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삼천리>(1941)-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남성적, 의지적, 상징적
◆ 표현 : 수미쌍관식 구성(주제 의식의 강조와 구성의 완결성)
상징적 심상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비장미)
극도의 절제된 표현으로 동양화를 연상시킴
낯설고 관념적인 한자어를 통해, 심오한 의미와 관념성을 강화시켜 줌.
◆ 중요시어 및 시구 풀이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 화자의 비장한 각오와 결의.
바위가 되고자 하는 것은 2,3행에 나오는 애련과 희로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임.
* 억년 비정의 함묵 → 애련과 희로의 감정을 영원히 버린 채로 입을 다물고
*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 온갖 시련과 고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내밀하게 극복하여,
드디어는 생명까지도 망각하게 되는
초연함을 가지게 됨.(내적인 고행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음)
* 구름, 원뢰
→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속성을 지닌 것으로, '바위'와 대조되는 심상.
바위의 경지에 도달한 화자에게 주어지는 어떤 외부적 자극이나 유혹
*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 소리하지 않는 바위
→ 꿈(소망)이나 스스로의 파멸도 초극하려는 의지
◆ 시적 자아 : 인간적 감정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사람. 바위처럼 굳게 살고자 하는 사람.
현실 속의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사람.
현실 세계 속의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가지고 내면적 단련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
◆ 주제 ⇒ 현실극복과 허무의지
◆ '바위'의 상징성 :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의 표상(굳건한 의지의 결정체)
이념과 의지의 표상으로 "허무(인간 생존의 무의미성) 극복 의지"를 상징함
내적인 고행, 초인간적인 굳건함, 견고에의 집념을 표상함.
온갖 세상사를 잊어 버린 절대 허무와 고독
[시상의 흐름]
◆ 1행 : 자아의 결연한 의지(주제 집약구)
◆ 2∼7행 : 바위의 특성(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
◆ 8∼12행 : 절대적인 초월에의 의지(꿈과 죽음까지도 초월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에서 화자는 애련과 희로의 감정도 거부하고, 어떠한 시련과 고난도 극복하며, 비정의 함묵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이상으로 설정한 바위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제의식과 냉엄한 태도는 시인이 그의 시세계를 통해 한결같이 유지했던 허무의식의 표현이다. 사람의 삶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인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애정, 연민, 기쁨, 슬픔 등의 번민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 해결의 길을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시인 자신의 삶이 그만큼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러한 삶의 허무함을 의지나 신념으로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비정한 단절 속에서 홀로 서려는 의지의 지향점은 완전 무화(無化), 즉 허무이다. 단순한 허무 의식이 아닌 허무함마저도 부정하는 극단의 허무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적멸(寂滅 : 미망의 세계를 영원히 떠난 허허로운 경지)과 비슷하다. 그러나 불교가 해탈의 경지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라면, 청마의 목적은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열렬하고도 비정한 도정에 있다. 그러기에 한국 시사의 우뚝 선 자리에 생명파의 시가 있고 그 주봉이 청마인 셈이다. 꿈꾸더라도 그 꿈마저 버리며, 고통 속에서도 신음하지 않는 극단의 비정함으로 꿋꿋이 나아가는 지향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단순한 허무를 뛰어넘은 인간 생명의 본질이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 시는 연 구분 없이 12행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1행과 12행을 제외하면 나머지 행은 바위의 속성을 열거함으로써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시는 이러한 수미상관적 구성을 통해 시적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작가소개]
유치환[ 柳致環 ]
호 : 청마(靑馬)
출생 – 사망 : 1908년 ~ 1967년
출생지 : 경상남도 통영
직업 : 현대시인
가족관계
-아버지 : 유준수(柳焌秀)
-형 : 유치진(柳致眞)
현대 시인. 경상남도 통영출생.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청마(靑馬). 준수(焌秀)의 8남매 중 둘째아들이며, 극작가 치진(致眞)의 동생이다. 11세까지 외가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豊山中學校)에 입학하였다. 이무렵 형 치진이 중심이 된 동인지 《토성(土聲)》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가세가 기울어 4학년 때 귀국,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
당시 시단을 풍미하던 일본의 무정부주의 자들과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감동하여, 형 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掃除夫)》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였다.
1931년 《문예월간(文藝月刊)》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1937년 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주재하여 5집까지 간행하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 · 〈그리움〉 · 〈일월〉 등 55편이 수록되었다.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 연수현(煙首縣)으로 이주하여, 농장관리인 등에 종사하면서 5년여에 걸쳐 온갖 신산을 맛보고, 광복 직전에 귀국하였다. 이때 만주의 황량한 광야를 배경으로 한 허무의식과 가열한 생의 의지를 쓴 시 〈절도(絶島)〉 · 〈수(首)〉 · 〈절명지(絶命地)〉 등이 제2시집 《생명의 서》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에는 청년 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문학운동을 전개하였고, 6 · 25동란중에는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의 일원으로 보병3사단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보병과 더불어》는 이 무립의 시집이다.
1953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이후에는 줄곧 교직으로 일관하였고, 안의중학교(安義中學校) 교장을 시작으로 하여 경주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를 거쳐 부산남여자 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 교통사고로 죽었다.
40여년에 걸친 그의 시작은 한결같이 남성적 어조로 일관하여 생활과 자연, 애련과 의지 등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세계를 '생명에의 의지', '허무의 의지', '비정의 철학', '신채호적(申采湖的)인 선비기질의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생명의 긍정에서 서정주(徐廷株)와 함께 이른바 '생명파 시인'으로 출반한 그의 시는 범신론적 자연애로 통하는 열애가 그 바탕을 이루며, 그 바탕 위에서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허정(虛靜) · 무위(無爲)의 세계를 추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허무를 강인한 원시적 의지로 초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에 허무의지의 극치인 '바위'와 고고함의 상징인 '나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묘지는 부산직할시 서구 하단동에 있으며, 그의 시비는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공원, 충무 남망공원(南望公園) 등에 세워졌다. 시집으로 《울릉도》 · 《청령일기(蜻蛉日記)》 · 《청마시집》 · 《제9시집》 · 《유치환선집》 ·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미루나무와 남풍》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등이 있고, 수상록으로는 《여루살렘의 닭》과 2권의 수필집,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