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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7. 주일 예배 / 사도행전 2:1~4 / 성령이 임하시면

작성자하나님의사람|작성시간26.06.06|조회수36 목록 댓글 0

성령이 임하시면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

또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도했습니다.

120여 명의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행 1:15).

 

1. 마침내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사건은 "오순절"에 일어났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로,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원래는 보리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Passover)인데,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Pentecost)은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절기(맥추감사절)입니다.

초막절(Tabernacles)은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로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오순절에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그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3에는 성령강림의 세 가지 특별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일어났습니다.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경에서 바람은 종종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능력을 가진 성령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둘째,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불은 죄를 태우고 정결하게 하여 새롭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거룩한 사명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셋째, 다른 언어로 말했습니다. 방언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복음이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전해질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2:1-4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교회를 시작하신 사건입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변화"입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변했습니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드러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치 숨어 살던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뛰어 들어가 예수님을 전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작은 기도 모임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교회가 의지해야 할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

이와 같이 교회의 시작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1-4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며 메시지입니다.

 

2. 성령은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했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1) 성령은 상황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바꾸시는 분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는 예루살렘 광장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설교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녀 한 사람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제는 군중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 5,000명이 회개합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환경은 그대로였습니다. 대적들도 그대로 있었고, 핍박과 위험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베드로 안에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이 수천 명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화했습니다.

 

***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어린 양치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소년 역시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경험 많은 사냥꾼이 소년의 곁에 서서 함께 길을 가주었습니다.

사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더 이상 두려워 떨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큰 존재를 믿으니 두려움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2)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은 환경이나 상황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능력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도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겁내지 말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감옥에서도 찬송했고, 핍박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인 두려움, 자녀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미래의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1:7)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3) 담대함은 성격이 강한 사람의 특징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두려움을 없애 주세요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두려움을 이길 믿음을 주옵소서."

성령이 임하시면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어도, 두려움 때문에 멈추어 서지는 않게 됩니. 이것이 오순절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령은 평범한 사람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1) 환경은 그대로인데 달라진 것은 제자들 안에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가장 큰 변화는 당시 주변의 환경이 아니라 제자들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흩어졌고, 부활 후에도 유대 지도자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한복판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언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핍박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을 잡아다가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4:18)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4:20)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였습니다.

로마의 압제도 그대로였고, 유대 지도자들의 위협도 그대로였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달라진 것은 제자들 안에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두려움을 없애 주시는 분이라기보다, 두려움보다 더 큰 믿음과 용기를 주시는 분입니다.

 

2)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 한 어린아이가 밤길을 무서워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갔습니다.

길은 똑같았고, 어둠도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보다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에서 문제와 어려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함께하시면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그 담대함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미래가 불안하십니까? 건강 문제로 염려하고 계십니까? 가정과 교회 문제로 마음이 무겁습니까?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담대함은 원래 강한 사람의 성격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실 때 나타나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상황을 바꿔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 제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두려움은 사명을 막지 못합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하게 되고, 염려 속에서도 전진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4. 성령은 교회를 세우고 살리십니다.

 

1) 성령이 임하시고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이 임하신 후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교회의 탄생이었습니다.

오순절 이전에도 제자들은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 속에 숨어 있었고, 세상을 변화시킬 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3천 명, 5천 명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교제했습니다.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졌습니다.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찬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생명력은 재정이나 건물이나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교회는 세워지고 교회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 구약 에스겔 37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뼈들은 너무 오래 말라 생명의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임을 당한 자()에게 불어 넣어서 살아나게 하라."

생기(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 호흡, 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마른 뼈에게 들어가자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연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성도가 적을 수도 있고, 재정이 넉넉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마른 뼈 같은 공동체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사람의 숫자보다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교회가 살아날 때는 먼저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도가 살아납니다. 예배가 살아납니다. 사랑이 회복됩니다. 전도의 열정이 생깁니다.

섬김의 기쁨이 회복됩니다. 교회 부흥은 밖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만져 주실 때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교회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더 좋은 환경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재정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작은 교회도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약한 성도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오늘의 어려움은 내일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 한국교회 초기 평양 대부흥 운동 당시 많은 교회들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건물도 초라했고 성도 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마을이 변화되고 지역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규모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교회도 성령이 함께하시면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성령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시고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다시 불게 하옵소서. 우리의 계획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살아 있는 교회로 세워 주시옵소서." 아멘.

 

*** 결론과 적용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론적으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도 두려워했고, 엘리야도 두려워했고, 베드로도 두려워했습니다.

문제는 두려움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느냐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면 패하여 망할 수밖에 없고 성령이 지배하면 세워지고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신 후에는 담대하게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은 겁 많은 사람을 용감한 사람으로, 숨어 있던 사람을 증인으로, 평범한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환경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교회, 사람이 많은 교회, 우리 교회보다 더 좋아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어떤 교회를 갈지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우리같이 작은 교회일지라도 20여곳을 선교할 수 있지만,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교회라도 움켜쥘지만 알고 선교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크게 보이고, 문제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보이며,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두려움보다 성령님의 임재가 더 크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이 임하시면 두려움은 담대함으로 바뀌고, 염려는 믿음으로 바뀌며, 평범한 삶은 하나님 역사하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십니다. 환경을 이기게 하십니다.

평범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작은 교회를 살아 있는 교회로 만드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 약속이 오늘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적용해 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건강 때문에 두렵습니까?

자녀의 미래 때문에 걱정하고 있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염려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미래가 염려됩니까?

 

제자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두려워했고, 실패했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셨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에 묶여 살지 않았습니다.

 

첫째,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신뢰할 때 담대함이 시작됩니다.

 

둘째,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담대함은 결심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담대함도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도하며 "성령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구해야 합니다.

 

셋째,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십시오.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후 사람들 앞에 나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담대함은 두려움이 사라진 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작은 순종은 무엇입니까?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누구든 지금 용서하시고 전화로, 찾아가 용서하십시오,

전해야 할 복음의 대상이 있습니까? 가족입니까? 일가친척입니까? 이웃입니까? 동료입니까?

미루지 마시고 기도로 준비하고 만나서 차 한잔 사주면서 곧바로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가고 오는 것이나, 하고 안하는 것도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입니다.

 

시작해야 할 기도가 있습니까? 오늘부터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하는 성도를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 답답하고 죽을 지경입니다.

성령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더하십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이루십니다.

성령강림 절기에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 받고 날마다 기적을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베드로에게 담대함을 주셨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도 용기와 믿음을 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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