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調♤]김수온(金守溫), 제산수화(題山水畵)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1.11.06|조회수96 목록 댓글 0

   제산수화(題山水畵)

           산수화에 쓰다

 

                          김수온(金守溫, 1410~1481)

 

 

묘산묘수총여신(描山描水總如神)

만초천화각자춘(萬草千花各自春)

필경일장개환경(畢竟一場皆幻境)

수지군아역비진(誰知君我亦非眞)

 

작가가 산수화 한 폭을 가지고 와서 그림의 여백에 시 한 수를 써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즉석에서 쓴 시다. 그림 속에는 산과 물을 배경으로 기화요초(琪花瑤

草: 기이한 꽃과 풀)가 각자 자태를 뽐내며 봄이 무르익어 있다. 실제 경치가 되었

건 단지 그림이건 상관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서 그저 감탄하고 묘사하는 것만

으로는 맥이 빠진 시가 되고 만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말속에도 뼈가 있듯이

시에도 뼈가 있어샤 재맛이 난다. 이 시의 후반부가 바로 뼈에 해당한다. 이 시

인은 이 아름다운 봄 풍경 그림을 보면서 일장춘몽을 떠올린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네 삶이 모두 허깨비란다.

 

[작가소개]

김수온[金守溫, 1409(태종 9)~1481(성종 12)]은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문량(文良)이고, 호는 괴애(乖崖)·식우(拭疣) 등이고, 시호(諡號)는 문평(文平)이다. 본관은 영동(永東)으로, 아버지는 증영의정 훈(訓)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정자가 되었으나 곧 세종의 특명으로 집현전학사가 되어 『치평요람』(治平要覽)을 편찬하였다. 1446년 부사직이 되고, 이어 훈련주부·승문원교리·병조정랑을 거쳐 1451년(문종 1) 전농소윤, 이듬해 지영주군사(知榮州郡事)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457년(세조 3) 성균사예로서 문과중시에 2등으로 급제, 첨지중추부사가 되고, 이듬해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정조부사(正朝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에 한성부윤, 이듬해 상주목사, 1464년 지중추부사·공조판서를 역임하고 1466년 발영시에 이어 등준시에서 다 장원하여 판중추부사에 오르고 쌀 20석을 하사받았는데, 문무과 장원에게 쌀을 하사하는 것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어서 호조판서를 거쳐 1468년(예종 즉위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오르고,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74년 영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책을 한 장씩 뜯어서 들고 다니며 외우다가 다 외우면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한다. 신숙주의 『고문선』(古文選)을 빌려서는 한 장씩 뜯어 벽에 발랐다는 일화가 있다. 세종 때 수양대군·안평대군이 존경하던 고승 신미(信眉)의 동생으로 그 자신도 선학(禪學)에 탐닉하여 불교에 빠졌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불경에 달통하고 제자백가와 육경(六經)에 해박하여 뒤에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시문에 뛰어나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한림 진감(陳鑑)과 「희정부」(喜睛賦)로 화답한 내용은 명나라에까지 알려졌으며, 성삼문(成三問)·신숙주(申叔舟)·이석형(李石亨)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문명을 다투었다.

 

『치평요람』·『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의 편찬, 『석가보』(釋迦譜)의 증수(增修), 『명황계감』(明皇誡鑑)·『금강경』 등의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원각사비명」(圓覺寺碑銘)을 찬하고, 사서오경의 구결에 참여하였다. 저서로 『식우집(拭疣集)』이 남아있다. 성종이 특별히 교서관에 명해서 그 문집의 간행했을 때는 24권에 이르렀지만, 화재로 소실되어 권2와 권4 두 권만이 남아있다. 현행 판본에는 여기에 후손이 수집한 필사본 보유(補遺)가 덧붙여져 있다. 그의 행적은 김우준(金禹濬)의 「식우집제발」(拭疣集題跋)을 참고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수온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2004., 강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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