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제20회를 보면, 국구(國舅) 동승(董承)이 조조의 권력전횡에 불만을 품은 헌제(獻帝)로부터 몰래 의대조(衣帶詔)를 받아 조조를 주살하려는 모의를 한다. 그러다가 비밀이 누설되는 바람에 모의에 가담한 다섯 사람과 함께 전 가족이 참수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제24회에서는 조조가 궁궐로 들어가 동귀비를 죽이면서 「귀비(貴妃)는 동승의 누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 나오는 「동귀비(董貴妃)」란 「동귀인(董貴人)」이라고 해야 옳다. 《후한서(後漢書)·후기(后紀)》에 의하면, 동한 시기에는 『육궁의 칭호는 오직 황후·귀인들뿐이다(六宮稱號, 唯皇后·貴人)』라 적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궁중 지위에 결코 「귀비」라는 자리는 있지도 않았고, 오로지 「귀인(貴人)」 밖에 없었다는 것과 그 지위도 황후 다음가는 자리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남조(南朝)의 송(宋)대에 와서야 「귀비」라는 칭호가 생기게 되었고, 대대로 내려올수록 더욱 많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착오 외에도 《삼국지연의》에서는 동귀인과 동승의 촌수 관계를 잘못 기술하고 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동귀인은 동승의 누이동생이 아니라 그의 딸이다. 이 점은 《후한서·복황후기(伏皇后紀)》에 다음과 같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놓고 있다.
『동승의 딸은 귀인이 되었는데, 조조가 동승을 죽이고 귀인을 찾아서 그녀를 죽였다(董承女爲貴人, 操誅承而求貴人, 殺之).』
그러나 이 착오는 결코 나관중 본인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 가정본(嘉靖本)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권5(卷五)에는 다음과 같은 적혀 있다.
『귀인은 동승의 친딸이다(貴人乃董承親女).』
이러한 내용으로 보면, 나관중은 동귀인과 동승의 관계에 대하여 역사적인 사실대로 적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착오는 모종강이나 판각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이러한 착오를 저지른 까닭은 예술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종강이나 판각하는 사람들이 《삼국지·촉서·선주전(先主傳)》에 나오는 『獻帝舅車騎將軍董承』이라는 구절을 잘못 해석한데서 나온 것이다. 사실 배송지(裵松之)의 주(注)에서는 이 말의 해석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동승은 한 영제의 어머니인 동태후의 조카이며, 헌제에게는 장인이다. 옛날에는 장인이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그를 「구(舅)」라고 하였다(董承, 漢靈帝母董太后之侄, 于獻帝爲丈人. 蓋古無丈人之名, 故謂之舅也).』
나관중은 이 주석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착오를 범하지 않았다. 모종강이나 판각한 사람들은 아마 이 「구(舅)」자가 가리키는 뜻이 장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후세의 관념에 따라 그것을 「외삼촌」이라고 해석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인물 사이의 촌수를 왜곡시키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읽다보면 「동승의 누이동생」과 같은, 이러한 인물간의 관계를 잘못 기술한 곳이 더러 보인다. 제7회에는 손견이 유표를 공격할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유표의 대장인 채모(蔡瑁)를 「유표 후처의 오빠」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후한서(後漢書)·유표전(劉表傳)》에 의하면, 채모는 채부인의 동생이 된다. 또 14회에는 조조가 사람을 시켜 낭야(琅 )로 가서 자신이 부친인 조숭(曹嵩)을 영접토록 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조숭은 곧 아우 조덕과 함께……지름길로 연주를 향하여왔다(曹嵩便與弟曹德……徑望 州而來)』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삼국지·위서·무제기》의 주(注)에 인용된 《세어(世語)》에 의하면, 조덕은 조조의 동생이며, 조숭의 아들이 된다. 또 제106회에 보면, 위(魏) 명제(明帝)가 중병으로 드러누워, 『문제의 아들인 연왕 조우를 불러들여서 대장군으로 삼고 태자 조방을 보좌하여 섭정하게 하였다(召文帝子燕王曹宇爲大將軍, 佐太子曹芳攝政)』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삼국지·위서(魏書)·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에 의하면, 조우는 위 무제 조조의 아들이며,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동생이 된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작자가 예술적인 필요 때문에 고의적으로 인물 사이의 관계를 바꾸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무심결에 일으킨 실수이기 때문에 마땅히 분별하여 교정해야 할 것이다.
출처:정원기삼국지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