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알프레드 하르트만(Erich Alfred Hartmann, 1922.04.19~1993.09.20)은 애칭 '부비(Bubi)' 외에도 전우들에게는 '독일의 금발기사(The Blond Knight Of Germany)'로, 적에게는 '검은 악마(The Black Devil)'라는 별명으로 불뤼었다. 그는 공중전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둔 조종사였으며,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Luftwaffe) 소속으로 총 352 대의 적기를 격추하였는데, 이중 345 대는 소련 공군 소속이었고, 260 대가 전투기였다.
하르트만은 1922년 뷔템베르크(Wurttemberg)의 바이자흐(Weissach)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병원을 개업한 덕에 그는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냈으며 1928년에 독일로 돌아와 수년간 독일 공군의 글라이더 교육 학습에 참가하였다. 1939년 비행면허를 취득한 하르트만은 1940년 말부터 독일 공군전술학교(Luftkriegsschule)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1년 학교를 졸업한 하르트만은 1942년 동부전선의 52 비행대(Jagdgeschwader 52)에 배속되어 메서슈미트 Bf-109G(Messerschmitt Bf-109G) 전투기로 군무를 시작하였다. 52 비행대의 지휘관 후베르투스 폰 보닌(Hubertus von Bonin) 소령은 하르트만을 알프레드 그리슬라프스키(Alfred Grislawski)원사에게 배정하였고, 며칠간 그와 시험비행을 해본 그리슬라프스키는 하르트만이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조종사이긴 하지만 재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였다.
하르트만이 그의 스승이자 친구 발터 크루핀스키(Walter Krupinski)를 만난 것도 이 시기였다. 에이스였던 크루핀스키의 윙맨(호위기 조종사)으로 출격한 하르트만은 1942년 11월 5일 소련 Il-2기를 격추시킴으로써 그의 격추기록을 시작하였다. 이 해 말까지 그는 단 한번의 격추기록을 더 추가한 정도였지만 주위에서는 이이 그를 꾸준히 성장하는 조종사로 보기 시작하였다.
1943년 쿠르스크 전투(Battle of Kursk)에 참가한 하르트만은 7월 7일 대규모 공중전을 통하여 하루 7 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으며, 8월 이전까지 50 대의 기록을 세운데다가 8월 들어 48 대의 기록을 추가하였다. 총 90 대의 기록을 세운 하르트만은 1943년 8월 19일 Il-2기와 교전중 기체가 손상되어 소련 영내에 추락하였고,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인근 기지로 호송될뻔 하였지만 통증을 위장하고 트럭에서 뛰어내려 어둠속에서 두 명의 경비병을 따돌리고 독일 영내로 귀환하였다. 이러한 전과로 1943년 9월 비행중대장이 된 하르트만은 10월까지 33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으며 10월 29일 총 148 대 격추로 기사철십자장(Ritterkreuz) 수훈자가 되었다. 1943년 말까지 하르트만이 세운 기록은 159 대였다.
1944년 들어 그의 격추행진은 더욱 빨라졌다. 그의 전과는 공군본부에서도 관심사가 되었으며, 그의 격추기록은 두세번의 심사를 거쳤다. 공군은 그의 편대에 관찰자를 포함시켜 하르트만의 전투수행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3월 그가 202 대의 소련 전투기를 격추시켰을 즈음 소련 내에서도 그의 무선기 콜사인 '카라야 아인(Karaya Ein)'이 유명해져 있었고, 소련은 그의 머리에 현상금을 내걸었다. 소련군은 그를 '검은 악마'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전투기 기수 부분 각 면에 그려진 검은 튤립 그림 때문이었다. 기수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상대가 하르트만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소련 조종사들은 교전을 주저하기도 하였고, 때문에 독일군 신참 조종사들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전투기에 같은 그림을 그려넣기도 하였다.
1944년 8월 24일 하루동안 11기의 소련기를 격추시킨 하르트만은 이 날 300 대의 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에 놀란 공군사령관 헤르만 괴링(Hermann Goring)은 영웅적인 전투기 조종사를 잃을 경우 군의 사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그를 비행 임무에서 제외시켰다. 하르트만은 로비를 통하여 겨우 다시 조종간을 잡을 수 있었으며, 300 대의 기록으로 2차 대전중 27명만이 영예를 안은 다이아몬드 기사십자장 수훈자가 되었다.
1944년 1월부터 2월 사이 하르트만은 50 대의 소련기를 격추하였고, 1944년 전체에 걸쳐 172 대의 적기를 격추시키며 일년중 격추 대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 해 6월 최초로 미군 전투기와 조우한 하르트만은 루마니아에서 4 대의 P-51 머스탱(Mustang) 전투기를 격추시켰지만 다음달 머스탱 전투기와의 교전때는 연료가 떨어져 전투기를 버리고 비상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르트만은 1944년 8월 23일 52 비행대의 게르하르트 바크혼(Gerhard Barkhorn)을 제치고 독일 공군 최고 격추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1945년 초 하르트만은 새 제트 전투기 Me-262의 비행대로 오지 않겠느냐는 아돌프 갈란트(Adolf Galland)의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52 비행대에 잔류하기를 희망하였다. 전쟁이 끝날 즈음 하르트만과 52 비행대는 미국 제 90 보병사단에 항복하였다.
하르트만은 총 1400 회 출격하여 825 회 공중전을 벌였고, 동체착륙 등으로 14 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그는 단 한번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며, 적기의 공격으로 인한 손상 때문에 비상탈출한 적도 없다. 그는 200 여대의 다양한 소련 단발 전투기들을 격추시켰으며, 80 대 이상의 미제 P-39, 15 대의 Il-2 지상공격기, 10 대의 쌍발엔진 폭격기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격추기록이 아니라 단 한번도 그의 윙맨을 잃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르트만은 추격 매복 전술의 달인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격추시킨 조종사의 80%는 누구에 의해 격추되는지도 모르고 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Bf-109기의 강력한 엔진 성능에 의존하여 빠르게 접근, 적의 편대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혼란을 일으킨 뒤에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는 적기가 20 m 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최대한 사격을 억제하였다가 빠르고도 짧은 사격으로 적기를 파괴하였다. 그의 교전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가능한한 최후 순간까지 위치를 숨긴다
2) Bf-109 기관포의 느린 초구속도를 상쇄시킨다
3) 조준을 정확히 하여 탄약 소모를 최소화한다
4) 적의 회피기동을 차단한다
만일 물고 물리는 공중전이 벌어질 것 같다는 판단이 설 경우 하르트만은 스스로를 달래며 전장을 떠났다. 그는 '발견-결정-공격-탈출'의 원칙을 충실히 지켰으며, 적을 발견하면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공격을 실시한 이후에 현장을 이탈하여 다시 첫단계로 돌아갔다.
하르트만이 물고 물리는 공중전은 시간 낭비라고 언급한 것은 유명하다.
미군은 포로로 잡힌 하르트만과 52 비행대 조종사들을 동부 전선의 소련에 인계하였는데, 얄타 협정(Yalta Agreements)에 따르면 포로는 그가 속했던 전선의 국가에게 인계하기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수감된 하르트만은 민간인에게 발포하였다는 혐의로 전범 재판에 붙여졌다. 완전한 어둠 속에 갇히는 등의 힘겨운 처분에도 불구하고 하르트만은 그의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였으며 결국 재판은 기각되었다. 이후 소련은 하르트만을 공산주의로 귀의시키기 위해 애썼고, 동독 공군에 배속시키려고도 하였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총 10년 반의 수감생활 동안 얼굴 한번 못본 그의 3살 아들은 사망하였고, 그는 1955년 서독으로 돌아와 그가 전쟁기간 매일 편지를 쓴 아내와 다시 만났다.
서독으로 돌아온 하르트만은 서독 최초로 부대 전체가 카나디어 세이버(Canadair Sabre) 및 록히드 F-104 스타파이터(Lockheed F-104 Starfighter) 제트 전투기로 구성된 71 비행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그는 미국에 몇 차례 여행하며 미국제 공군 장비들에 대한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하르트만은 F-104가 결함을 가진 기체라고 판단하였고 서독 공군에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록히드의 뇌물 공세로 서독 공군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덕분에 서독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 F-104기의 282회 추락을 경험해야 했으며 115명의 조종사를 잃었다. 하르트만은 과격한 비평으로 상급자들의 눈 밖에 났으며, 1970년 퇴역하였다.
에리히 하르트만은 1993년 9월 20일 바일 임 쇤부흐(Weil im Schonbuch)에서 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러시아는 하르트만의 사후 1997년 그의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이는 그의 유죄 판결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여기서 보너스
1,2차 세계대전 격추왕 Top 10위
이름 계급 격추한 전투기 수
1. 에리히 하르트만 소령 352기
2.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소령 301기
3. 귄터 랄 소령 275기
4. 오토 키텔 중위 267기
5. 발터 노보트니 소령 258기
6. 빌헬름 발츠 소령 237기
7. 에리히 루도퍼 소령 222기
8. 하인츠 베어 중령 220기
9. 헤르만 그라프 대령 212기
10. 하인리히 엘러 소령 209기
거의다 독일공군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