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추사(長信秋詞)
장신궁 가을노래
왕창령(王昌齡, 698~755?)
우물가의 오동 잎이 누렇게 물든 가을
님은 오지 않고 서리만 내리는 밤
귀한 장롱과 옥 베개가 무슨 소용이랴
궁궐의 물시계 소리만 들리는 긴 밤
金井梧桐秋葉黃(금정오동추엽황)
珠簾不捲夜來霜(주렴불권야래상)
熏籠玉枕無顔色(훈롱옥침무안색)
臥聽南宮淸漏長(와청남궁청루장)
반첩여(班婕妤)는 한나라 성제의 후궁이었다. 역사책 《한서(漢書)》를 쓴
반고(班固)의 고모할머니다. 첩여란 비(妃), 빈(嬪) 다음 서열인 왕녀를 일
컫는 말이다. 한성제의 총애를 조비연에게 빼앗기자 장신궁으로 물러나
황후를 모시고 살았다. 그녀는 미모와 함께 학식과 지혜를 갖추었으며 당
대에 시인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반첩여는 궁중의 권력 다툼 속에서 최후
의 승자가 되어 반씨 집안을 명문가로 일으켰으나 이 시를 포함해 반첩여
를 소재로 한 시 대부분은 버림받은 여인의 한을 주제로 삼았다.
[작가소개]
왕창령[ 王昌齡 ]
<요약> 칠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장신추시(長信秋詩)》,《규원(閨怨)》 변경의 풍물과 군인의 향수를 노래한《출새(出塞)》,《종군기(從軍記)》가 유명하다.
출생-사망 : 698 ~ 755?
자 : 소백(少伯)
국적 : 중국 당나라
활동분야 : 문학
주요저서 : 《장신추시(長信秋詩)》,《출새(出塞)》
자 소백(少伯). 강령(江寧:江蘇省 南京) 출신. 727년 진사에 급제하여 비서성 교서랑(秘書省校書郞)이 되었고, 734년 박학굉사(博學宏詞)의 시험에 합격하여 범수(氾水:河南省 成皐縣)의 위(尉)가 되었다. 그러나 소행이 좋지 못하다 하여 강령의 승(丞), 다시 용표(龍標:湖南省 黔陽)의 위(尉)로 좌천되었다. 왕강령 ·왕용표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그 임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자사(刺史)인 여구효(閭丘曉)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시는 구성이 긴밀하고 착상이 청신하며, 특히 칠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다.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장신추시(長信秋詩)》 《규원(閨怨)》, 변경의 풍물과 군인의 향수를 노래한 《출새(出塞)》 《종군기(從軍記)》가 유명하다. 시집 《왕창령 전집》(5권)과 그의 저술로 전하여지는 시론서 《시격(詩格)》 《시중밀지(詩中密旨)》 각 1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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