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2.07.15|조회수83 목록 댓글 2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랭보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적 희망의 목을 조르는 완전한 기쁨에 겨워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사형집행인들을 불러들여,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 개머리판을 물어뜯었다.

나는 재앙을 불러들였고

그리하여 모래와 피로 숨이 막혔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길게 쓰러졌다.

나는 범죄의 공기에 몸을 말렸다.

그리고는 광적으로 못된 곡예를 했다.

 

하여 붙은

나에게 백치의 끔찍한 웃음을 일으켰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하마터면 마지막

‘꾸악’ 소리를 낼 뻔했을 때

나는 옛 축제의 열쇠를 찾으려고 마음먹었다.

거기에서라면 아마 욕구가 다시 생겨날 것이다.

자비가 그 열쇠다.

이런 발상을 하다니

나는 꿈꾸어 왔나 보다.

 

‘너는 언제까지나 하이에나이리라, 등등......’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으로

나에게 화관을 쓰워 준

악마가 소리 지른다.

‘너의 모든 욕구들, 너의 이기심.

그리고 너의 큰 죄업들로 죽음을 얻어라’

아! 나는 그것들을 실컷 맞이했다.

하지만 친애하는 사탄이여, 간청하노니

눈동자에서 화를 거두시라!

 

하여 모든 뒤늦게 몇몇

하찮은 비열한 것을 기다리면서

글쟁이에게서 묘사하거나

훈계하는 역량의 부재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내 악마에 들린 자의 수첩에서

이 흉측스런 몇 장을 뜯어내 덧붙인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 중 35

part 2 그대의 입술은 꽃으로 말하리

채빈 엮음

 

 

 

[작가소개]

아르튀르 랭보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폴 발레리, 스테판 말라르메 등의 후기 상징주의 작가들과 더불어 프랑스 현대시 구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제2제국 동북부 아르덴주 샤를빌(현 샤를빌메지에르·Charleville-Mézières)에서 군인인 프레데리크 랭보(Frédéric Rimbaud)와 비탈리 랭보(Marie Catherine Vitalie Rimbaud)[1] 부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865년 랭보는 형 프레데리크 랭보[2]와 함께 콜레주 드 샤를빌에 입학해 총명한 재능을 뽐낸다. 형 프레데리크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보여줬지만 랭보가 라틴어·그리스어 암송 부문의 상을 모조리 쓸어가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다. 랭보는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학교를 싫어했다. 일부러 수학이나 간단한 나눗셈조차 못 하는 척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래는 콜레주의 교육 방식에 반발, 랭보가 작성한 글이다.

『알렉산드라가 유명했었다는 사실이

내게 뭐 중요한가? 라틴 민족이 존재했는지

안 했는지 아는 것이 내게 대체 왜 중요하단 말이야?

그들이 살았었다 해도

그들은 나를 연금 생활자 정도로 만들었을 테고

그들 자신을 위해서 그들의 언어를 보전해 온 것뿐인데.

내가 선생들한테 뺨을 맞고 그로 인해

고초를 겪을 정도로 잘못한 게 뭐란 말인가.

빌어먹을 그리스어

이 빌어먹을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중략)

걸상에 앉아 바지가

닳도록 공부해봤자 좋은 일도 별로 없고.

빌어먹을!

구두닦이가 되려면 구두닦이 할 자리를 얻어야 하고

시험에 붙어야 해!

당신들에게 할당된 자리들은 구두닦이나 수위나

목축업자 같은 거지.

다행히도 나는 그런 자리는 원하지 않아.

빌어먹을!

에라이, 좆같다!』

 

랭보의 개인 교사 이장바르 선생에게 소설 레미제라블 등을 소개받으며 본격적으로 문학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랭보의 어머니는 왜 아이에게 소설이나 읽히냐며 불평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이장바르와 랭보는 스승-제자 이상의 친밀한 관계였다. 이장바르는 가출한 랭보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이장바르 선생은 랭보에게 계속 바칼로레아 시험을 보고 대학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지만, 랭보는 대학 X까 나는 시인이라고라는 자세로 일관했다. 이즈음 랭보는 유명한 '견자의 편지'를 이장바르에게 써 자신은 시인의 길로 전념할 것을 밝혔다.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랭보는 친구 브르타뉴의 소개로 파리에서 한참 인기를 끌던 시인 폴 베를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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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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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무공 김낙범 | 작성시간 22.07.15 욕구에 얽매인 자아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황득 김한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16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이 초복이네요. 초복 땜 잘 하시고
    피서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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