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전♤]이직, 까마귀 검다하고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1.09.30|조회수358 목록 댓글 0

        까마귀 검다하고

 

                              이직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을손 나뿐인가 하노라

 

[감상의 길잡이]

이 시조는 고려의 문신이었으나 조선 건국을 도왔던 이직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지은 작품이다. 대체로 까마귀는 불길한 징조를

가져오는 대상으로, 백로는 고귀함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여기서 까마귀는 긍정적 이미지로, 백로는 부정적 이미지로

사용된다. 이직은 자신을 까마귀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겉은 검어도

속은 희다고 자신을 옹호한다. 그리고 백로처럼 겉은 희고 속은 검은

즉 겉으로 올바른 처신을 하는 척하면서도 정작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풍자적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작가소개]

이직[ 李稷 ]

<요약>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헌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방원을 도왔다.

주자소를 설치, 동활자 계미자를 만들었다. 성산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세종 때 영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문집 《형재시집》이 있다.

출생-사망 : 1362 ~ 1431

본관 : 성주(星州)

자 : 우정(虞庭)

호 : 형재(亨齋)

시호 : 문경(文景)

주요작품 : 《형재시집(亨齋詩集)》

본관 성주(星州). 자 우정(虞庭). 호 형재(亨齋). 시호 문경(文景). 1377년(우왕 3) 16세로 문과에 급제,

경순부주부(慶順府注簿)에 보직되고 1386년 밀직사우부대언(密直司右副代言)을 거쳐 공양왕 때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지냈다.

 

1392년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헌,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지고 1393년(태조 2)

도승지·중추원학사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7년 대사헌,

1399년(정종 1) 중추원사 겸 서북면 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 올랐고 삼사좌사(三司左使)·의정부지사(議政府知事)를 지냈다.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에 방원(芳遠: 太宗)을 도와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이 되고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대제학을 거쳐 1403년 사평부판사(司平府判事)로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동활자(銅活字)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1405년 이조판서,

1407년 동북면도순문찰리사·영흥부윤(永興府尹)이 되었다. 1412년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으로

진봉되고 1414년 우의정에 올라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5년 황희(黃喜)와 충녕대군(忠寧大君: 世宗)의 세자책봉을 반대하여 성주에 안치되고,

1422년(세종 4) 풀려나와 1424년 영의정, 1426년 좌의정에 전직, 이듬해 사직하였다.

성주의 안봉서원(安峰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 《형재시집(亨齋詩集)》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직 [李稷]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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