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부탁, 그리고 참사랑 / 이종영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서도 계절은 어김없이 자리바꿈을 준비하는 2월 중순이다. 오랜 세월, 먼저 떠난 부인을 대신해 두 딸을 훌륭히 키워낸 지인이 내게 뜻깊은 부탁을 건네왔다.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고생만 하신 아빠가 이제는 좋은 분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딸들의 성화가 지칠 줄 몰랐단다. 우연한 기회에 오십 연줄의 세월 속에서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 조심스레 마음을 알아간 지 어느덧 2년. 다음 달이면 두 사람이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지인은 결혼식 날, 남은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애틋한 진심을 아름다운 글로 대필해 줄 것을 내게 청해왔다. 그동안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는 조시(弔詩)부터 기쁜 순간을 축하하는 감사의 글까지 숱한 사연들을 써왔지만,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선 두 분을 축복하는 글을 마주하자니 어떤 표현이 그 사랑을 온전히 묶어줄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 1서 3:18)라는 말씀을 중심에 두고 정성스레 글을 써 내려갔다. 두 분의 앞날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은총이 늘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사랑하는 OO에게
당신을 만나기 전, 제게 해가 뜨고 지는 것은 그저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식탁 위로 촉촉하게 내려앉는 아침 햇살처럼, 당신과 함께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싱그럽기 그지없습니다. 숨죽여 홀로 아파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도, 어깨를 부딪치는 번잡한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 때도, 문득 당신을 떠올리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상쾌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으로 쏴아 하고 쏟아져 내리는 기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을 만난 이후 제 삶에 찾아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 덕분입니다.
사랑하는 OO,
일상을 공유할 누군가가 곁에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제 삶에는 생기가 차오르고,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가득 넘쳐납니다. 당신은 단순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넘어, 나를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준 소중한 사람입니다. 무의미하게 표류하던 내 삶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찾게 해 준 고맙고 고마운 사람입니다. 시선을 둘 곳 없어 두리번거리던 거리를 이제는 편안하게 활보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이 모든 여유와 용기가 그대가 나눠준 깊은 사랑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OO,
우리가 살아갈 앞날에 늘 기쁘고 좋은 일만 가득하지는 않겠지요. 때로는 예상치 못한 시름과 아픈 날도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떤 고난도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당신을 향해 언제나 시들지 않는 사랑과 헌신의 불을 밝히겠습니다. 하얗게 새어버릴 머리카락도, 세월이 새겨놓을 깊은 주름살까지도 온전히 사랑하고 보듬어 안는 남은 생이고 싶습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러했듯, 서로의 빈 곳을 조금씩 채워주는 아름다운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OO,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버린다”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싱그러운 봄날의 새싹처럼 인생의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오늘, 나는 당신에게 굳게 약속합니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이 세상 소풍 마치는 그날까지 당신을 가장 아끼고 존중하며 영원히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내게 와 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21년 3월 21일,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는 OOO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이종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55분 전 new
2021년 3월 21일 결혼한 두 분은 지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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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화 이병화 작성시간 26.06.12 좋은 일 하셨네요. 애틋하고 사랑이 넘치는 편지, 당사자라도 된양 괜스레 ㅎ설레며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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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이종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2 감사합니다 글을 쓰며 보람있는 일중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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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병택 작성시간 58분 전 new
ㅎ
타인의 부탁으로 시작해서
인간 구원의 보편적 가치인 '진실한 사랑'으로 수렴하는,
가슴시리도록 따뜻한
한 편의 러브레터이자 고결한 서사시로군요.
감상 잘했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