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65~71 /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요 6:65, 개정)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 6:66)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7, 개정)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9, 개정)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요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요 6: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더라 아멘
* 많은 사람이 떠나갈 때도 주님 곁에 남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시작되지만, 끝부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고, 믿음의 본질을 가르치시자, 사람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하며 물러갔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무리가 많았지만, 모두가 참된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떡을 얻기 위해 따르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말씀을 위해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이 편안하고 유익할 때는 따르기 쉽지만, 말씀이 내 생각과 충돌하고 희생을 요구할 때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환경이 아니라 말씀 때문에 주님 곁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이 질문은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억지로 붙잡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신앙은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인 믿음의 결단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여러 번 이 질문 앞에 섭니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 베드로의 신앙고백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는 "우리는 다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수많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돈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쾌락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주는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곳은 많지만, 영혼을 살릴 곳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신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70~71절).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모두가 참된 신자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주님께 향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예배, 기도, 봉사보다 먼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결론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시대에도 베드로의 고백은 여전히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떠날 수 있습니다. 환경은 흔들리고 형편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말씀은 오직 예수님께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주님을 더욱 굳게 붙들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주님, 세상의 많은 소리보다 영생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베드로처럼 "주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주님 앞에 진실한 신앙으로 서게 하시고, 오늘도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