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노년의 진정한 즐거움

작성자김철경|작성시간26.06.15|조회수35 목록 댓글 3


노년의 진정한 즐거움

秀景 김철경

김열규 교수의 글을 나는 학창 시절에 좋아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의 책 『노년의 즐거움』- 「은퇴 후 30년,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접하게 되면서, 노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일까. 얼굴 주름이 늘어나는 일일까. 걸음걸이가 느려지는 일일까. 아니면 세상 한복판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일일까. 지금 나는 모두 다 해당이 된다. 젊은 시절에는 노년은 인생의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의 강을 훌쩍 건너와 보니,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인생은 산이 아니라 강이라는 것을. 산은 오르고 내려가지만, 강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른다. 어린 시절의 시냇물로 시작하여, 청년의 급류를 지나, 중년의 넓은 강폭을 이루고, 마침내 노년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김열규 교수는 『노년의 즐거움』에서 노년을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였다. 그는 노년을 쇠퇴가 아니라 노숙(老熟)의 시간이라 하였다. 삶이 익어가는 시간, 지혜가 깊어지는 시간, 영혼이 투명해지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젊음은 속도의 계절이지만, 노년은 깊이의 계절이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억을 대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불안해한다. 강대국들은 기술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정치는 이념의 진영 속에서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경제는 숫자의 파도 위에서 출렁거린다. 뉴스는 매일 새로운 갈등을 생산한다. 세상은 점점 촘촘하게 연결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점점 고독해진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지혜는 오히려 부족해진다. 속도는 빨라지는데, 방향은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노년의 가치는 더욱더 빛난다.
인공지능은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추억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계산할 수 있으나, 사랑할 수는 없다. 답을 찾을 수 있으나,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를 흉내 낼 수 있으나, 인간의 영혼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래는 기술만의 시대가 아니다. 지혜의 시대이다.
청년은 속도를 만들며, 노년은 방향을 제시한다. 청년은 미래를 설계하며, 노년은 미래를 해석한다. 청년은 길을 열며, 노년은 길의 의미를 가르친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수상록』제1권 제20장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죽음을 배우는 사람은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끝을 아는 사람은 오늘을 소중히 여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노년은 마치 나무가 제철에 익은 열매를 맺듯이 그 결실을 거두는 시기라고 했다. 노년은 소유의 시간이 아니라 나눔의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진리를 모르고 노년을 그냥 맞이하였다.
노년은 경쟁의 시간이 아니라 관조의 시간이다. 노년은 확장의 시간이 아니라 성숙의 시간이다. 그래서 노년의 즐거움은 의외로 단순하다. 다 내려놓는 것이다. 억울했던 일도 내려놓고, 상처 준 사람도 놓아주고, 후회도 흘려보내고, 욕심도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움켜쥐는 것이 힘인 줄 알았다. 그러나 노년은 안다. 놓아주는 것이 더 큰 힘이라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더 큰 승리라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더 큰 지혜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강물은 자기 길을 안다.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흐른다. 누가 막지 않아도 바다를 향한다. 노년은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때 강물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세월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하늘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이다.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는 것이다. 사람은 늙어도 영혼은 늙지 않는다. 머리는 희어질 수 있다. 무릎은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새벽 태양처럼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젊은 송아지처럼 기뻐 뛸 수 있다. 세상은 노년을 황혼이라 부르지만, 성경은 노년을 새벽이라 말한다.
은퇴는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삶일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사진을 찍고, 손주와 대화하고, 이웃을 돌보고, 기도하며 세상을 품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모여 노년의 즐거움이 된다.
강물은 끝내 바다에 이른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더 큰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노년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문턱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쁘게 살아가자. 배움을 멈추지 말고, 사랑을 멈추지 말고, 꿈꾸기를 멈추지 말고, 감사를 멈추지 말자. 비록 겉 사람은 부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세월은 우리 몸을 늙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영혼은 날마다 젊어진다. 그것이 노년의 즐거움이다. 그것이 은퇴 후 30년, 가장 가슴 뛰는 삶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淸湖 이 철 우 | 작성시간 26.06.15 老年의 즐거움이라 궁상떠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지요.
    좋은 글 깊이 새겨봅니다.
    建安 健筆하시기를 빕니다.
  • 작성자소화 이병화 | 작성시간 26.06.16 청춘예찬이 아니라 노년예찬이로군요. 구석구석 주옥같은 글귀가 백퍼공감입니다. 좋은 글에 위로받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오영록 | 작성시간 26.06.16 비록 겉 사람은 부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그래서 요즘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군요..ㅋ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