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야음(舟中夜吟)
밤배에서
박인량(朴寅亮, ? ~1096)
고국 삼한 땅은 아득히 멀어
갈바람에 나그메 시름도 많네
하룻밤의 꿈을 실은 외로운 배
동정호 파도 속에 달은 지는데
故國三韓遠(고국삼한원)
秋風客意多(추풍객의다)
孤舟一夜夢(고주일야몽)
月落東庭波)월락동정파)
어느덧 달이 지고 있다. 새벽이다. 바다만큼 넓은 동정호(둥팅호), 그 위에 떠서
파도에 흔들리는 배 한 척, 그 배 속에서 깊은 잠을 못 이루는 나그네 한 명, 그
의 마음속에서 떴다 지기를 반복하는 고향 꿈. 가을 나그네의 객수가 달빛이 파
도에 부서지듯 잘게 나뉘어 천 리를 흐른다. 박인량은 고려시대 유명한 문인으
로 1080년 송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다. 그때 송나라 문인들과 교유하며 글
재주로 명성을 떨쳤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지 150년이 지난 시절임에도
이 시인은 고국을 고려라 하지 않고 삼한이라 부르고 있다. 박인량은 그의 선조
가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추대되어 지금의 안성 지역을 식읍
으로 받은 호족 출신이다. 그 당시에도 고려 호족의 힘이 막강했음을 알 수 있
다.
[작가소개]
박인량[ 朴寅亮 ]
자 : 대천(代天), 시호 문열(文烈)
시대 : 고려
출생 – 사망 : 미상 ~ 1096년(숙종 1)
성격 : 문신
성별 : 남
본관 : 평산(平山)
<정의>
?∼1096(숙종 1). 고려 중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대천(代天). 고려 개국공신인 박수경(朴守卿)의 현손(玄孫)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종(文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文翰)의 여러 벼슬을 거쳤다.
일찍이 거란이 압록강 동쪽지역에 야심을 가지고 강을 건너와서 동안(東岸)에다 보주(保州: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를 설치하여 고려에서 여러 차례 반환을 요청해도 듣지 않다가, 1075년(문종 29) 박인량이 지은 진정표(陳情表)가 요주(遼主)를 감동시켜 철거하게 되었다.
우부승선(右副承宣)을 거쳐 1080년에는 예부시랑으로서 호부상서유홍(柳洪)과 함께 송나라에서 약재를 보내준 데 대한 사은사로 갔는데, 저장(浙江)에 이르러 태풍을 만나 대부분의 방물(方物)을 잃은 죄로 귀국한 뒤 죄를 받을 뻔하기도 하였다.
박인량이 저술한 천독(天牘)·표(表)·장(狀)·시 등은 동행하였던 김근(金覲)의 시문과 함께 『소화집(小華集)』이라는 이름으로 송에서 간행되어 중국에까지 그 문명을 날리었다. 1089년(선종 6)에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오르고, 이어 우복야(右僕射)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저술로는 『고금록(古今錄)』 10권과 『수이전(殊異傳)』이 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세 아들 박경인(朴景仁)·박경백(朴景伯)·박경산(朴景山)이 모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름으로써 고려 전기 명문가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상훈과 추모> :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보한집(補閑集)』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한국금석문추보(韓國金石文追補)』
「고려시대 ‘토성’ 연구 상」(이수건, 『아세아학보』 12, 1976)
[네이버 지식백과] 박인량 [朴寅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