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옥(雪屋)
눈오는 날 집에서
전기(田琦, 1825~1854)
문밖의 신발 자국 보니 오간 사람 드물고
뜰 한쪽에 쌓인 눈이 창문을 살짝 비춘다
화롯불 식었으니 황혼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상머리에 앉아 옛 책을 헤아린다.
門外屐痕過訪疏(문외극흔과방소)
半庭積雪映窓虛(반정적설영창허)
土爐火冷黃昏近(토로화냉황혼근)
猶自床頭勘古書(유자상두감고서)
강원도처럼 많이 오는 눈은 아니다. 문밖의 길 위에는 찾아오거나 지나간 사람
이 드물어 눈 위로 나막신 자국이 몇 개 찍혀 있지 않다. 집 안을 돌아보면, 사람
다니는 쪽을 쓸어 마당 한쪽으로 쌓아 놓은 눈이 햇빛을 반사해 창문을 비춘다.
구들장은 미지근하고 화롯불도 이미 식은 걸 보니 오늘 하루도 저물어가는 것
같다. 찾아오는 이도 없고, 딱히 가야 할 곳도 없으니 이 선비는 온종일 옛 책을
들여다보며 성현의 뜻을 헤아렸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녁 짓느라 아랫목이 다
시 따뜻해질 것이고, 과거 공부도 아닌데 굳이 등잔 심지 올리며 책 읽을 이유
가 있나. 곧 잠자리에 들어야겠지. 19세기 조선 선비의 일과다.
[작가소개]
전기(田琦조) : 조선 후기의 화가(1825~1854). 초명은 재룡(在龍). 자는 기옥(奇玉)ㆍ위공(瑋公)ㆍ이견(而見). 호는 고람(古籃)ㆍ두당(杜堂). 시(詩)ㆍ서(書)ㆍ화(畫)에 능하였으며 남종파(南宗派)의 화풍을 계승하였고 산수화에 뛰어났다. 작품에 <연도(蓮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