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처사는 침묵하는 것이다 / 이종영
몇 년 전 광명 현장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숙소 생활을 하였기에 퇴근 후 무료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취미 생활로 색소폰을 배울 때였다. 초보자 입장이라 처음부터 비싼 색소폰을 사기보다는 저렴한 가격의 색소폰을 구매하여 연습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늘 선배들의 멋진 연주 솜씨와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 있는 고가의 색소폰을 동경(憧憬)해 왔다. 언젠가 나도 좋은 색소폰을 구매하리라 생각하며 연습에 열중하였다그러던 어느 날 연습실에 도착하니 문제가 발생했다. 항상 좋은 조언으로 색소폰 연습에 많은 도움을 주시는 한 선배께서 연습실에 보관하고 다니던 고가의 S 색소폰을 도난당한 것이다. 전날 마지막으로 연습실을 퇴실한 것이 나였으며, 내가 좋은 색소폰을 구매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연습실 동료 K는 은연중 나를 의심하는 투의 말을 하고 다녔다.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모든 말에는 책임이 따를진대, 어찌 느낌만으로 확인되지 않은 말을 그리 쉽게 내뱉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물증도 없이 근거 없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은근히 거리감을 두는 동료들에게서 느낀 실망감은, 말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함과 동시에 내 행동을 뒤돌아보게 했다. 그런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일주일이 지났다그날도 퇴근 후 연습실을 찾았을 때, 다른 동료가 소식을 전해 주었다. K를 따라 몇 번 연습실에 왔던 K의 친구가 안양에 있는 어느 색소폰 상회에서 훔친 색소폰을 팔려다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오해 때문에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순간의 억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연습을 그만두었다면, 아마 지금의 색소폰 연주하는 내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20세기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의 “소문(Gossip)”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그림은 자신이 퍼뜨린 이야기가 돌고 돌아 처음보다 더 부풀려진 채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을 보고 경악하는 인간의 군상을 담은 작품이다. 그만큼 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잘 나타낸다. 지혜로운 자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언어의 혼탁한 공간 속에 살고 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라는 속담처럼 말은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것도 처음 의도와는 달리 살이 덧붙여져서 말이다. 그러기에 분별력 없는 어리석은 자는 침묵하는 편이 더욱 지혜로운 처사일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확인되지 않거나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그것은 결국 자신 또한 소문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씨앗을 뿌려야 좋은 열매가 맺히듯, 진실하고 유익하며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말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되돌아오는 메아리도 아름다운 법이다. 자칫 오해를 부르는 말 한마디가 올무가 되어 평생의 큰 짐으로 따라다닐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튀르키예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토로스산맥(Taurus Mountains)은 독수리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이곳의 독수리들에게는 두루미가 가장 맛있는 먹잇감이다. 독수리들은 곧잘 이 산맥을 넘어가는 두루미들을 공격해 배를 채우곤 한다. 그런데 항상 독수리의 표적이 되는 것은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두루미들이다. 두루미는 원래 떠들기를 좋아하여 하늘을 날 때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이 소리가 독수리들에게는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주는 좋은 신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 많고 노련한 두루미는 거의 희생당하지 않는다.
경험 많은 두루미는 이동하기 전, 입에 가득 돌을 물고 하늘을 날기 때문이다. 입에 문 자갈 때문에 소리를 내지 못하므로 독수리의 공격을 피해 무사히 산맥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 인간의 귀는 유익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하지만, 가벼운 입이 열려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침묵하는 사람의 속내체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돌을 문 두루미처럼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적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오해와 갈등의 대부분은 입에서 비롯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낀다. 노련한 두루미가 자갈을 입에 무는 지혜와, 입을 성급히 벌린 물고기만이 낚싯바늘에 걸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늘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삼키기를 좋아한다." (잠언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