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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근현대사 박물관을 만들자!

작성자해운대라이프|작성시간26.06.22|조회수12 목록 댓글 0

해운대 근현대사 박물관을 만들자!

현 해운대구청사 활용 방안으로

해운대 근현대사 박물관 및 도서관 제안

 

1950년 가을 수영비행장과 주변 항공사진 - 동백섬과 매립되기 전 수영만, 수영해수욕장이 보인다 (한국저작권위원회, CC BY, 공유마당)

 

오늘날 해운대가 ‘한국 최고의 마천루 도시’이자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잡게 된 과정은 단순히 자연발생적 변화가 아니라, 시대별로 굵직한 개발정책과 공간의 전환이 맞물린 결과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동래부 관할의 변두리 어촌이자 온천 유람지에 불과했던 해운대가 거대한 도심으로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 핵심 동기들은 무엇일까?

 

◇ 일제강점기의 철도 건설과 온천 개발

 

일제강점기 해운대 발전은 ‘온천 자원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동해남부선 철도라는 근대 교통 인프라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비록 식민지 지배층의 유흥을 위한 왜곡된 개발이라는 한계가 명확했지만, 이때 다져진 격자형 도로망과 ‘해수욕장+온천’이라는 독특한 관광 인프라의 뼈대는 해방 이후 해운대가 대한민국 대표 휴양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1951년 해운대 동백섬 탄약 하역부두 (한국저작권위원회, CC BY, 공유마당)

 

◇ 한국전쟁으로 군사적 공간 확보 및 인구 유입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비극의 시기였지만, 동시에 수영비행장 부지 확보(훗날 센텀시티로 발전), 도로·교통망의 근대적 개보수, 그리고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해변 휴양지’로서의 성격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만약 이때 군사적 목적으로 확보된 거대한 공간과 인프라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센텀시티와 마천루의 해운대는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같이 해운대의 근현대 발전의 축은 철도 건설, 온천 개발,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군사훈련장 및 군수품 보급기지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일제강점기의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 부산의 군사요충지로서 자유 대한민국 수호의 전초기지가 된 해운대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흔적 중 대부분이 군사시설 안에 위치하는 관계로 이 역시 해운대 역사에서 비켜나 있다.

 

 

현 해운대구청사 (사진_ 해운대구청)

 

◇ 구청사 활용해 근현대사박물관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의 해운대로 발전한 근현대 역사가 점차 잊혀가는 현실이다. 그래서 근현대사 흔적을 발굴하여 곧 신청사로 떠나고 건물만 남을 현 해운대구청 건물에 ‘해운대 근현대사 박물관’을 만들면 어떨까 한다. 

 

박물관은 해운대 주민들에게 가까운 근현대사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신도시 개발 이후 외지인들이 많이 정착한 상황에서, 박물관은 지역 공동체의 뿌리를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해운대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해운대의 근현대사를 펼쳐 보이면 해운대의 역사를 더 알 수 있게 되고 그 만큼 해운대를 더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박물관과 함께 도서관도 만들자. 그러면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해운대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갈 것인지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근현대사에서 지우고 싶지만 기억해야 하는 일제강점기와 그 속에서 신음한 민초들,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근현대사박물관에서 생생하게 되살려 보자.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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