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바토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때, 필자의 칼럼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들이 계실 거다. "지방선거 논평, 이란 전쟁, 종전 협상,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등 굵직한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는 시급한 때에, 왜 하필 '돼지' 이야기인가?" 하고 말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이 질문이 절대 가볍지 않다.
국내 축산물품질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도축되는 돼지는 하루 평균 약 5만 마리~5만 5천 마리 수준이다. 이는 연간 1,800만~1,900만 마리로 시간 단위로 쪼개어 보면 한 시간마다 약 2,100 ~ 2,300마리이고 1분당 약 35~38마리씩 도축하는 셈이다.
치킨, 삼계탕 등으로 소비량이 연간 10억 마리 이상 도축되는 닭은 초당 30마리이니 수치상으로 닭보다 적은 것 같다. 하지만 돼지는 닭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수명이 긴 포유류라는 점에서, ‘1분에 약 36마리’, 즉 ‘2초에 1마리 이상’씩 도축된다는 수치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이 엄청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집단 사육과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가동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마트에 전시된 한 팩의 고기가 되기 위해 돼지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비좁은 틀(스토어)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한다.
그 틀에서 움짝달짝 못한 채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소비재 상품'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거대한 공장식 축산의 톱니바퀴 속에서 가축의 생명 존엄성은 철저히 소거되어 있다.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각 지역의 일꾼을 자처하는 수많은 후보가 저마다 풍요로운 지역 경제와 화려한 개발 공약을 목청 높여 외쳤다. 그 수많은 확성기 소리 중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의 생존권을 이야기하는 당선자의 목소리를 한마디라도 들은 적이 있는가?
최근 미국에서는 돼지 학대를 방지하고 최소한의 사육 환경을 보장하려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동물보호법'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며, 그나마 '반려동물'의 학대 처벌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고 '가축'의 비참한 삶을 개선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선거가 끝난 이 시점에 굳이 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가 진정으로 '살기 좋은, '품격 있는 지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축 학대와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애견을 아끼고 보호하듯 무겁고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까지 비인간적이고 반자연적인 집단적·산업적 축산 시스템을 묵인하며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자본주의적 대량 생산 시스템이 지구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경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역시 '생명과 생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외면당했다.
당선 안정권에 드는 양당 후보들의 동물 관련 공약은 99% '반려동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도축장으로 향하는 농장 가축들의 사육 환경을 바꾸겠다거나 집단 사육 시스템을 규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당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소수 진보 정당 후보들이나 일부 환경운동가 출신 후보들이 지자체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공장식 축산 규제, 밀식 사육 금지, 생태 축산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역 경제 개발이 우선"이라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넘지 못하고 전원 낙선했다.
우리나라 지자체 선거에서는 여전히 '동물을 얼마나 가두어 키우든 고기를 싸고 많이 생산해 지역 농가 소득을 올리는 것'을 치적으로 삼고 있다. 진정한 지역의 발전은 눈에 보이는 도로를 닦고 건물을 올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우리 지역에서 살아가는 가장 약하고 말 없는 존재들, 즉 공장식 축산 속에서 신음하는 가축들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 또한 지자체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문명적 책무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출처: M이코노미뉴스
(사)한국수입육협회 http://www.korm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