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調♤]소순흠(蘇舜欽), 제화산사벽(題花山寺壁)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1.11.03|조회수51 목록 댓글 0

제화산사벽(題花山寺壁)

        화산사 벽에 쓰다

 

                          소순흠(蘇舜欽, 1008~1048)

 

 

꽃 때문에 이름 얻은 산속의 절

무성하던 꽃 사라지고 잡초만 우거졌다

가꾸고 손질하기 힘이 aksgd 드는 법

꽃은 시들기 쉬우니 풀은 쉽게 자란다

 

寺裏山因花得石(사리산인화득석)

繁英不見草縱橫(번영불견초종횡)

栽培剪伐須勤力(재배전벌수근력)

花易凋零草易生(화이조영초이생)

 

금은 쇠보다 무르다. 총칼이나 연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젓가락을 만들

때도 금보다 철이 더 유용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쇠보다 황금을 더 귀하게 여

긴다. 그 가치를 따지는 데에는 희귀성이 효용성보다 한 수 위인 것이다. 꽃을

피우려면 거름을 주고 곁갖를잘라주는 등 공을 들여 키워야 한다. 그러나 잡

초는 뻔뻔스러운 불청객처럼 아무 데서나 뿌리를 내린다. 그뿐만 아니다. 꽃은

때를 좇아 한때 피었다가 이내 시든다. 풀은 꽃보다 먼저 나와 늦가을 서리 때

까지 버틴다. 소순흠은 아마도 자신을 풀에 빗댄 것 같다. 그 역시 젊어서는 꽃

과 같은 화려한 때가 있었으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한번 성한 것은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진다는 의미)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소개]

소순흠[ 蘇舜欽 , Shunqin Su ]

출생 – 사망 : 1008(북송 대중상부 1)년 ~ 1048(북송 경역 8)년

자 : 자미(子美)

호 : 창랑옹(滄浪翁)

직업 : 문인

가족관계 : 아버지 : 소이간, 형 : 소순원

 

중국 북송의 문인. 태종조한림학사 소이간의 아들, 시주동상(쓰촨성)의 인사. 관은 집현교리에 이르렀으나 오직사건으로 제명되어 소주에 창랑정을 짓고 독서와 시작에 빠졌다. 호주 장사에서 사망. 시는 호방해서 유명하다. 서예는 형 소순원과 함께 이름이 있고 해서, 행서, 초서 모두 묘품이라 칭찬받고 특히 초서를 잘하였다. 서의 작품에 『여자옥장관할』, 저에 『소학사문집』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순흠 [蘇舜欽, Shunqin Su]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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