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 / 이종영
지은 지 30년 된 낡은 빌라가 작은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건물 지붕은 벗겨져 흉측한 모습이며, 4층 높이 계단의 난간대는 일부가 떨어져 나간 지 오래다. 특히 노약자가 오르내릴 때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공동 정화조 시설도 낡고 부실하여 구청으로부터 몇 차례 수리 통보를 받았다. 전체적으로 낡은 몇 가지를 보수하는 데만 천만 단위 이상의 공사비가 산출되었다. 마침 같은 시기에 건축한 이웃 건물들은 재건축 공사를 하느라 도로는 공사 차량으로 복잡했고 주위는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했다. "우리도 언제까지 보수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재건축합시다." 주민 중 일부가 수리보다는 재건축을 제안하고 나섰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 동안 부서지고 벗겨진 건물을 수리만 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었다. 뜻이 맞는 주민들이 앞장선 덕분에 가칭 'OO 재건축 조합'이 결성되었다.
반대하는 세대도 있었지만 몇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건축에 동의하였다.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무보수 봉사를 자처한, 건축 경험이 있는 네 분이 조합 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시작은 좋았다. 당장에라도 새 아파트를 지을 것처럼 구청에 조합 신청을 하고 재건축에 필요한 갖가지 서류도 준비하며 좋은 의견들을 나누었다. 그러나 지난여름부터 몇 차례 회의를 개최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가보다 많은 땅값 보상을 요구하는 큰 평수 세대와 건축비에 불만을 나타내는 세대 등, 순수한 첫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서로가 이해타산을 따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합원과 임원진 간의 믿음과 신뢰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임원진은 임원진대로 봉사하겠다는 처음 의도와는 달리 물욕에 눈이 어두워져 갔고, 결국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으려 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고 있었다. 낡은 빌라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고자 하는 소박한 꿈은,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고집하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에 막히고 말았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다 보니 재건축 계획은 생각보다 자꾸만 늦어졌다.
경남 거제시 OO동 거리에 있는 모 보험회사 대리점은 간판 문구를 "믿음과 신뢰의 OO 대리점"으로 바꾸고 나서 보험 계약액이 더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믿음과 신뢰란 서로를 믿고 존중할 때 비로소 유지되는 법이다. 상호 간의 굳건한 믿음 없이 시작한 일은 결국 서까래 없이 지붕을 얹는 꼴이 되고 만다. 며칠 전, 승객이 택시에 두고 내린 30만 달러의 돈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준 미국의 한 평범한 택시기사 뉴스를 접했다. 낯모르는 승객의 실수였지만, 눈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은 기본 양심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정직하고 진실한 태도가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하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앞서 눈높이를 낮추어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더욱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믿음과 신뢰에 관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나폴레옹 황제가 부관과 둘이서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평민 복장을 하고 어느 여관에 머물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후 여관 주인은 14프랑이라 적힌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부관이 지갑을 꺼냈으나 지갑에는 한 푼의 돈도 들어 있지 않았다. "내가 계산하도록 하지." 부관이 당황하고 있을 때 나폴레옹이 지갑을 꺼냈다. 그러나 그의 지갑에도 역시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부관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한 시간 안에 돈을 가져다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관 주인은 펄쩍 뛰었다. "지금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헌병을 부르겠소!" 그들의 실랑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젊은 웨이터가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이분들은 정직해 보입니다. 이분들 대신 제가 14프랑을 내겠습니다." 젊은 웨이터가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그들은 여관을 나설 수가 있었다. 얼마 후 부관이 돌아와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이 여관을 얼마 주고 샀습니까?" "3만 프랑이오." 부관은 지갑에서 3만 프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황제의 명령으로 나는 이 여관을 우리를 도와준 웨이터에게 넘기겠소."
여관 주인과 웨이터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달랐다. 웨이터는 손님을 믿었으나 여관 주인은 손님을 믿지 못했다. 아주 단순한 차이였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달랐다. 의심이 존재하면 인간관계는 파멸하고 만다. 잠시 중단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진행 중인 우리 재건축 사업도 마찬가지다. 조합원 모두가 새로운 임원진을 신뢰하고, 임원진 또한 조합원의 입장에서 투명하고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멋있고 편안한 우리의 보금자리인 아름다운 아파트가 우뚝 솟아오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좋은 만남 2014년 2월 호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