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調♤]이옥봉(李玉峰), 자술(自述)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2.01.15|조회수142 목록 댓글 0

              자술(自述)

                  넋두리

 

                                   이옥봉(이옥봉(李玉峰, ? ~ ? )

 

 

요즘 어찌 지내시나 안부를 여쭙니다.

창가에 달 밝으니 소첩의 한 깊습니다

꿈속에서 오가던 제 발길에 자취 있다면

님의 문 앞 돌밭 길은 모래가 되었으리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砂(문전석로반성사)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랑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인데 꿈속에서

마저도 만날 수 없으니 애타는 그리움으로 이 연인은 한이 깊다. 얼마나 자주

찾아가 서성거렸으면 돌이 닳아서 모래가 되었을까? 옥봉(玉峯)은 얼녀(孽女)다.

전주 이씨의 왕족의 피를 받았으나 여종의 몸에서 태어났으니 아무리 예쁘고 똑

똑해도 양반의 정실부인이 될 수 없는 신분이었다. 15세에 첩이 되어 나이가 들

자 남편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살다가 임진왜란 때 죽었다고 추정된다. 조선시대

신분 차별과 여성에게만 강요되었던 정조(貞操)는 이 여인을 이중으로 옥죄는 굴

레였으나, 정작 본인은 이 모순에 저항은커녕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으니 더

욱 갑갑하다.

 

[작가소개]

이옥봉[ 李玉峰 ]

<요약>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중국에도 이름이 알려졌으며 맑고 씩씩함이 느껴지는 시를 남겼다. 중국과 조선에서 출간된 시집에 허난설헌의 시와 함께 실려있다.

출생-사망 : ? ~ ?

호 : 옥봉

활동분야 : 시인

주요작품 : 《영월도중》 《만흥증랑》 《추사》 《자적》 등

조선중기 16세기 후반인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소실의 딸)로 이후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어려서 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하였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곧은 사람인 조원(趙瑗)의 소실(小室)로 들어가기를 결심하였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가 하면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녀가 써준 시 한편이 관가의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필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조원의 화를 사게되어 결국 친정으로 내쳐지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전란 중에 사망하였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趙正萬)이 남긴《이옥봉행적》에 그녀에 대한 행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등에 작품이 전하고 있다.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1권 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작품으로는 대표작《영월가는 길:영월도중(寧越途中)》, 《만흥증랑(謾興贈郞)》, 《추사(秋思)》, 《자적(自適)》, 《증운강(贈雲江)》, 《규정(閨情)》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옥봉 [李玉峰]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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