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작품♡]시와 해설 (하종오, 동승)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1.11.06|조회수1,685 목록 댓글 2

              동승

 

                                      하종오

 

 

국철 타고 앉아 가다가

문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려 살피니

아시안 젊은 남녀가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늦은 봄날 더운 공휴일 오후

나는 잔무 하러 사무실에 나가는 길이었다.

저이들이 무엇 하려고

국철을 탔는지 궁금해서 쳐다보면

서로 마주 보며 떠들다가 웃다가 귓속말할 뿐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자 장사가 모자를 팔러 오자

천 원 주고 사서 번갈아 머리에 써 보고

만년필 장사가 만년필을 팔러 오자

천 원 주고 사서 번갈아 손바닥에 써 보는 저이들

문득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 돌렸다.

국철은 강가를 달리고 너울거리는 수면 위에는

깃털 색깔이 다른 새 여러 마리가 물결을 타고 있었다.

나는 아시안 젊은 남녀와 천연하게

동승하지 못하고 있어 낯짝 부끄러웠다.

국철은 회사와 공장이 많은 노선을 남겨 두고 있었다.

저이들도 일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지 않을까.

 

-<국경 없는 공장>(2007)-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성찰적, 비판적

◆ 특성

① 체험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함.

② 대조(새↔우리)를 통해 정서가 심화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동승 → 차나, 배, 비행기를 같이 탐.

* 아시안 젊은 남녀 → 관찰의 대상

* 저이들이 무엇 하려고 ~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 대조적인 태도

* 천박한 호기심 →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

*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 돌렸다. → 자기 반성을 통한 부끄러움의 인식

* 깃털 색깔이 ~ 동승하지 못하고 → 새와 화자의 대조적인 모습

* 낯짝 부끄러웠다. → 부끄러움(반성)의 심화

* 저이들도 일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지 않을까. → '나'와 '아시안 젊은 남녀' 간의

동질감을 깨달음.

◆ 화자 : 천박한 호기심을 갖고 아시안 젊은 남녀를 바라보다가,

그러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

◆ 주제 :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과 그에 대한 반성

 

[시상의 흐름(짜임)]

◆ 1 ~ 5행 : 국철에서 아시안 남녀를 보게 됨.

◆ 6 ~ 13행 : '나'의 호기심과 달리 평범한 모습의 그들

◆ 14 ~ 끝 : '나'의 태도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국철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목격한 경험담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들의 편협한 시선과 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화자는 자리에 앉아 아시아 어느 지역에서 온 젊은 남녀의 행동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화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느 한국인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화자는 잠깐이나마 그들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본 자신의 태도가 천박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본다. 강 위에는 깃털 색깔이 다른 새 여러 마리가 보기 좋게 어울려 날고 있다. 이를 보고 화자는 외국인들으 차별적 시각으로 보았던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이러한 화자의 모습은 다문화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 시선의 폭력에 대한 주체의 반성과 성찰

'동승'에서 '나'는 밥벌이(잔무)를 위해 공휴일 오후에 국철을 타고 사무실로 가는 중이다. 이때 화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누는 아시안 젊은 남녀 한 쌍을 발견하고 그들을 바라본다. 이 시에도 역시 주체와 타자 사이의 비대칭적이고 불균등적인 시선이 발생한다. '나'는 그들을 쳐다보지만, 그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내'가 국철을 탄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이 국철을 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저이들이 무엇 하려고 국철을 탔는지 궁금해서 쳐다보'게 한 것이다. 만약 저들이 그 나이 또래의 한국인 남녀였다면, '나'는 그들과 함께 국철을 타고 간다는 것에 '천박한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저들이 아시안 젊은 남녀였기 때문에 화자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물론 하종오의 시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이 시에도 시선의 폭력에 대한 자기반성이 곧 뒤따른다. '문득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 돌렸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만약 이 시가 이러한 자기반성에만 머물렀다면, 범상한 시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자기반성에서 조금 더 멀리 나아간다. 깃털 색깔이 다른 여러 마리 새가 함께 물결을 타는 것처럼 아시안 젊은 남녀와 천연하게 동승하지 못하는 '나'를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일자리로 돌아가는 중일 거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이처럼 반성하는 주체이자 성찰하는 주체이고 공감하는 주체이다.

 

-류찬열, '다문화 시대와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하종오 시를 중심으로', "국제 어문", 국제어문학회, 2008

 

◆ 하종오의 시 경향

자본주의적 합리화와 효율성에 따른 세계화, 개방화의 급물결 속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지켜야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내면 의식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한 모색 내지 노력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관한 한 하종오 시인은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그러한 관계들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자기 나름의 안목으로 구체화하고 심화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태도는 다분히 모더니티 정신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양상만으로 섣불리 그를 반근대주의자라고 단정지어 버려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근대와 근대가 몰고 온 서구적 가치관이 우리의주변 환경 및 그것에 대한 인식에 얼마나 큰 변화를 몰고 왔는지를 잘 알고 있는 자이며, 더불어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거나, 아니면 끝내 물리쳐 버려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해 온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민의 철저함과 진정성은 그의 시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문 형식의 시행들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된다.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의도한 무엇인가를 단정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독자들과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기를 원한다. 그럼으로써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 대해 끊임없이 둘러볼 기회를 부여하곤 한다.

 

[작가소개]

하종오(河鍾吾): 시인

출생 : 1954. 8. 22. 경상북도 의성

경력 : 1999~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83 민요연구회 운영위원

작품 : 도서, 기타

1954년 8월 22일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으며,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했다. 1981년 첫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를 펴낸 이후 20여권의 시집, 동화집 등을 냈다. 1983년 시집 《넋이야 넋이로다》로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고, 2006년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을 받았다.

 

2004년 《반대쪽 천국》을 펴내면서 이주민 문제를 화두로 삼고,[1]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포괄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2] 2009년 《입국자들》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이주민들을 바라본 시를 선보였다.

 

<작품>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1981년 (창비), 《사월에서 오월로》 1984년 (창비)

《넋이야 넋이로다》 1986년 (창비),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1986년 (실천문학사),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1989년 (푸른숲), 《젖은새한마리》 1990년 (푸른숲) -하종오대표시선집, 《정》, 《깨끗한 그리움》, 《님시편(詩篇)》 1994년, 《쥐똥나무 울타리》 1995년 (문학동네), 《사물의 운명》 1997년, 《님》 1999년 (문학동네), 《무언가 찾아올 적엔》 2003년 (창비), 《반대쪽천국》 2004년 (문학동네), 《지옥처럼 낯선》 2006년 (랜덤하우스코리아), 《국경없는공장》 2007년 (삶이보이는창), 《아시아계한국인들》 2007년 (삶이보이는창), 《베드타운》 2008년 (창비), 《입국자들》 2009년 (산지니), 《제국》 2011년 (문학동네), 《남북상징어사전》 2011년 (실천문학사),

<시극집> 《어미와참꽃》1989년 (황토)

<동화>

《도요새》1999년 (문학동네) -어른을 위한 동화, 《누가 아기 석가모니로 태어났을까》 2000년 (문학동네) -불경그림동화, 최달수 그림, 《미래에 오는 미륵불》 2000년 (문학동네) -불경그림동화, 《하늘 무인도》 2002년 (다리미디어) -동화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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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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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윈-윈 박영선 | 작성시간 21.11.06 잘 읽었습니다.
    체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시 새롭게 다가옵니다.
  • 답댓글 작성자황득 김한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1.07 댓글 주심에 감사합니다.
    날마다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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