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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자유잡담〃

삼국지 정사기준 무력순위

작성자[폭주]關羽|작성시간20.03.24|조회수19,996 목록 댓글 2

네이버 블로그 전략가 님의 글을 납치해 왔음을 밝힙니다.

출처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kdea12&logNo=22155189203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kdea12&logNo=22155189203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kdea12&logNo=22155189203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kdea12&logNo=22155189203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kdea12&logNo=22155189203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kdea12&logNo=22155189203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ㅇㅇㅇ

입니다.

===================================================================

일단 삼국지, 많은 사람이 처음 겪은 그 삼국지는

나관중이 쓴 소설 ‘연의’로서

실제 65, 허구 35를 섞어 만든 판타지임.

연의에서 묘사된것 처럼 여포가

유비, 관우, 장비와 3:1로 싸운 것도 

나관중이 엄청 치장해서 만든 소설의 걸작이란 뜻.

(그래도 불세출의 명작이긴 함.)

실제의 삼국지, 즉 ‘정사’에서 기록된

일기토(1대1싸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장군이 죽으면 게임 셋인 고대 전투에서

뭐만하면 부들거려서 말타고 1대1 싸움 했다는게

얼마나 허구성을 집어넣은 소설인지 잘 알 수 있음.

특히 그중에서 가장 버프된건 여포.

실제 역사서에서도 무력과 기마술은 뛰어나다고

적혀있고, 활쏘기 일화는 사실임에도

정작 실제로 그가 지휘해서 이긴 전쟁은

원소의 군대 빌려서 산적무리 한번 턴게 전부임.

이외에도 하후돈.

행보관으로 유능했으나 군사로는 무능한 그는

단지 애꾸눈 이라는 이유로

용맹하다는 평뿐인 하후연과 더불어서 조조군

원투펀치가 됨. 실제로 애꾸가 잘 싸울리도 없고.

그러면?

실제 역사에서 공식 인증된 무력을 가진

최강자들은 누구였을까?

기록을 통해서 한번 5명을 간추려 보겠음.


Top5

장료

“료라이(遼來)!”

(장료가 왔다!)

소설에서도 게임에서도 문무를 갖춘 장군으로

나오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동일한 포지션임.

조조에게 합류한 이후 관도전과 

여러 도적들을 토벌하면서 실력을 점점 입증하였고,

대오전선에서 그 포텐이 결국 터지게 됨.

조조는 전선을 조정하면서 합비에 장료를 포함한

여러 장군에게 7,000명의 군대를 맡기고 떠나는데,

이를 갈던 손권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로 몰려옴.

이에 장료는 본때를 보여줘야 승리를 할 수 있다고 

판단 하였고, 사이가 안좋은 이전을 설득해서

800명의 병사들로 기습을 시도함.

새벽 녘 동틀 무렵,

 장료는 갑옷을 입고 극을 들고 선두에 서서 

적진을 함몰시켰다. 

(장료는)수십 명을 죽이고 2명의 장수를 베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보루를 뚫고 들어가 

손권의 대장기 아래에까지 이르렀다. 

손권은 크게 놀랐고 주위의 사람들은 당황해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손권은 달아나 높은 무덤 위로 올라갔고 

장극(長戟)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장료가 손권을 욕하며 내려와 싸우자고 했으나 

손권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한마디로 800명의 결사대로

100배가 넘는 적진사이를 뚫고서 손권이 있는

지점까지 도달해서 거의 죽일뻔 했다는 것.

여기서 7척이 넘는다고 적혀진

진무가 장료군에게 참살 당했고,

손권을 호위하던 능통의 300 호위대도

몰살당함’ 한명도 빠짐없이 800명에게.

이 외에 서성을 포함한 여러 장군이 부상당하고

남은 장군들이 죄다 장료에게 달라붙어서야

결국 장료가 퇴각했다고 역사서에 실제로 적혀있음.

결국 이에 질린 손권과 10만대군은

퇴각함.

한마디로 진짜 ‘무쌍’을 찍어낸거임.

선두에서 수십명+장군을 장료혼자 죽이면서

결코 무능하지 않은 손권쪽 장군들을 유린함.

이것만으로도 실제 얼마나 대단한 장군임을

알 수 있음.


Top4

전위

“적군이 열 발짝까지 접근해오면 나에게 보고하라.”

소설에서의 전위는 조조를 호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무장으로 묘사됨.

소설에서의 전위는

그렇게 과대포장이 된 장군이 아님.

대부분이 살짝만 각색된 경우고,

실제 이야기가 대부분임.

일단 그의 체격부터 봐야됨

“용모가 우락부락하고

근력은 다른 사람을 뛰어 넘었으며 ...”

“아문(牙門)의 깃발이 매우 컸으므로

일반 사람들은 들 수가 없었는데,

전위는 단 한 손으로 깃발을 일으켜 세웠으므로,

조총은 그의 재주와 힘을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다.”

삼국지 처음에 전위가 등장해서 깃대를 드는 장면은

전부 사실임.

일단 기본적으로 엄청난 체격과 일반 사람보다

몇배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음.

조조가 복양성에서 여포하고 싸울때의 일화는

더욱 엄청남을 알 수 있음.

“조조가 적진을 뚫고 나갈 병사를 소집하자,

전위가 제일 먼저 참가하여

응모한 수십 명을 통솔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두꺼운 옷과 두 겹의 갑옷을 입고

방패도 들지 않고, 단지 긴 창과 화극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때 서쪽에서 또 긴급하게 고하자

전위는 병사를 이끌고 적을 감당했는데,

적은 화살과 쇠뇌를 어지럽게 쏘았고,

화살은 비가 내리듯 쏟아졌으므로,

전위는 바라볼 수도 없어 병사들에게 말했다.

“적군이 열 발짝까지 접근해 오면 보고하라”

병사가 말했다.

“열 발짝 입니다”

또 명령했다.

“다섯 발짝일 때, 보고하라”

병사가 두려워하며 긴급하게 외쳤다.

“적이 왔습니다.”

전위는 손에 십여 개의 화극을 들고

큰소리로 고함지르며 일어났다.

화극이 닿은 적은 고꾸라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여포의 군대는 퇴각했다.

마침 날이 저물었으므로

조조는 병사를 인솔하여 떠났다.”

연의에서 나오는 그 철극 던지는 장면 역시

사실임을 알 수 있고, 그의 피지컬과 무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 수 있음.

이건 전위의 최후에서도 볼 수 있는 항목인데

다음은 장수가 조조를 기습할때의 항목임.

“전위가 성문 가운데서 맞아 싸웠으므로

적군은 들어올 수 없었다.

적군은 흩어져 다른문으로 공격하여 들어왔다.

(중략)

전위도 수십 군데 상처를 입었고,

길이가 짧은 무기를 쥐고 접전을 벌였으므로

적이 앞으로 와서 그를 잡으려 했다.

전위가 두 명의 적을 양 겨드랑이에 끼워 쳐 죽이자,

다른 적군들은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전위는 또 적군에게 돌진하여 몇 명을 죽였으나..”

10여명의 부하들과 함께 화살이 쏟아짐에도

성문을 수백명이 공격함에도 방어를 해냈으며,

몸에 상처가 가득했음에도 여려명 더 죽인걸 보면

투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음.


Top3

허저

“이는 나의 번쾌로다!”

-조조

허저가 3위를 차지한건 다름아니라

순수 ‘피지컬’ 때문임.

“신장이 8척 남짓하고,

허리 크기가 10위이고,

용모는 위엄있고 강인하며,

용맹함과 힘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

한마디로 당시 수치와 비교하면

키 184cm에 허리둘레가 120cm,

몸무게는 질량비로 보면 125kg 정도의 피지컬인

‘근육 돼지’라는 뜻임

충분히 이것 만으로도 순위권을 달성하지만

그와 관련된 일화를 여러개 적기로 함.

“허저가 돌을 날려 던지면,

맞는것은 모두 부셔졌으므로

적은 감히 진격하지 못했다.”

-도적과의 전투 중

허저가 자기 지역에 도적 수천명이 처들어오자,

허저는 동네 장정을 모아 수성전을 했는데,

무기가 없어서 돌을 던지자 맞은 적이

터졌다’고 함. 일단 엄청난 괴력임을 알 수 있음

“적이 와서 소를 가지려 하자,

소는 놀라 도망쳐 돌아왔다.

그래서 허저는 진영 앞으로 나가 한 손으로

소꼬리를 거꾸로 하여 끌어당겨

적군이 있는 쪽으로 백 보 남짓 걷도록 했다.

적군은 그의 용맹스럼움에 매우 놀랐으며,

결국에는 소조차도 감히 달아나지 못했다”

그 도적과의 전투에서 소와 쌀을 거래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도망가려던 소를 한손으로 끌면서

100걸음을 걸었다는 것이 실제 역사서에 적혀있음.

이 외에 조조와 마초가 싸울때

마초-한수와 조조가 호위병 없이 회담을 함.

근데 마초가 마초다보니 호위병이 없으니까

조조를 죽일려고 했는데..

‘조조는 고개를 돌려 허저를 가리켰고,

허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초 등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각자 진영으로 돌아갔다.’

천하의 마초가 허저한테 쫄아서

조조를 못 죽이고 결국 돌아갔다는것도 적혀있음.

결론? 다른건 몰라도 허저는

삼국지에서의 피지컬과 힘은 최강이었음.


Top 2

관우

“내가 관우와 장비를 다루면 서촉을 평정하고,

조조 역시 넘볼 수 있다”

-주유

“관우의 용맹은 삼군을 뒤덮는다”

-유엽

소설에서의 관우의 위치는 결코 낮은게 아님.

하지만 실제 역사서를 보면 소설에서 관우를

저평가 했다고 생각할 만큼 기록이 많음

당대의 수많은 모사들,

여몽,주유,육손,정욱,순욱,곽가등 내로라 하는

책사들은 죄다 관우한테 만인지적이라고 평가하였고,

더불어서 충성과 의기, 그외의 것들은

그를 신으로 만드는데까지 일조했다고 보면 됨.

하지만 그 자체가 오만하였고,

패배한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관우가 당대의

인물이었음은 부정 할 수가 없음.

일단 무력 순위이므로 순수하게 무력으로만

관우를 판단하겠음.

일단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삼국지에서의

일기토 장면은 손가락에 꼽을정도로 적음.

그런데?

관우는 그 기록 당사자 중의 한명임.

‘조공은 장료와 관우를 선봉으로 삼아

이를 공격하게 했다.

관우는 안량의 휘개를 멀리서 보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가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 수급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제장들 중 당해낼 자가 없었고

마침내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조공이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로 봉했다.”

-관우전

실제 기록에서 수많은 원소군을 혼자서 뚫고

안량을 죽이고 유유히 돌아왔다고 적혀있음.

원소군은 당대 최고 물량을 가진 군대였음에도

심지어 그중 대장인 안량의 호위부대가

절대 적지 않았음에도 이걸 관우는 해냄.

이건 세계사 통틀어도 얼마 없는 기록인데

당시 기병 기술력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기록임을 알 수있음.

당시 기병이 등자가있음? 보호대가 있음?

이것만으로도 관우는 무신의 칭호를 받아도

마땅할 정도. 왜냐? 저 기록이 말이 안되니까.

전위 허저와 같은 피지컬은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장료의 상위호환급 공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Top1

문앙

“먼저 그 기세를 꺾지 않으면

달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삼국지의 최강자, 무신

후반기 무장중의 최강이자,

실제 삼국지의 최강 무장.

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제갈량 죽고 순식간에 스킵해서

헤헿 사마염이 통일했어요 라는 식의 삼국지를

본 사람은 전혀 들어본적이 없을것임.

삼국지 정사-소설에서 극 후반기,

그러니까 제갈량 사후 사마의의 아들이

위나라의 정권을 잡은 시기의 인물임.

당시 위나라 장군이었던 관구검은

요동을 정리하고 고구려를 침입해서 동천왕의

2만 군대를 개박살 내는등 전쟁 영웅 대우를 받았으나,

사마의의 아들 사마사가 위의 권력을 잡고서

관구검의 친구였던 하후현등을 축출하자

관구검은 뜻이 같았던 문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 문흠의 아들이 문앙임

사마사는 빠르게 등애를 앞세워서

문흠을 포위하였는데,

이때 18살이었던 문앙이 사마사를 기습함

(이때 놀란 사마사는 눈알이 빠짐)

그러나 지원군이 오지 않자 문흠과 문앙은

퇴각하게 되는데,

그러자 사마사가 기병을 보내서 문흠을

잡으려고 하자

“먼저 그 기세를 꺾지 않으면

달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 문흠에게

‘그러고는 날랜 기병 10여 기를 데리고

적군의 선봉을 꺾고 진세를 무너뜨렸다.

문앙이 가는 곳마다 적군은 모두 흩어져 달아나

결국 퇴각했다.’

-자치통감

문앙은 공격해오는 적군을

10여명의 기병으로 물리치고 퇴각 한 것임.

이에 열난 위나라 기병들이 다시 공격하자..

문앙은 전설을 쓰게됨

‘필마단기로 추격군의 수 천명의 기병 속으로 뛰어들어

단번에 100명을 죽이고 빠져나왔다.

이같이 6~7 차례하자

추격하던 기병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자치통감

단기, 즉 혼자서.

예전 원소군, 황건적, 초창기 오군 처럼

확실하게 훈련이나 지휘체계가 안잡힌 군대가 아니라

체계가 잡혀있는 수천의 기병속에서

혼자 뛰어들어가서 수백명을 죽였다고

실제 역사서에 기록이 되어있는거임.

이게 사람인가 괴물인가.

물론 기마병이 엉켜서 낙마한 인원도 적지 않을텐데

이러한 것을 한 사람이 해냈다.

영국의 사자심왕같은 무쌍이 실제역사에

적혀 있는 것이라는것.

심지어 이때의 나이가 18세임을 보면,

삼국지의 그 누구보다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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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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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폭주]關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3.24 정사기준이라니 주관적으로 쓴 글이지만 나름 근거가 있네요.
  • 작성자한림 | 작성시간 20.04.08 삼국지 여포전 기준으로 싸움 능력은 위에 적힌 기준이 맞지만 실제로 장군이라 함은 전쟁말고도 군을 운영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을 짜야 하는데 허저나 전위 같은 장수는 전투력은 만렙이었으나 특별히 계책을 쓰고 대군을 움직인 기록이 많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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