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하우스/이병화
밥상머리 리더, 탄수화물 밀려나자
대대리 넓은 논엔 하얀 파도가 일렁인다
굴러 들어온 돌 박힌 돌 빼버리듯, 하우스엔
벼 대신, 계절 아랑곳 하지 않는 식물들
특수작물이란 이름표 달고 터 잡는다
그곳에서 제철 모르고 뿌리내린 초록이들
군인들처럼 줄 맞추어 빼곡하다
다 자란 상추 쑥갓 치커리는
베트남 여인 손에 뽑혀 상자에 담겨
트럭 타고 가락시장으로 떠난다
몇 달 동안 그들의 발목 붙들고 있던 흙은
또다시 새로운 인연을 운명처럼 품을 것이다
계절을 당겨 태어날 초록이들
기계영농으로 휑한 하우스에서
꼬물꼬물, 사람의 손길 모르고도 잘 살 것이다
이병화 시인의 <하우스 하우스>는 우리 농촌의 변화된 풍경과 그 이면에 담긴 현대적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시이다.
1. 주제 및 소재의 時宜性
이 시는 과거 '벼(쌀)' 중심의 농경 사회가 '특수작물(시설 원예)' 중심으로 변화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밥상머리 리더, 탄수화물 밀려나자"라는 첫 문장은 쌀 소비가 줄어든 시대적 배경을 아주 위트 있고
강렬하게 제시하며 독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2. 주요 이미지와 상징
하얀 파도: 비닐하우스 단지를 '하얀 파도'로 비유한 점이 시각적으로 선명하다. 자연적인 파도가 아닌, 인공적인 비닐이 물결치는 농촌의 낯선 풍경을 잘 묘사했다.
굴러 들어온 돌, 박힌 돌: 전통적인 작물인 벼와 새로 유입된 특수작물의 관계를 전래 속담을 빌려 표현함으로써, 변화의 불가항력적인 속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계절 아랑곳 하지 않는 식물들: 비닐하우스라는 통제된 환경(인공성)을 '제철 모르고 뿌리내린'이라는 표현으로 연결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현대 농업의 특징을 잘 짚어냈다.
3. 사회적 성찰과 시선의 확장
2연에서 시선은 단순히 풍경에 머물지 않고 노동의 현실로 확장되고 있다.
"베트남 여인 손에 뽑혀": 현재 한국 농촌 노동력의 핵심인 이주 노동자의 존재를 가감 없이 드러내어 현실감을 높였다.
"가락시장으로 떠난다":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바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를 보여주며 도시와 농촌의 연결고리를 시사한다.
4. 결말의 울림과 역설
마지막 연에서 "사람의 손길 모르고도 잘 살 것이다"라는 대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기계화와 자동화로 인한 편리함을 말하는 동시에, 흙을 만지며 정을 나누던 과거의 '농심(農心)'이 사라진 쓸쓸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꼬물꼬물'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의태어가 무생물적인 '기계영농'과 대비되어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이미저리가 의미망에 안착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각적 대비를 통한 공간의 재구성
시의 도입부에서 제시되는 '하얀 파도'와 '초록이들'의 색채 대비는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이미저리다.
하얀 파도 (비닐하우스): 이는 자연적인 바다가 아니라, 들판을 덮어버린 '인공의 막'이다. 시인은 이를 '굴러 들어온 돌'로 규정하며, 기존의 질서(벼 농사)를 밀어낸 이질적인 침입자로 형상화한다.
초록이들 (특수작물): 이들은 하얀 비닐 안에서 자라난다. 여기서 '초록'은 생명력을 상징하지만, '제철 모르고', '군인들처럼 줄 맞추어' 있다는 묘사를 통해 규격화되고 통제된 생명이라는 의미망에 안착한다.
2. 역동적 이미저리와 소외의 의미망
중반부에서 이미지는 '정지된 풍경'에서 '움직이는 흐름'으로 변화합니다.
베트남 여인의 손 → 상자 → 트럭 → 가락시장: 이 일련의 동선은 생산의 이미지를 '상품의 유통' 이미지로 빠르게 전환시킨다.
여기서 '발목 붙들고 있던 흙'이라는 촉각적 이미지가 중요하다. 흙은 식물을 붙잡아두려 하지만(전통적 유대), 식물은 인간의 손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어 '가락시장'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편입된다. 이 지점에서 이미저리는 '생명과 대지의 단절'이라는 주제 의식에 안착하게 된다.
3. 시간의 압축과 '인공적 탄생'의 이미지
마지막 연에서 이미지는 시간성을 관통합니다.
"계절을 당겨 태어날": 이는 자연의 순리인 '시간'을 인간이 기술로 '당겨(압축)'버렸음을 의미한다.
"꼬물꼬물" vs "기계영농": '꼬물꼬물'은 아주 연약한 생명의 태동을 느끼게 하는 의태어지만, 그것이 향하는 곳은 '사람의 손길'이 아닌 '기계적 환경'을 의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시의 이미저리는: > 시각적 풍경(비닐하우스) → 촉각적 단절(흙과 식물의 분리) → 관념적 역설(사람 없는 생명력)의 단계를 거치며, "편리함 뒤에 가려진 농촌의 기계적 소외"라는 의미망 속에 아주 견고하게 안착하고 있다.
더 살펴볼 점
시에서 '밥상머리 리더'라는 비유가 현대인의 식습관 변화를 상징하며 전체 의미망의 '입구'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이미지의 서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회비평적 성격을 부여하는 절묘한 장치가 되고 있다.
총평
전반적으로 문장이 매끄럽고, 농촌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특히 '하얀 파도(비닐)'와 '초록(채소)'의 색채 대비, 그리고 '전통(벼)'과 '현대(특수작물/기계)'의 대립 구조가
탄탄하여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秀作이다.
**문장 한 줄 추천: > "계절을 당겨 태어날 초록이들"
이 구절은 하우스 농업의 본질을 가장 서정적으로 요약한 문장이라 생각한다.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