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18~20 / 세례 요한의 의심
(눅 7: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눅 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눅 7: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한 선생님이 학생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학생도 선생님을 사랑했습니다. 학생은 장애가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하여 고등학교로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을 모질게 대해야 그 학생이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험한 말을 하여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학생이 자살하여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이것은 그 선생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믿음이 좋은 세례 요한도 감옥에 갇히게 되자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가에 대해서 의심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실족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실족한다는 것은 발을 헛디디어 떨어져 죽는다는 뜻입니다.
불신에 빠져서 예수님을 떠나 지옥에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첫째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왜 생기는지? 둘째 예수님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18~20절 세례 요한은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당신은 옳지 않소!” 책망하였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과부의 죽은 외아들 청년을 살리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된 것을 고친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요한은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맞는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요한은 제자 둘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오실 그리스도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우리가 기다릴까요?” 물어보았습니다.
전에 예수님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 요한이 왜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들었을까요?
자신이 전한 예수님과 지금 예수님의 하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 주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만약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리스도 예수님이 오셔서 도끼로 찍어 불에 던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롯 왕의 부도덕한 생활을 보고 담대하게 회개하시오!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래도 요한은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헤롯을 심판하고, 자신을 구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예수님은 자신을 구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 중풍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는 소식만 들려왔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전한 메시아와 다른 활동을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과연 그리스도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두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이 그리스도 맞는가 질문한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이 이런 의심에 빠진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됩니다. 우리도 요한과 같은 의심에 빠지고 또 의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한이 전한 메시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행하신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요한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요한이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끼로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왔을 때는, 요한이 전한 메시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신에 빠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시험에 드는 일은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신앙생활 출발할 때 큰 민족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출발했습니다.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고 여호와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99세가 되기까지 아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불신에 빠져 첩 하갈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 후손들이 현재 이슬람교를 만든 아라비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뭇별처럼 낳은 자손을 주신 것은 400년 후 애굽에서 나올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2백만이 되었습니다. 4000년이 지난 지금 아브라함의 후손은 40억 이상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교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이들을 다 합하면 세계인구 72억 중에 절반이 넘는 40억 이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볼 때 믿음이란 정말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바벨론에 의해 유대가 망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방인에 의해서 망하는가? 하박국은 어찌하여 더 악한 이방인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의인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을 믿음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친히 바벨론을 페르시아를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믿고 그때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하박국은 마지막에 고백합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다면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은 아직 받지 못하였지만 이미 받은 것으로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영생을 얻고 헤롯은 영벌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은 헤롯이 심판을 받고 자신은 천국에서 영생할 것을 믿고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미 내가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을 믿고 오늘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세례 요한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감옥에서 구원하지 않으셨지만,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 나병환자를 치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병에서 나은 자와 죽었다가 살아난 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감옥에 있어도 구원받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지구는 태양을 어김없이 돌고 봄이 왔습니다.
진달래 꽃, 개나리 꽃이 피고 벚꽃, 목련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장은 계속하여 뛰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를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