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調♤]<현대시조> 최남선 편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2.07.30|조회수158 목록 댓글 2

<현대시조>

                                        최남선 편

 

 

                                                                                    석야 신웅순

 

 

 

‘시조’가 문학상의 장르 명칭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조선문단 (1926, 5월호) 육당의 「조선 국민 문학으로서의 시조」에서 그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문학으로서의 시조, 시로의 시조가 얼만한 가치를 가진 것인가. 시조라는 그룻이 담을 수 잇 는 전용량과 나타낼 수 잇는 전국면이 얼마나 되는가.…중략…

소설로, 희곡으로 도모지가 아직 발생기(내지발육기)에 잇다할 것이지,이것이오 하고 내노흘 완 성품은 거의 없다할 밧게 업슴이 섭섭한 사실이다. 그중에 오직 한 시에 잇서서는 형식으로, 내용 으로 용법으로, 용도로 상당한 발달과 성립을 가진 일물이 잇스니 이것이 시조이다.시조가 조선에 잇는 유일한 성립문학임을 생각할 에 시조에 대한 우리의 친애는 일단의 심후(深厚)를 더 함이 잇지아니치못한다

-최남선,「조선 국민 문학으로서의 시조」,『조선문단 16호』(1926, 5),233,4

 

이 논문 하나만으로도 그가 근·현대 시조의 선구자라 칭할만하지 않을까.

육당에게는 현대시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신체시「해에게서의 소년에게」이다. 물론 절반의 성공인 실험시이기는 하나 결국 그가 시조에 다다르기까지 필연적으로 건너야할 또 하나의 외나무다리였다.

 

1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태산 갓흔 놉흔 뫼, 집채 갓흔 바윗 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2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내게는 아모 것 두려움 업서

육상(陸上)에서 아모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압헤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1,2」

 

1908년 11월, 육당 최남선이 창간한『소년』의 권두시이다. 최남선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신체시「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 이 신체시는 과거 율어체의 창가 형식에서 구어체로 이행한 준정형적 형태의 자유시이다. 한국근대시사에서 반드시 논의해야하는 중요한 시사적 위치, 맨 앞자리에 놓여있는 시이다.

이 신체시는 1연을 제외하고는 의인화된 바다가 화자로 등장,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소년들에게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한다는 계몽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당은 이『소년』등을 통해 창가, 신체시, 산문시, 7‧5조 등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은 우리 고유의 율격인 시조 형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물이 1926년에 발간한 근대 최초의 개인 시조 창작집『백팔번뇌』이다.

이『백팔번뇌』는 고시조의 율격을 따랐으나 고시조와는 구별되는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시조였다. 고시조의 종식과 함께, 시조 부흥 운동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시조집이다. 이『백팔번뇌』가 과거 고시조와는 현저히 다른, 현대 시조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작자의 서문과 ‘제어(題語)’라는 표제하에 박한영ㆍ홍명희ㆍ이광수ㆍ정인보의 발문이 붙어 있으며 총 108수의 시조가 3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제 1 부 ‘동청나무 그늘’에는 ‘님 때문에 끊긴 애를 읊은 36수’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님’에 대한 간곡하고 애절한 사모의 마음을 곡진히 드러내고 있다.

1부의 첫수이다.

 

위하고 위한 구슬

싸고다시 싸노매라,

 

때뭇고 니빠짐을

님은아니 탓하셔도,

 

바칠제 성하읍도록

나는 애써 가왜라

- 「궁거워」

 

제 2 부 ‘구름이 지난 자리’에는 ‘조선 국토 순례의 축문(祝文)으로 쓴 36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이 부분은 국토 순례 여행을 하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2부의 첫수이다.

 

아득한 어느제에

님이여긔 나립신고,

 

버더난 한 가지에

나도열림 생각하면,

 

이 자리 안차즈리까

멀다놉다하리까

-「단군굴에서」

 

제 3 부에는 ‘안두삼척(案頭三尺)에 제가 저를 잊어버렸던 36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그의 서재인 일람각을 중심으로 생활 주변의 감상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3부의 첫수이다.

 

외지다 버리시매

조각땅이 내게잇네

 

한나무 머귀덕에

또약볏도 겁업서라

 

수수깡 쓸린창에나

서늘그득 조하라

-「동산에서」

 

육당은 자서에서 ‘하소연의 연장’이 아니라 ‘思想의 一容器’로 만들고 이 시조의 틀인『백발번뇌』에서 자신의 ‘조선심’ 사상을 담고자 했다.

 

어떠케든지 알른 소리할 구멍을 뜨흐려 하는 이 民衆들은 요새 와서 時調까지도 무슨 하소연의 연장으로 쓸 생각을 하얏습니다.‧‧‧‧‧‧<중략>‧‧‧‧‧‧時調를 한 文字 遊戱의 굴헝에서 건저 내어서 엄숙한 思想의 一容器를 맨들어 보려고 애오라지 애써온 점이나 삷혀 주시면 이는 무로 分外의 榮幸입니다.

-최남선,『백발번뇌』서문에서

 

육당의님은구경 누구인가? 나는그를짐작한다.그님의닐음은 조선인가한다.이닐음이 육당의입에서 떠날 때가업건마는 듯는사람은대개 그님의닐음으로불으는것을깨닷지못한다.

- 홍명희의 발문에서

 

벽초 홍명희 발문에는 육당의 님은 ‘조선’이라고 했다. 일부는 ‘단군’, ‘불타’로도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의 종교적 관심일 뿐 육당의 님은 ‘조선주의’로 일원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대적인 감각과 제재로 시조라는 낡은 문학 형태를 조선심으로 불씨를 살리려고 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백팔번뇌』이다. 육당은 시조 108수를 이『백팔 번뇌』한 권에 묶었다고 했지만 사실『백팔번뇌』는 111수로 이루어졌다. 각 3부 36수(?)이다.

육당은 표제에 불교 용어인 ‘백팔번뇌’를 사용했다. 이는 당시 불교계의 석학이었던 석전 박한영 종사와의 교유에서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백팔번뇌』의 표제를 석전이 붙였고 ‘심춘순례(尋春巡禮)’, ‘백두산관참기(白頭山覲參記)’에 동도(同途)했던 이가 바로 석전이었으며 그에게서 많은 현교(顯敎)와 암시를 받았다고 한다.

육당은 민족적 수난기를 살아온 선각자로서의 번뇌를 불교적 의미인 이『백팔번뇌』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중생의 번뇌는 108개나 된다고 한다. 백팔결(百八結), 백팔결업(百八結業)이라고도 한다. 눈·귀·코·혀·피부·뜻의 육근(六根)과 이 육근에 색깔·소리·냄새·맛·감각·법(法)의 육진(六塵)이 서로 작용하여 번뇌가 일어난다. 여기에 좋고, 나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세 가지 인식작용이 더해 108가지의 번뇌가 일어난다. 이를 산출하면 ‘6×6×3=108’이 된다.

최남선의 『백팔 번뇌』는 3부 36수로 이루어져 108의 숫자가 위와 같은 공식에 딱 들어 맞는다.

 

1

버들닙헤 구는구슬 알알이 지튼봄빗,

찬비라 할지라도 님의사랑 담아옴을,

적시어 뼈에 심인다 마달누가 있으리.

 

2

볼부은 저 개골이 그무엇에 쫏겻관대

조르를 저즌몸이 논귀에서 헐덕이나

떼봄이 처들어와요 더위함께 옵데다.

 

3

저 강상(江上) 작은 돌에 더북할손 푸른풀을,

다살라 욱대길때 그누구가 봄을 외리,

줌만한 저 흙 일망정 노처아니 주도다.

- 최남선의 「봄ㅅ길」전문

 

『백팔번뇌』의 제 3 부 ‘날아드는 잘새’의「봄ㅅ길」3수이다. 옛날 국정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지금도 외우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친근한 시조이다.

버들잎에 구는 구슬 알알이 짙은 봄빛, 찬비라 할지라도 님의 사랑 담아옴을, 적시어 뼈에 스민다 마다할 누가 있으리. 볼 부은 저 개구리 그 무엇에 쫓겼관데 조르르 젖은 몸이 논귀에서 헐덕이나 떼봄이 처들어와요 더위 함께 옵데다. 저 강상 작은 돌에 수북히 덮힌 푸른 풀을 다 살려고 억지를 부릴 때 그 누구가 봄을 어기리. 한줌만한 저 흙일망정 내어놓지 않고 주도다.

여기서의 님 역시 조선심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만히 오는 비가

락수저서 소리하니,

 

오마지 안흔이가

일도업시 기다려저,

 

열릴 듯 다친문으로

눈이자조 가더라.

- 최남선의「혼자앉아서」전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시조이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누구나 혼자 앉아서 빗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다려도 올 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괜히 기다려지는 것이다. 오지 않을 님이건만 혹여 올까, 그래도 조금 열어둔 문으로 눈이 자주 간다는 것이다. 저만치 밀쳐 두었던 그리움이 이리도 곡진하게 밀려오는 것을 어찌할 것인가. 이것이 인지상정,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시조는 더욱 정감이 간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 나온 시조들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무작정 외웠다. 맹목적으로 외운 것도 나이 들어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어 끄떡끄떡이게 만든다.

육당 최남선(1890,고종 27-1957)은 문학가이며 사학자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으례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그는 언제부터 친일했을까. 자세히는 알 수는 없으나 그가 3 · 1운동 이후 구금 투옥되고 나서 석방된 뒤 계속 일제의 감시·규제를 받았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부터 친일로 전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자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1945년 8월 이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1948년 9월 제정되었던 법률이다.

법정 앞에 섰다. 최남선은 “법의 처벌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채찍을 달게 받겠다. 국민의 용서를 바랄 뿐이다”라고 사죄했지만 이광수는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하였소”라고 자신을 변명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벽 한용운은 최남선의 집 앞에서 “어이, 어이” 하면서 곡을 했다. “민족을 배반했으니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친구의 죽음을 조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부서 지는때에

혼자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갓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물은 듯 단단한속은

알이알가하노라

- 최남선의 「진벼루의 銘」

 

서예인들이 많이 쓰고 있는, 어렸을 때 한번쯤은 써보았던 시조이다. 다 부서지는 때에 혼자 성하기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물은 듯 단단한 속은 알리 알까 하노라.

잡지『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으며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였던 최남선.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던 최남선.

이 때의 육당의 마음 속이 이런 ‘깨진 벼루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는『시조유취』를 남겨놓았다.

1928년 발간된 시조집이다. 역대 시조를 모아 1405수를 수록했다. 책 머리에는 곡조에 관한 설명을 붙였고 본문은 내용에 따라 사시·초목·상사 등 21문으로 분류 편집했다. 작자에 대한 해설과 본문의 주석, 그리고 초·중·종장에 따라 색인이 붙어있다.

편자는 여기에서 시조 보존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얼마나 시조에 대한 애정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외 기행문『심춘순례』,상고사연구집인 『아시조선』,역사논문집 『불함문화론』등이 있다.

필자는 쓸데 없는 생각 하나 해보았다.

음악 곡조로의 ‘시조’의 최초의 기록이 신광수의「관서악부,1774」(일명,관서백팔악부)로부터 비롯되었고 문학 장르로서의 ‘시조’의 출발점이 최남선의 논문「조선 국민 문학으로서의 시조, 1926」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나는 음악적 명칭인 ‘시조’가 신광수에서 비롯되었고 하나는 문학적 명칭인 ‘시조’가 최남선에서부터 출발되었다. 신광수가 지은「관서악부(關西樂府)」가 108수요 최남선이 지은『백팔번뇌』도 108수이다. ‘시조’라는 명칭을 두고 벌어진, 우연치고는 운명 같은 묘한 우연이다.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를 흔히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들은 죽마고유였으나 육당과 춘원은 변절했고 벽초는 월북했다. 근대사에 놓친, 아까운 인물들이다.

 

- 서예 문인화, 2018.5월호

 

[출처] 최남선 편|작성자 석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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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무공 김낙범 | 작성시간 22.07.30 시조를 배우네요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황득 김한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31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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