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調♤]두목(杜牧), 제제안성루(題齊安城樓)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2.01.22|조회수113 목록 댓글 0

       제제안성루(題齊安城樓)

                 제안성루

 

                                 두목(杜牧, 803~852)

 

 

강가 성루의 뿔피리 소리 잦아들고

찬물 가에 지는 햇빛 잔물결에 부서지네

난간에 기대어 고개 돌린들 무슨 소용있나

고향은 여기서 삼천리 밖인데

 

 

鳴軋江樓角一聲(명알강루각일성)

微陽瀲瀲落寒汀(미양렴렴락한정)

不用憑爛苦回首(불용빙란고회수)

故鄕七十五長亭(고향칠십오장정)

 

 

저우안(齊安)은 후베이성 황저우(湖北省 黃州)의 옛 이름이다. 두목이

황저우자사(黃州刺史)로 있을 때 쓴 시다. 시인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강가에 있는 성루에 올랐다. 멀리서 마치 흐느끼는 듯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가 쓸쓸한 감상을 부추긴다. 겨울의 짧은 해는 벌써 강변으로 나지

막하게 기울었다. 잔물결에 부서지는 희미한 햇볕은 이 시인으로 하여금

객수(客愁)를 불러일으키며 심란하게 한다. 누대(樓臺)의 난간에 기대어

고향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들 무슨 소용이 있나, 여기 황저우에서 고

향인 장안까지는 중간에 역참이 75개나 있는 삼천 리 먼 길인데... 그

러나 중국의 거리 감각으로 보면 아주 먼 거리는 아니어서 더욱 그리운

고향이다.

 

[작가소개]

두목(杜牧, 803년~약852년)은 당대의 걸출한 시인이자 산문가로 재상 두우(杜佑)의 손자이자 두종욱(杜从郁)의 아들이다. 자는 목지(牧之)인데, 호는 번천거사(樊川居士)이다. 경조만년(今陕西西安)사람이다. 26세 때 진사에 급제하여, 굉문관교서랑(弘文馆校书郎)이 되고,황주(黄州)ㆍ지주(池州)ㆍ목주(睦州) 등의 자사(刺史)를 역임한 후, 벼슬이 중서사인(中书舍人)까지 올랐다. 만년에 장안남(长安南) 번천(樊川) 별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두번천(杜樊川)' 이라 불리며 '번천문집(樊川文集)' 을 저술하였다. 두목의 시는 칠언 절구로 유명한데, 내용은 역사를 읊은 감화를 위주로 한 것으로, 그의 시는 영발과 명랑하고 경세적인 것이 많아 만당의 성취가 매우 높다. 주요 작품에는 《아방궁의 부(阿房宫赋)》,《강남춘(江南春)》등이 있다.이상은(李商隐)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로 불리며, 또 작품이 두보(杜甫)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小杜)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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