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작품♡]시와 해설, (김광섭, 저녁에)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2.07.15|조회수156 목록 댓글 2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겨울날>(1969)-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관조적, 사색적, 미래지향적, 명상적

◆ 표현

* 불교적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인식을 노래함.

*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사색적 어조

*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 선경후정의 구성 방식(별의 모습 - 안타까운 심정)

* 대응 구조(별 하나 - 나, 밝음 - 어둠, 천상 - 지상)

* 마지막 행에서 의문형으로 끝냄으로써 시적 여운을 남기고 간절한 소망을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저렇게 → 별과 화자 사이의 거리감을 표현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별과 나의 관계는 선택적인 관계임.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별과 화자의 관계를 특별한 관계, 친밀한 관계, 의미있는 관계로 만듦.(대구법)

* 밤이 깊을수록 → 평화로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깊이 인식함.(밤은 이별의 시간을 의미함.)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새벽에 별이 흐려지는 것으로, 친밀한 관계가 서서히

소멸하는 상황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늙어서 죽어야 하는 인간의 비극적 숙명의 상황 의미

* 별은 밝음 속에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새벽이 다가오면서 별빛이 흐려지고 둘 사이의 관계가 끝을 맺는 상황으로 인간의

숙명적 비극성을 표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밤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존재인

별은 날이 밝으면 사라지고, 인간은 '어둠 속'이라는 시어가 보여 주듯이 삶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 늙고 죽는 숙명적인 고독을 지니고 살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임.

(대조와 대구법)

* 3연 → 대상과의 인연은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불교의 윤회설에 바탕을 둔 표현으로

미래에 대한 화자의 기대와 희망이 잘 나타나 있고 따뜻한 인간 관계를 회복하길 바라는

화자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친밀한 관계가 소멸한 존재들 사이에서

'정다움'이라는 또 다른 평범한 진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런 '정다움'이 존재하는 한

대비적 존재인 인간('나')과 자연('별')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 제재 : 저녁의 별

◆ 주제 : 친밀한 인간 관계에 대한 소망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성찰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별과 나와의 친밀한 교감

◆ 2연 : 친밀한 관계의 소멸과 인간의 고독

◆ 3연 : 다시 만나고 싶은 소망과 기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현대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미국의 사회학작 데이비드 리스먼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인간 관계의 단절과 고립적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를 소망하고 있으며, 하늘에 무수한 별이 있지만 단 하나의 별과 정다운 관계를 맺고 있는 화자의 모습은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저녁이라는 풍경으로부터 현대인의 고독을 느낀 화자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인간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을 간결한 문체로 표현한 작품이다. 소외와 단절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지만 물질 문명에의 힘이나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 삶으로 인해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운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별'에 투영된 현대인의 모습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의 어느 한 별이 지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화자와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밤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 유독 어느 한 별만을 지켜보고 있는 화자와, 지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화자만을 지켜보고 있는 그 별은 일대일의 친밀한 대면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는 군중 속에서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현대의 거대 조직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단절감, 고립감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다가 밝음이 다가오면 사라지는 별의 모습은 온갖 어둠을 헤치며 살아가다가 홀로 죽어 가는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결국 이 시는 물질 문명에 밀려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운 자화상을 그려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 <저녁에>에 나타난 '저녁'의 이미지

저녁이라는 어둠의 시작이 운명처럼 '나'와 별을 함께 맺어 주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저녁이라는 한 순간의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별 하나와 '나' 하나가 만난다. 이러한 우연, 그러나 절대적인 운명과도 같은 이 마주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이차원(二次元)과 그 절대 거리를 소멸시키는 저녁인 것이다.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이산 김광섭은 오염되어 가는 지상의 문명을 고발한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천상의 별을 노래한 <저녁에>의 시인이기도 하다. 지상과 천상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의 세계에서는 한 울타리 속에 있다. 인간은 땅 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까닭이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영어로 컨시더(consider)라고 하지만 원래의 뜻은 '별을 바라다 본다'라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실제의 바다든 삶의 바다이든 별을 보고 건너갔다. 점성술과 항해술은 근본적으로 하나였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천문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이 세상에서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밤 하늘의 별이요, 마음 속의 시(도덕률)'라는 칸트의 경이(驚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러니까 어둠이 와야 비로소 그 정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를 나를 내려다 본다.'로 시작되는 그 시제(詩題)가 <저녁에>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시의 의미를 더 깊이 따져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해서 <저녁에>의 시를 이끌어가는 언술은 '별(천상)'도 '나(지상)'도 아니다.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라는 언술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별'이다. 나는 '보다'의 목적어로 별의 피사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의 다음 시구에서는 지상의 사람이, 그리고 '나'가 언술의 주체로 바뀌어 있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 별과 사람, 그리고 '내려다 보다'와 '쳐다보다'가 완벽한 대구를 이루며 동시적으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는 달리 언어로 표현할 때는 불가피하게 말을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그 순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저녁에>의 경우도 '별'이 '나'보다 먼저 나와 있다. 즉 별이 먼저 나를 내려다 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시선에 있어서 나는 수동적이다. 첫 행의 경우 시점과 발신자가 별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점의 거리를 결정하는 '이', '그', '저'의 지시대명사를 보면 별의 경우에는 '저렇게 많은 것'이라고 되어 있고, 사람의 경우는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점 거리가 '저렇게(별)'보다 '이렇게(사람)'가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르트르처럼 본다는 것은 대상을 지배하고 정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보고 남이 나를 본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격렬한 싸움인 것이며, 인간의 삶과 존재란 결국 이러한 눈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명제 '타자(他子)는 지옥'이란 말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 그러한 눈싸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정다운 것이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저렇게 많은 별 중에'라고 불렸던 별이 나중에 오면 '이렇게 정다운 별 하나'로 바뀌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저렇게'에서 '이렇게'로 변화하게 만든 그 시점은 누구의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저녁에>라는 시 읽기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답안을 퀴즈 문제처럼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펼쳐보면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시의 제목처럼 '저녁'이라는 그 시간이다. 별이 나를 내려다본 것이나 내가 별을 쳐다본 것이나 그 이전에 저녁이 먼저 있었다. 저녁이 없었다면, 어둠이라는 그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내려다보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진다.

 

저녁이란 어둠이 시작이 운명처럼 나와 별을 함께 맺어주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저녁이라는 한 순간의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별 하나와 나 하나가 만난다. 이러한 우연, 그러나 절대적인 운명과도 같은 이 마주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이차원과 그 절대 거리를 소멸시키는 저녁인 것이다.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둘째 연의 시구이다. 만남은 곧 헤어짐이라는 회자 정리(會者定離)의 그 진부한 주제가 여전히 이 시에서 시효를 상실하지 않고 우리 가슴을 치는 것은 그것이 시적 패러독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에서 볼 수 있듯이 빛과 어둠의 정반대 되는 것이 그 사라짐의 명제 속에 교차되어 있다. 그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이면서도 사라지는 시간과 장소는 빛과 어둠이라는 합칠 수 없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저녁의 시간이 빛과 어둠으로 다시 분리될 때 나와 별은 사라진다. 이것이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이다.

 

그러나 김광섭은 한국의 시인인 것이다. 사람들은 멀고 먼 하늘에 자신의 별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고 믿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천문학의 별을 배우기 전에 멍석 위에서 별 하나 나 하나를 외우던 한국의 어린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별의 패러독스는 '타자(他子)는 지옥이다.'가 아니라 '타자(他子)는 정(情)이다.'로 변한다. 그리고 그 한국인은 윤회의 길고 긴 시간의 순환 속에서 다시 만나는 또 하나의 저녁을 기다린다. 그것이 한국인의 가슴 속에 그렇게도 오래오래 남아 있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마지막 그 시구이다. 그 시구가 화가와 만나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극작가와 만나면 한편의 드라마가, 그리고 춤추는 무희와 만나면 노래와 춤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만나서는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만남이 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의 하나와 마주보듯이 박모(薄募)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상의 별 하나와 만난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도 모르는 운명의 만남을 …….

 

그리고 그렇게나 먼 빛과 어둠의 두 세계로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시구를 잊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만나랴'라는 의문형으로 끝나 있지만 그러한 시적 상상력이 존재하는 한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몇 광년의 먼 거리를 소멸시키고 영원히 마주보는 시선을 어떤 시간도 멸하지 못한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수직적 공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싸는 저녁의 시간……. 그 순간의 만남을 영원한 순환의 시선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시가 맡은 소중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이어령교수>

 

 

[작가소개]

호 : 이산(怡山)

출생 – 사망 : 1904년 ~ 1977년

성격 : 시인, 독립운동가

출신지 : 함경북도 경성군

성별 : 남

본관 : 전주(全州)

저서(작품) : 김광섭시전집, 개 있는 풍경, 시원, 고독, 동경, 초추

대표관직(경력) : 건국훈장 애국장(1990년)

<정의>

광복 이후 『마음』,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시전집』 등을 저술한 시인.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이산(怡山). 함경북도 경성 출신. 아버지는 김인준(金寅濬)이며, 3남3녀 중 장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같은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적을 둔 이헌구(李軒求)와 친교를 맺었으며, 이어 정인섭(鄭寅燮)과 알게 되어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하였다. 1932년 대학졸업 후 귀국하여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194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自由文學)』지를 발행했다. 그가 문학에 뜻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 이헌구와 교분을 맺으면서부터인데,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의 우리 나라 학생 동창회지인 『R』에 시 「모기장」을 발표했다.

 

1933년 『삼천리(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現代英吉利詩壇)」을 번역, 발표했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동아일보』(1933.10.2.)에 발표했다.

 

이어서 1934년 『문학(文學)』에 「수필문학고(隨筆文學考)」, 『조선문학(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朝鮮的關心)」을 발표하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詩苑)』에 「고독(孤獨)」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읊은 것이었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憧憬)」·「초추(初秋)」 등이 있는데,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이 배경이 된 것들이었다. 1937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 연극운동에 가담하면서 서항석(徐恒錫)·함대훈(咸大勳)·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 등과 교유했다.

 

1938년 제1시집 『동경(憧憬)』을 간행했다. 광복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해 창작과 단체활동을 병행했다. 이 무렵의 시로는 「속박과 해방」·「민족의 제전」 등이 있는데, 광복의 환희와 민족의식을 표현한 것이었다.

 

한편, 계도적인 민족주의 문학론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경향신문』에 「정치의식과 문학의 기본이념」(1946), 『민주일보』에 「문학의 당면 임무」(1946), 『만세보(萬歲報)』에 「민족문학의 방향」(1947), 『백민(白民)』에 「민족문학을 위하여」(1948)·「민족주의 정신과 문학인의 건국운동」(1949) 등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론(時論)들은 그의 시정신과 동일한 맥락을 이루는 것이었다. 1949년에 간행된 제2시집 『마음』과 1957년에 간행된 제3시집 『해바라기』의 시는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었다.

 

작품 「마음」은 맑은 물과 백조의 조응을 통하여 한 생명의 실상을 읊은 것이고, 「해바라기」는 높은 이념을 해로써 상징하고 민족의 지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후기의 작품들은 1966년에 간행된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년 간행된 『반응(反應)』에 수록되었는데 전자에서는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1960년대의 시대적 비리도 비판하였고, 후자는 사회성을 띤 시들로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의 시편들은 관념이 예술적으로 세련, 승화되어 관조와 각성의 원숙경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지조를 고수한 시인이며, 초기의 작품은 관념적이고 지적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성과 문명의 괴리현상을 서정적으로 심화시킨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 저서로는 『김광섭시전집』(1974)과 번역시 『서정시집(抒情詩集)』(1958)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57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0년 문화공보부예술상, 같은 해 국민훈장모란장, 1974년에는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김광섭론」(김현승, 『창작과 비평』, 1969.봄호)

「김광섭론」(정태용, 『현대문학』, 1967.4.)

[네이버 지식백과] 김광섭 [金珖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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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무공 김낙범 | 작성시간 22.07.15 별과의 만남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황득 김한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16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네요, 주말 여유로움과 함께
    보람된 하루 만드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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