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녕(甘寧, 174년 ~ 222년)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이다. 자는 흥패(興覇)이다. 오나라 수군의 핵심으로 적벽대전에서 크게 활약해 강좌호신(江左虎臣)이라 불리워졌으며, 후일 촉한과의 싸움에서 병중임에도 종군하다 만왕(蠻王) 사마가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파군(巴郡) 임강(臨江) 출신. 《삼국지연의》에서는 해적 출신으로 나온다. 젊은 시절부터 의협심이 강해서 동네 무뢰한들을 이끌고 지역 자경단과 같은 행동을 해 범죄 사건 등이 일어나면 범인 체포와 처벌을 행했다. 또한 조정의 관리라도 자신들을 존중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자와는 함께 즐기고, 그렇지 않는 자에게는 부하들을 시켜 혼내주는 등 방약무인으로 날뛰었다. 물소 꼬리로 만든 깃발을 등에 지고, 손에는 활 등을 들고, 허리에는 방울을 달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방울 소리만 듣고도 그들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격이 포악하여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우연히 옛 현자가 지은 서적을 읽고 감화를 받아 마음을 고쳐먹고 큰 뜻을 품은 뒤 부하들을 데리고 유표를 따른다. 그러나 문치주의를 중시했던 유표는 감녕을 잘 대우해주지 못했고 감녕 또한 이상주의만으로는 난세를 타개할 수 없다고 생각해 황조 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황조도 감녕을 예우해주지 않았다. 손권이 공격해왔을 때 감녕이 손권의 부하 능조를 사살하는 공을 세웠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황조의 부하 소비는 자주 황조에게 감녕을 중용하도록 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는 감녕을 오나라로 보내주었다.
손권 밑으로 들어간 감녕은 주유와 여몽의 추천으로 특별 대우를 받게 된다. 감녕이 손견의 원수인 황조 토벌을 진언하자, 손권은 그에게 전군의 지휘를 맡겨 황조를 토벌하여 원수를 갚는 동시에 강하 지역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런데 소비가 체포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감녕이 손권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마루에 머리를 쳐서 피를 흘리며 소비의 구명을 호소해 옛 은덕에 보답했다.
그 후로도 감녕은 담력과 기지를 이용해 뛰어난 군사 능력을 발휘하였다. 적벽 전투에서는 조조군에게 첩자를 보내 가짜 정보를 들려준다. 적벽 전투가 끝나고 남군의 조인과 싸울 때 감녕은 성을 탈취하지만 곧바로 몇 배나 되는 적군에게 포위당하게 되었다. 병사들이 모두들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감녕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성을 끝까지 지켜냈다. 또한 관우가 수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오나라에 침공하자 이를 저지한다.
유수에서 조조의 40만 대군과 대치할 때에는 부하 가운데 용감한 병사 100명 정도를 선발해 조조군에 기습을 가해 혼란을 일으킨 후 크게 승리하는데, 전투 전에 병사들을 격려하고 일일이 술잔을 따라 돌렸다. 이처럼 그는 유능한 인물을 존중하고 병사들을 아꼈기 때문에 모두들 그를 위해 기꺼이 싸웠다고 한다. 손권은 “조조에게는 장료가 있지만, 나에게는 감녕이 있다” 고 그를 칭찬하였다.
감녕은 동료인 능통과 자주 불화를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능통의 아버지인 능조를 감녕이 전사시켰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공로 다툼을 벌였고 손권이 이를 중개해 화해시키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릉 전투 때 감녕은 병을 앓고 있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출진하였는데, 머리에 촉한의 사마가가 쏜 화살에 맞고 부지구의 큰 나무 밑에서 죽었다. 이때 나무에 있던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그의 시신을 에워싸고 지켜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의에 의한 각색일 뿐이고 정사에는 사마가가 감녕을 죽였다는 내용은 없다.
그 뒤 감녕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지고, 바닷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고깃덩어리를 던지면 까마귀가 공중에서 받아먹는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한림 작성시간 10.02.06 감녕에 대한 정보는 여러 번 보지만 그 때마다 한가지 공통점은 그는 진정한 사내였다는 것이네요.............의리도 있고 은혜도 알고 부하도 아끼고 용맹하고 지혜도 있고 성싱하기까지 하고.......심지가 굳은 인물 같아요.............
-
작성자호테 작성시간 14.06.04 나무에 있던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그의 시신을 에워싸고 지켜주었다고 한다...라는 문장이 머리에 콱 박히네요.
잘난 사내들이 너무 많은 삼국지라서일까요.개인적으로는 그냥 스쳐간 인물이었는데
.... -
작성자너와나의맘 작성시간 16.06.14 우앙 감녕이 해적출신이였다니~~ 게다가 손권의 부하였기도 했고, 또한 관우가 처들어왔는데도 저지하였다는것이 인상깊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