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출동곽(曉出東郭)
새벽에 동문을 나서며
고시언(高時彦, 1671~1734)
이른 새벽 산봉우리 아직 희미한데
숲에서 부는 바람 거세기만 하다
차가운 냇가에 이르자 말은 우짖고
하늘에 잔별은 눈처럼 흩날린다
曉嶂尙依微(효장상의미)
林風吹烈烈(임풍취열열)
馬嘶臨寒流(마시임한류)
殘星落如雪(잔성낙여설)
먼 길을 가나 보다. 겨울 해는 노루 꼬리처럼 짧아서 저물기 전에 도착하려면
새벽 일찍 길을 나서야 한다. 새벽이라지만 아직은 밤이나 마찬가지로 컴컴
하다. 빙 둘러 보이는 산봉우리는 그저 어렴풋이 그 윤곽만 드러낸다. 성문을 나
와 한 마장쁨 달려오니 숲에 다다랐다. 말을 타고 달리며 맞는 겨울바람이 얼얼
하다. 어느덧 숲을 지나 개울가에 이르렀다. 말도 숨이 찬지 히이잉 하며 쉬어
가잔다. 반은 얼고 나머지 반은 살짝 살얼음이 낀 개울에 멈춰 말에게 물을 먹
이며 하늘을 쳐자본다. 동쪽 하늘에는 어둑한 여명인데 서쪽은 아직 캄캄한 기
가 그대로다. 새벽하늘에 잔별이 흩날리며 눈송이와 함께 나그네 어깨 위로 떨
어진다.
[작가소개]
고시언[ 高時彦 ]
자 국미(國美), 호 : 성재(省齋)
시대 : 조선
출생 – 사망 : 1671년(현종 12) ~ 1734년(영조 10)
성격 : 시인
출신지 : 미상
성별 : 남
본관 : 개성(開城)
저서(작품) : 소대풍요, 성재집
<정의>
1671(현종 12)∼1734(영조 10). 조선 후기의 시인.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국미(國美), 호는 성재(省齋).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숙종 13) 역과(譯科)에 급제하여 역관이 되었다. 여러 차례 청나라에 다녀와서 외교관으로서의 실력을 발휘하여, 그 공으로 2품의 관계에 올랐다. 1734년 다시 청나라에 가다가 도중에 병사하였다.
경전과 백가(百家)에 능하여 사역원의 후배들이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물었다. 특히, 한시에 뛰어나 당대의 평민시인인 임원준(林元俊)·홍세태(洪世泰)·정내교(鄭來僑) 등과 함께 당풍(唐風)을 본받은 4대시인으로 일컬어졌다. 일반적으로 사리(辭理)가 정연한 시를 짓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대제학 남유용(南有容)도 그의 문장을 칭찬하였다.
만년에는 세조 때부터 영조 때까지의 서민시(庶民詩)를 수집하여 『소대풍요(昭代風謠)』를 편찬하여 조선시대의 중요한 시문학 자료가 되게 하였다. 저서로는 『성재집(省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성재집(省齋集)』, 『영조실록(英祖實錄)』
[네이버 지식백과] 고시언 [高時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