 거짓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참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다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구현되거나 존속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논리적인 싸움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진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과 벌이는 토론일 수도 있지만, 또한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진리를 위한 투쟁에서 끝까지 맞서 보라는 권유는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가려질 때까지 끈질기게 이 문제를 안고 씨름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2. 우리가 신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데 대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 물음과,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신데 그분이 어떻게 한 하나님이신가" 하고 묻는 물음은 동일한 물음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물음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입장 또는 관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한 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물음에 대해서는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서 설명만 제대로 한다면 풀어지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신데 그분이 어떻게 한 하나님이신가" 하는 물음은 삼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곧 셋이라는 관념이 앞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데는 대단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삼위를 독립된 신격들(Persons)로 인정하게 되면, 밖으로는 "한 하나님"이라고 표명하더라도, 심층에서는 "세 하나님들"임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이의 심중에 있는 신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없지만, 스베덴보리 선생은 내세에서는 그것을 감출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관의 문제는 하나님을 한 분으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삼위를 독립된 신격들로 인정하는지에 따라서 판가름될 문제입니다.
3. David Kim 님은 본인의 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님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구분이 전혀 필요 가 없다고 하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문제제기에 대해서, 다른 설명보다 바로 님이 인용하신 글을 다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그 부분을 옮겨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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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아들”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 계실 때 신성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다. 구분되는 경계선은 세상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구분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神)이 세상에 오시면서 사람이 되셨는데, 그 때문에 그러한 구분이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한테는 바로 이렇게 사람 되는 성질이 있었는데, 이것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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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교리적인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류의 논쟁은 되도록 피하고자 하려는 것이 본인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이 점을 먼저 밝혀둡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고 차근차근 따져가면서 그 사실여부를 밝혀내는 일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포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태도라는 점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위한 투쟁"을 권했던 것은 참과 거짓을 마지막까지 가려보라는 뜻이었다는 점도 밝혀둡니다. 귀하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진리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논리적인 싸움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그 "논리적인 싸움"이라는 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참과 거짓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참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다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구현되거나 존속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논리적인 싸움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진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과 벌이는 토론일 수도 있지만, 또한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진리를 위한 투쟁에서 끝까지 맞서 보라는 권유는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가려질 때까지 끈질기게 이 문제를 안고 씨름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2. 우리가 신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데 대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 물음과,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신데 그분이 어떻게 한 하나님이신가" 하고 묻는 물음은 동일한 물음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물음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입장 또는 관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한 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물음에 대해서는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서 설명만 제대로 한다면 풀어지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신데 그분이 어떻게 한 하나님이신가" 하는 물음은 삼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곧 셋이라는 관념이 앞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데는 대단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삼위를 독립된 신격들(Persons)로 인정하게 되면, 밖으로는 "한 하나님"이라고 표명하더라도, 심층에서는 "세 하나님들"임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이의 심중에 있는 신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없지만, 스베덴보리 선생은 내세에서는 그것을 감출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관의 문제는 하나님을 한 분으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삼위를 독립된 신격들로 인정하는지에 따라서 판가름될 문제입니다.
3. David Kim 님은 본인의 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님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구분이 전혀 필요 가 없다고 하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문제제기에 대해서, 다른 설명보다 바로 님이 인용하신 글을 다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그 부분을 옮겨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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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아들”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 계실 때 신성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다. 구분되는 경계선은 세상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구분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神)이 세상에 오시면서 사람이 되셨는데, 그 때문에 그러한 구분이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한테는 바로 이렇게 사람 되는 성질이 있었는데, 이것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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