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학교를 갈 것인가, 어떤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앞으로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눈이 미래를 다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길을 다 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우리는 내일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불안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마음을 다하여 나를 믿고 신뢰하라."
1.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인정) 신뢰(맡긴다)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핵심은 지식이 아닙니다.
1) 신앙의 핵심은 신뢰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지식은 많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합니다. 걱정이 앞서고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약2:19)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 사람은 맡겼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불평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 41:10 쉬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하고 너희를 돕겠다.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희를 붙들겠다.
성도는 이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맡기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요14:1)
*** 어느 시골 마을에 홍수가 났습니다.
한 노인이 집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와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빨리 타세요." 그러나 노인은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왔습니다. 그래도 노인은 거절했습니다. 결국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저를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보트도 보냈고、 헬리콥터도 보냈는데 왜 타지 않았느냐?"
지금 여러분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신뢰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는 말씀에서 "마음"은 단순한 감정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2) 마음은 생각, 의지, 감정, 삶의 중심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는 말씀은 "남은 한 부분은 내가 붙들고 있겠습니다"가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신뢰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자신의 경험과 계산을 더 믿을 때가 많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내가 해결책을 찾아야 해." "그래도 이 문제는 하나님도 어려우실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맡기지는 못하는 절반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절반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라,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3) 마음을 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보다 내 걱정을 더 믿고 있는 문제"는 없습니까?
그것이 자녀 문제입니까? 건강 문제입니까? 교회의 미래입니까? 경제적인 문제입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 네가 다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다. 마음을 다하여 나를 신뢰하라."
신뢰는 모든 답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믿고 맡기는 데서부터 신뢰는 시작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다 압니다"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신뢰이고 신앙입니다.
2. 네 명철을 의지(신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내 생각을 더 믿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1) 명철은 인간의 판단과 계산입니다.
물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약속하신 아들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람이었습니다.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사라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들의 계산을 앞세우게 됩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이 약속은 하셨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봐야지“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이었고 아브라함의 명철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정 안에 갈등과 상처가 생겼고, 결국 하갈과 사라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명철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명철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2)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사람의 가능성은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힘으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네 자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너의 명철로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한 일이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응답이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자녀 문제, 건강 문제, 교회 문제, 물질 문제 때문에 조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꾸 인간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보다 빨리 뛰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3)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때를 믿고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믿는 사람도 기다림에 실패할 수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다"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잠언 3장 5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의 약속은 늦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늦어질 수는 있지만 결단코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응답이 늦어지는 것은 준비하는 시간이고,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방법밖에 없어." "이건 절대로 안 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길을 보고 계시며 계획하고 계십니다.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멘.
3.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잠3:6).
1) 범사란 어떤 특별한 경우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주일에만 인정하는 분이 아닙니다. 범사에 인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성도는 항상 이 질문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범사란 어떤 특별한 경우만이 아닙니다. 좋은 일에도, 어려운 일에도,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큰 병이 생기거나,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자녀 문제가 생기면 그때 기도합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명철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급할 때만 찾는 비상벨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인정하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이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알다", "관계를 맺다", "존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이 일에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럴 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습니다."라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을 앞두고 자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전쟁에 "올라갈까요?" "기다릴까요?"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자기 판단(생각, 명철)만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100전 100승 하였습니다.
반면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 기브온 사람들의 말만 듣고 조약을 맺었다가 후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여호수아 9장).
성경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보호받고 성공, 자기 생각만 믿는 사람은 실패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명철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처음 가는 길을 찾아갈 때 길을 잃고 헤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내비게이션을 사용합니다.
내비게이션이 "100m 앞에서 우회전하십시오."라고 말하면 그대로 따라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모르는 길을 내비게이션이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알겠어. 하지만 내 생각이 더 맞아." 하고 계속 자기 마음대로 가면 결국 길을 잃고 고생하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십니다. 말씀을 잘 듣고 행하면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듣지 않는 것입니다. 들어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멈추라고 하는데 멈추지 않고, 하라고 하시는데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생기고, 후회하게 되고, 고생고생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의 특징은 결정하기 전에 먼저 기도합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일이 잘될 때도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기다립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주일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주일까지도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 어느 농부가 말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말이 도망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참 안됐습니다."
농부는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며칠 후 그 말이 야생마 여러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정말 복을 받으셨네요." 농부는 또 말했습니다. "글쎄요."
그 후 아들이 야생마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습니다. 농부는 또 말했습니다. "글쎄요."
얼마 뒤 전쟁이 일어났고、나라의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부러진 아들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재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보시고 끝을 보십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4.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지도하십니다.
본문 마지막 약속입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은 길을 미리 다 보여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광야 전체 지도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루하루 인도하셨습니다.
신앙은 모든 답을 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한 걸음씩 가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명령만 주시지 않고 약속도 주십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모든 길이 평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2) "내가 네 길을 책임지겠다."라고 하십니다.
밤길을 운전할 때 자동차 라이트 등은 멀리 수십 킬로미터를 비추지 않습니다.
겨우 몇십 미터 앞만 비춥니다. 그러나 그 빛만 따라가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그렇습니다. 인생 전체를 보여주시지는 않지만、다음 걸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십니다. "네 길을 내가 책임지겠다.
*** 결론과 적용 ***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네 계산보다 나를 신뢰하라."
"네 걱정보다 나를 신뢰하라."
"네 두려움보다 나를 신뢰하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의 계획이 어떻게 될지, 자녀들의 앞날이 어떠할지, 교회와 가정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지만,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너는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하나님)를 인정하라."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크고,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선하며, 내 능력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다는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지금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 문제로 염려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안고 계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관계가 깨져서 고민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모든 지도를 한꺼번에 보여주시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길을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인생을 붙들고 계신 분이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의 생각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의 계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의지하고 맡기십시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의지하기보다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따라가게 하시며, 가정과 교회와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길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가 /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봉헌기도 / 최환성 목사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춰주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