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
秀景 김철경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깨어 뒤척였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나뭇잎 끝에 맺힌 물방울은 작은 하늘을 품고 있었다. 벚나무 가지에는 참새 몇 마리가 앉아 몸을 털었고, 먼 산은 물안개를 이불처럼 두른 채 잠에서 막 깨어나는 듯했다.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인터넷 뉴스를 뒤적이다가,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한 뉴스에 깜짝 놀랐다. 중국의 한 70대 남성이 바나나를 과하게 섭취한 뒤 중증 고칼륨혈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응급 혈액투석 치료 끝에 생명을 회복했다는 기사였다. 순간 손에 들린 노란 열매가 갑자기 낯설게 보였다. 나는 바나나가 몸에 좋다고 해서 자주 많이 들곤 했었다. 익숙함이 한순간에 낯섦으로 뒤집히는 순간, 나의 마음속 세계는 조용히 균열을 드러낸다.
[바나나] 하면, 어릴적, 어머니가 바나나 한개를 형과 나에게 반씩 나누어 주셨는데, 그것을 두고두고 조금씩 먹었던 가난한 시절이 생각난다. 그 당시는 매우 귀하고 값비싼 바나나였다. 바나나는 나의 초등학교 소풍의 기억 속에도 있고, 병실의 위로 속에도 있다. 그러나 그 달콤함이 생리적 균형을 넘는 순간, 생명을 흔드는 변수로 바뀐다. 자연은 늘 그렇게 말없이 경계를 가르친다. 햇빛도 지나치면 살을 태우고, 비도 넘치면 홍수가 된다. 바람도 강해지면 숲을 쓰러뜨린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절제의 내부에서만 유지된다. 독성학 공부를 하면서 배운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독성 물질이다.” 독이 아닌 것도 없고, 약이 아닌 것도 없다. 다만 그것을 가르는 것은 바로 ‘투여량(dosage)’이다.
맑은 물도 과하면 생명을 위협하고, 산소조차 넘치면 몸의 세포를 손상시킨다. 생명과 파괴는 멀리 떨어진 두 세계가 아니라, 같은 선 위의 양 끝이다. 토끼에게 설탕을 과하게 주면, 생명이 흔들릴 수 있고, 독으로 알려진 비소는 극미량에서 치료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물질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분별이다.
나는 문득 세상사를 떠올렸다. 사람은 깊이 들어가야 성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깊이와 치우침은 다른 이름이다. 몰입은 생명을 살리지만, 집착은 생명을 잠식한다. 강물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두둑 사이를 지킬 때에야 바다에 닿는다. 새 또한 두 날개의 균형으로 하늘을 가른다. 삶 또한 그와 같다. “중용은 기울지 아니함이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아니함이다.” 논어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것은 정지가 아니라, 매 순간 중심을 다시 찾아가는 운동이다. 넘침과 부족함 사이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조율하는 일, 그것이 살아 있음의 방식이다.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중용에서 찾았다. 그것은 회색의 타협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균형의 기술이었다. 미셸 드 몽테뉴는 인간의 확신이 과잉될 때 위험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스스로를 의심할 줄 아는 태도야말로 사유의 출발점이라 말했다. 그 사상들은 오래된 나무의 그늘처럼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모난 돌은 파도를 많이 맞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둥글 필요도 없다. 지나치게 날카롭지도, 지나치게 무디지도 않은 상태. 자기 신념을 지키되 타인의 사유를 닫지 않는 마음. 자기 길을 걷되 다른 길을 지우지 않는 태도. 그것이 오래 가는 삶의 형식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립보서 4:5),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야고보서 1:19) 듣는 마음. 멈추는 마음. 넘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인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살맛 나는 세상이 오길 희망하고 있다.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노을은 세상을 삼키지 않고, 조용히 덮어 안았다. 어둠을 밀어내지 않고 그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하루를 내려놓는다. 자연은 언제나 균형 속에서 아름답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계절이 변덕을 부리기는 해도 우리나라 사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직도 이십사절기는 삶의 흐름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강은 넘치지 않아 흐르고, 나무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 숲이 된다. 꽃은 억지로 향기를 퍼뜨리지 않아도 벌과 나비를 부른다. 바나나 한 송이에서 시작된 사유는 인간 존재의 경계로 흘러왔다. 세상은 부족해도 흔들리고, 넘쳐도 무너진다.
최첨단 과학 시대에도 인간은 부족함과 넘침 사이에서 곡예를 하듯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나름대로 가치관을 지니고 그 얇은 경계 위를 평생 걸어간다. 지혜란 결국 단순하다.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마음. 한 번 더 듣는 귀. 한 숟갈 덜어내는 절제. 그것이면 충분하다. 바람은 지나가도 숲은 남는다. 말은 사라져도 품격은 남는다. 그리고 넘치지 않는 삶은, 오래도록 조용한 향기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