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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41~44 / 가난한 과부가 칭찬받은 일

작성자하나님의사람|작성시간26.06.07|조회수15 목록 댓글 0

마가복음 12:41~44 / 가난한 과부가 칭찬받은 일 / 545

 

(막 12: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12:42, 개정)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 12:43, 개정)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12:44, 개정)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가난한 과부의 헌금 사건은 단순히 "적은 돈을 드렸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문의 배경을 알면 예수님의 칭찬이 더욱 놀랍게 다가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앞 문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12:40)

즉, 종교 지도자들은 경건한 척했지만, 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직후 예수님은 헌금하고 있는 한 과부를 주목하여 보십니다.

 

당시 성전 뜰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나팔 모양의 금속으로 만든 헌금함이었는데, 동전을 넣으면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그래서 많이 넣는 사람은 큰 소리가 나고 적게 넣는 사람은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누가 많이 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과부가 넣은 돈은 "두 렙돈"이었습니다.

렙돈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가치로 보면 거의 무시될 정도의 금액이었습니다. *렙돈 = 데나리온의 1/64정도 (20/3천원)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정도는 넣으나 마나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가장 많이 드렸다고 하셨을까요? 많은 부자들이 큰 액수를 넣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부자들의 헌금이 더 커 보였고, 과부의 두 렙돈은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금액이 아니라 중심을 보셨습니다.

 

1. 하나님은 많고 적음보다 마음을 보십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그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를 드렸는가?"보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드렸는가?"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액수를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계산법은 달랐습니다.

 

부자들은 많이 드렸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돈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적게 드렸지만,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에 남아 있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모든 사람들은 넉넉한 중에서 헌금을 하였지만, 과부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 즉 생활에 필요한 돈 전부를 바쳤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과부는 가진 것만이 아니라 자신까지 드렸습니다.

 

이미 설명한 대로 두 렙돈은 작은 돈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돈만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계를 드렸고, 자신의 미래를 드렸으며, 자신의 삶을 드린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겼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액수보다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사람은 금액을 보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헌신은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쓰기 전(최선)에 드린다는 것입니다.

과부는 남는 돈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전부, 즉 자신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 믿음은 신뢰의 문제임을 배웁니다.

과부의 헌금에는 "내일 먹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부의 두 렙돈은 작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 인생 전체였습니다.

 

3. 큰 믿음은 큰 소유가 아니라 큰 신뢰입니다.

 

우리가 배웠던 가나안 여인은 끝까지 매달리는 믿음을 보였고, 향유 부은 여인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가난한 과부는 전적으로 맡기는 신뢰를 보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사회적으로 약한 자로 외면당했지만, 예수님께 칭찬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크기로 판단합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 얼마나 큰 일을 하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드리는가?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과부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두 렙돈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왜입니까?

 

그녀가 가장 많은 돈을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많이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남는 것 가운데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내일을 맡겼고, 생계를 맡겼고, 자신의 삶을 맡겼습니다.

믿음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신뢰성의 깊이와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 이유는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니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부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믿고 떠났고, 과부는 보이지 않는 내일을 믿고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가진 사람보다, 자신을 맡기는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내 계산과 염려를 내려놓고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드림의 크기보다 믿음의 크기를 돌아보게 하시고, 내 삶 전체를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내 형편과 계산보다 주님을 더 신뢰하게 하소서.

과부처럼 삶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소유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게 하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부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신뢰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에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545장 찬송하겠습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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