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1~10 /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칭찬받은 일 175장
(마 25:1, 개정)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개정)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마 25:3, 개정)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개정)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5, 개정)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6, 개정)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7, 개정)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마 25:8, 개정)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 25:9, 개정)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개정)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재림과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르치시기 위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각각 자기의 등을 들고 기다립니다.
다섯은 슬기로운 처녀이었고, 다섯은 미련한 처녀들이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뿐 아니라 기름을 여분으로 준비했습니다.
반면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준비했지만, 기름은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오자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외침이 들리자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고,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신랑이 도착합니다.
결국 준비된 처녀들만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힙니다.
1. 중요한 것은 '기다림'보다 '준비'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의 핵심은 "기다림" 자체보다 "준비된 기다림"에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열 처녀 모두가 신랑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모두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다가 모두 졸며 잠들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기름을 준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기다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니 준비된 상태로 기다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열 처녀 모두 신랑을 기다렸고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차이는 잠을 잤느냐가 아니라 준비가 되어 있었느냐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은 겉으로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까지 믿음을 유지하며 준비된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재림에 대해 많이 말한다고 그 사람이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그 사람도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 자녀인 것이 준비는 아닙니다.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받은 것이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는 아닙니다.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믿음의 지속적인 순종, 성령 안에서 깨어 있음이 준비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가?"를 묻지 않고, "신랑이 왔을 때 준비되어 있었는가?"를 묻습니다.
2. 준비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말합니다. "너희 기름을 좀 나누어 달라."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거절합니다. 이는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준비는 남이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믿음, 목회자인 아버지의 믿음, 교회의 전통이 나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합니다.
예를 들면, 부모는 자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지만, 믿음을 대신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가르칠 수 있지만, 성도의 영적 준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는 서로 격려할 수 있지만, 신앙생활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양육할 수 있지만, 개인의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라지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결국 각자입니다.
신앙생활은 함께할 수 있지만, 준비는 대신할 수 없습니다.
또는 부모의 기름은 자녀에게 옮겨지지 않고, 목사의 기름도 성도에게 옮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의 준비는 각자의 몫입니다. 이 비유의 긴장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열 처녀가 함께 출발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각자가 준비한 만큼만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3. 재림의 때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뿐 아니라 마태복음 24~25장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그래서 성경의 관심은 언제 오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다리는가에 있습니다.
신랑은 예상보다 늦게 왔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는 특정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친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은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 오실까?" "말세의 징조가 이것일까?" "재림 날짜를 계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날짜를 알려 주시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마 24:42)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준비하고 있으라." (마 24:44)
재림 신앙의 핵심은 재림의 날짜를 알아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어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100년 뒤에 오셔도 충성되게 사는 것입니다.
늦어 보일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깨어 있음입니다.
재림의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림의 때까지 준비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지혜는 신랑이 언제 오는지 안 데 있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언제 오든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한 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신 재림 신앙의 모습입니다.
4. 문이 닫히는 때가 있습니다.
"문이 닫히는 때가 있습니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에서 가장 엄중한 경고 중 하나입니다.
신랑이 도착했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0)
이 말씀은 두 가지 진리를 보여줍니다.
첫째, 구원(은혜)의 문은 지금 열려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올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잔치의 문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기회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둘째, 결단의 시간이 끝나는 때(날)가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도 결국 기름을 구해 왔습니다. 그들은 문 앞에 와서 외쳤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1) 그러나 이미 문은 닫혔습니다. 늦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노아 때도 홍수가 오기 전까지 방주의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누구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습니다(창 7:16).
문이 열려 있을 때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닫힌 후에는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준비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취업하며, 여유가 생기면, 자녀들 다 키우고 나면, 늙어서 할 일 없으면...
그러나 그것은 착각의 자유일 뿐입니다.
나중에 더 열심히 믿겠다. 은퇴하면 신앙생활에 집중하겠다. 시간이 나면 헌신하겠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는 분명합니다. "준비는 내일 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입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시지만, 문이 닫히는 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등은 믿음이고 기름은 성령이라는 해석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에서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하는 전통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다만 성경이 기름은 성령이라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기름은 성령을 상징할 수 있다"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준비해야 할 성령"이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성령은 우리가 준비해 두는 물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는 것,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
미련한 처녀들의 문제는 신랑이 왔을 때 기름을 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다가 위기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 없이 살다가 어려움이 오면 믿음을 찾는 것입니다.
성령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영적 능력을 기대하는 것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대신 받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성령 체험이 자녀의 체험이 될 수 없고, 목회자의 성령 충만이 성도의 성령 충만이 될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성령과 동행하면서 순종해야 합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삶은 성령 충만한 삶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18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세상이나 부귀영화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해야 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의 준비를 성령의 관점에서 본다면, 재림을 준비하는 가장 실제적인 모습은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령과 동행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칭찬받은 이유는 등불도 가지고 기름도 충분히 준비했던 것입니다.
즉, 믿음도 있고, 성령도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 결론과 적용 ***
이 비유는 특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열 처녀 모두 신랑을 기다렸고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모두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구별된 것은 외적인 위치가 아니라 실제 준비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나는 교회 안에 있는가?"보다, "나는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게 합니다.
무엇으로 준비해야 합니까?
믿음, 기도, 말씀, 섬김과 순종을 통한 성령 충만함입니다.
비유의 결론은 13절의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지혜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신랑이 늦어져도 끝까지 준비를 유지한 인내와 대비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셨던 재림 신앙의 모습입니다.
주님,
겉모습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진실한 믿음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신랑이 더디 오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끝까지 충성하며 기다리게 하옵소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외침이 들릴 때,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주님을 맞이하게 하시고, "내가 너를 안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심령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기름을 채워 주셔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늘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