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106)
망부석(望夫石)
복심 할머니는 식사 때만 되면 옆 남자 병실의 상택 할아버지에게 가서 손수 밥을 떠먹인다. 10년 전에 남편을 사별했지만 치매 증세가 있어 이곳의 상택 할아버지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매일 지극정성으로 식사수발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직원들이 막았지만 아무리 막아도 막무가내로 오는 바람에 그냥 보고 있다. 상택 할아버지는 치매 정도가 심하여 매일 찾아와 도와주는 할머니를 요양보호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필자도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경험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3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후, 첫 직장이 북구 덕천동의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신생아를 받고 분만을 끝내고 나니 밤 12시가 넘었다. 택시를 타고 집 근처 대로변에서 내렸다. 거주하던 아파트는 찻길에서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계단을 찬찬히 올라가니 가로등 불빛이 차츰 멀어져 어두워졌다. 계단 끝 어둠 속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가니 앉아있던 사람이 뭐라고 외치며 나에게 달려왔다. “여보, 여보!” 어떤 여자가 나의 손을 잡고 껴안으려고 해서 아주 놀랐다. 자세히 보니 나에게 집을 세내준 피아노 학원 원장이었다.
“아니, 피아노 학원 원장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늦게 왜 이곳에 앉아 있습니까?”
“아, 선생님이시네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밤낮 분만을 도와야 하는 산부인과의 특성상 병원 근처에 전셋집을 구하려고 둘러보았으나 변변한 아파트가 없었다. 저 멀리 백양산 아래 아파트가 총총히 들어선 곳이 있어 아내와 같이 찾아다녔다. 길을 가는데 어떤 중년 부인이 전봇대에 뭔가를 붙이고 있었다. 읽어보니 전세를 낸다는 내용으로 시가보다 조금 싸게 내놓았다. 그 부인에게 말을 거니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것이었다. 이 집을 계약하고 싶다고 하니 일단 가서 계약서를 적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간 곳이 바로 피아노 학원이었다.
요즘은 부동산중개소에서 계약을 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곳이 많이 없어 이런 식으로 당사자끼리 만나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집을 왜 세를 놓느냐고 물어보니, 피아노학원을 하여 새집을 사고 입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달전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오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 전봇대에 받혀 그만 즉사를 했다고 한다.
“응급실에 가보니 편안히 자는 것처럼 누워 있었는데 의사는 남편이 죽었다고 말하더군요. 상처 하나 없이 죽어서 도저히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팔이라도 하나 부러지거나 어디에 피라도 흥건히 보였으면 차라리 나았겠어요.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지요. 이사 가면 남편이 집을 못 찾아올까 봐 이사를 갈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옛집에 그대로 살고 새집은 전세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 남편과 너무 닮아서 처음 봤을 때 아주 놀랐어요.”
이 부인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밤마다 망부석(望夫石)처럼 계단에 앉아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남편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여보!” 하고 외치며 달려가 손을 잡기도 하고 껴안기도 한다고 소문이 났다.
몇 달 뒤였다. 그날도 야간분만이 있어 일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 계단을 올라오는데 그분이 계단 끝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계단을 다 올라가니 그분이 “여보~” 하면서 달려와 나를 껴안으려고 했다.
그분은 나의 팔을 잡고 감싸며 마구 울었다. 병원에도 아픈 사람들이 많지만, 병원 밖에서도 아픈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필자는 30년간 산부인과 의사를 하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 다시 수년간 교육을 받고 노인병전문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요양병원에 저녁시간이 되자 요양보호사들이 식판을 들고 와 환자 식탁에 놓았다. 분홍색 앞치마를 둘러쓴 환자들은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복심 할머니가 또 와서 상택 할아버지에게 밥을 떠먹인다. 며느리가 가져온 김치를 내놓은 사람도 있고 아들이 갖다 준 김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상택 할아버지는 전생에 복을 많이 쌓았는가 보다. 문득 복심 할머니는 식사를 잘하실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