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 시<하우스 하우스> 톺아보기/우병택

작성자우병택|작성시간25.12.25|조회수20 목록 댓글 1

하우스 하우스/이병화

밥상머리 리더, 탄수화물 밀려나자
대대리 넓은 논엔 하얀 파도가 일렁인다
굴러 들어온 돌 박힌 돌 빼버리듯, 하우스엔
벼 대신, 계절 아랑곳 하지 않는 식물들
특수작물이란 이름표 달고 터 잡는다
그곳에서 제철 모르고 뿌리내린 초록이들
군인들처럼 줄 맞추어 빼곡하다

다 자란 상추 쑥갓 치커리는
베트남 여인 손에 뽑혀 상자에 담겨
트럭 타고 가락시장으로 떠난다
몇 달 동안 그들의 발목 붙들고 있던 흙은
또다시 새로운 인연을 운명처럼 품을 것이다
계절을 당겨 태어날 초록이들
기계영농으로 휑한 하우스에서
꼬물꼬물, 사람의 손길 모르고도 잘 살 것이다

 

 이병화 시인의 <하우스 하우스>는 우리 농촌의 변화된 풍경과 그 이면에 담긴 현대적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시이다. 
1. 주제 및 소재의 時宜性
  ​이 시는 과거 '벼(쌀)' 중심의 농경 사회가 '특수작물(시설 원예)' 중심으로 변화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밥상머리 리더, 탄수화물 밀려나자"라는 첫 문장은 쌀 소비가 줄어든 시대적 배경을 아주 위트 있고

강렬하게 제시하며 독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2. 주요 이미지와 상징
  ​하얀 파도: 비닐하우스 단지를 '하얀 파도'로 비유한 점이 시각적으로 선명하다. 자연적인 파도가 아닌, 인공적인 비닐이 물결치는 농촌의 낯선 풍경을 잘 묘사했다.
​굴러 들어온 돌, 박힌 돌: 전통적인 작물인 벼와 새로 유입된 특수작물의 관계를 전래 속담을 빌려 표현함으로써, 변화의 불가항력적인 속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계절 아랑곳 하지 않는 식물들: 비닐하우스라는 통제된 환경(인공성)을 '제철 모르고 뿌리내린'이라는 표현으로 연결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현대 농업의 특징을 잘 짚어냈다.

 

3. 사회적 성찰과 시선의 확장
 2연에서 시선은 단순히 풍경에 머물지 않고 노동의 현실로 확장되고 있다.
  ​"베트남 여인 손에 뽑혀": 현재 한국 농촌 노동력의 핵심인 이주 노동자의 존재를 가감 없이 드러내어 현실감을 높였다.
  ​"가락시장으로 떠난다":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바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를 보여주며 도시와 농촌의 연결고리를 시사한다.

 

4. 결말의 울림과 역설
  마지막 연에서 "사람의 손길 모르고도 잘 살 것이다"라는 대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기계화와 자동화로 인한 편리함을 말하는 동시에, 흙을 만지며 정을 나누던 과거의 '농심(農心)'이 사라진 쓸쓸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꼬물꼬물'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의태어가 무생물적인 '기계영농'과 대비되어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이미저리가 의미망에 안착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각적 대비를 통한 공간의 재구성
​  시의 도입부에서 제시되는 '하얀 파도'와 '초록이들'의 색채 대비는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이미저리다.
  ​하얀 파도 (비닐하우스): 이는 자연적인 바다가 아니라, 들판을 덮어버린 '인공의 막'이다. 시인은 이를 '굴러 들어온 돌'로 규정하며, 기존의 질서(벼 농사)를 밀어낸 이질적인 침입자로 형상화한다.
  ​초록이들 (특수작물): 이들은 하얀 비닐 안에서 자라난다. 여기서 '초록'은 생명력을 상징하지만, '제철 모르고', '군인들처럼 줄 맞추어' 있다는 묘사를 통해 규격화되고 통제된 생명이라는 의미망에 안착한다.

 

2. 역동적 이미저리와 소외의 의미망
  ​중반부에서 이미지는 '정지된 풍경'에서 '움직이는 흐름'으로 변화합니다.
  ​베트남 여인의 손 → 상자 → 트럭 → 가락시장: 이 일련의 동선은 생산의 이미지를 '상품의 유통' 이미지로 빠르게 전환시킨다.
  ​여기서 '발목 붙들고 있던 흙'이라는 촉각적 이미지가 중요하다. 흙은 식물을 붙잡아두려 하지만(전통적 유대), 식물은 인간의 손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어 '가락시장'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편입된다. 이 지점에서 이미저리는 '생명과 대지의 단절'이라는 주제 의식에 안착하게 된다.

 

3. 시간의 압축과 '인공적 탄생'의 이미지
  ​마지막 연에서 이미지는 시간성을 관통합니다.
  ​"계절을 당겨 태어날": 이는 자연의 순리인 '시간'을 인간이 기술로 '당겨(압축)'버렸음을 의미한다.
  ​"꼬물꼬물" vs "기계영농": '꼬물꼬물'은 아주 연약한 생명의 태동을 느끼게 하는 의태어지만, 그것이 향하는 곳은 '사람의 손길'이 아닌 '기계적 환경'을 의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시의 이미저리는: > 시각적 풍경(비닐하우스) → 촉각적 단절(흙과 식물의 분리) → 관념적 역설(사람 없는 생명력)의 단계를 거치며, "편리함 뒤에 가려진 농촌의 기계적 소외"라는 의미망 속에 아주 견고하게 안착하고 있다.

 

  더 살펴볼 점
  ​시에서 '밥상머리 리더'라는 비유가 현대인의 식습관 변화를 상징하며 전체 의미망의 '입구'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이미지의 서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회비평적 성격을 부여하는 절묘한 장치가 되고 있다.

 

​  총평
  ​전반적으로 문장이 매끄럽고, 농촌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특히 '하얀 파도(비닐)'와 '초록(채소)'의 색채 대비, 그리고 '전통(벼)'과 '현대(특수작물/기계)'의 대립 구조가

탄탄하여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秀作이다.

 

  **​문장 한 줄 추천: > "계절을 당겨 태어날 초록이들"
​  이 구절은 하우스 농업의 본질을 가장 서정적으로 요약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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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화 이병화 | 작성시간 25.12.26 new 선생님, 본인의 졸시에 훌륭한 옷을 입혀주시어 재탄생된 작품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시 봅니다. 작가의 의도를 예리하게 짚어주시어 더할 나위없이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병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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