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관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난(蘭), 기타>(1959)-
해설
[개관정리]
◆ 성격 : 관조적, 기구적(祈求的), 사색적, 상징적
◆ 표현 : ㉠ 감정을 절제하여 담담한 어조로 표현함(시적 긴장감)
㉡ 시간의 흐름에 다른 시상의 전개
㉢ 대화가 거리낌없이 지문화되어 있는 구어체 문장
㉣ '하강'의 이미지가 지배적임(비, 눈, 열매의 떨어짐과 관을 내리는 것 등의
하강 이미지가 '슬픔'과 '눈물'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줄 수 있음)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관이 내렸다 → 직접적 서술을 통해, 감정의 개입을 근본적으로 억제함.
*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 슬픔의 극한, 죽은 자에 대한 화자의 사랑의
깊이를 표현.
* 주여 / 용납하옵소서 /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 아우만을 위한 의례적인 행위임 (삶의 시련과 고통을 신앙적으로 극복하고 의지하려는 노력은 엿보이지 않음)
* 하직 → 관을 내린다는 뜻과 이별한다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는 중의적 표현
* 그 후로 → 시상의 전환.
현실과 꿈의 경계선이며 사랑하는 아우를 이제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암시
* 그를 꿈에서 만났다 → 아우와의 이별을 영원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태도
* 형님 → 시 창작의 구체적인 동기가 되는 말
* 전신으로 → 아우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이 강렬하게 드러나 있는 시어
* 이제 네 음성을 / 나만 듣는 여기 → 서로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별개의 세상에
존재함을 나타냄.
* 눈과 비가 오는 세상
→ 이승과 저승의 단절감 및 이질감의 표현.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을 지극히 절제된 목소리로 표현함으로써,
삶의 비극성을 다스릴 줄 아는 원숙한 정신적 자세가 엿보임.
'눈'과 '비'는 아우를 잃은 슬픔과 눈물을 연상하게 해주는 소재임.
*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 단절감, 절망감, 허무함
* 이제, 다만, 여기 등의 부사어
→ 화자와 아우와의 합일할 수 없는 물리적 · 시간적 · 공간적 거리에 대한 강조의
효과를 가지는 시어임. 삶과 죽음의 경계선적 의미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시어임.
* 열매가 떨어지면 /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 이승과 저승의 엄청난 괴리감과 단절감이 표현됨.(상황의 대조)
죽음의 허무함이 있는 이승을 표현한 것이기도 함.(열매로 비유되는
살아있는 생명이 떨어져 죽어도 한순간의 조그만 소리만 날 뿐이라는
사실에서)
◆ 주제 : 생사를 초월한 죽은 아우에 대한 그리움
[시상의 흐름(짜임)]
◆ 1~7행 : 아우의 장례식
◆ 8~14행 : 죽은 아우를 꿈속에서 만남
◆ 15~끝 : 이승과 저승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시인의 초기의 민요조 가락과 향토색 짙은 서정성이 사라진 대신 일상적인 삶의 체험에서 오는 슬픔이 담담하게 그려진 시다. 사랑하는 아우를 잃은 슬픔이 짙게 배어 나오는 이 시에는, 시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인생관이 동시에 드러나 있다.
1~7행까지는 아우의 주검을 땅 속에 묻는 장례식 장면이다. 아우의 육신을 담은 관은 시적 자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땅속으로 내려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의 슬픔이나 애통함을 직접 표현한 구절은 한마디도 없이, 억제된 슬픔의 깊이를 느끼게 할 뿐이다. 8~14행까지는 장례 후, 꿈속에서 아우를 만난 내용이다. 아우의 부름에 혼신의 힘을 다해 대답하지만, 시적 자아의 대답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아우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둘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단절감과 거리감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15~끝행까지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과 단절감을 다시 한 번 담담한 어조로 노래함으로써, 슬픔을 극복하려는 시적자아의 깊은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혈육의 죽음과 매장을 직접 겪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인생의 허무감과 함께 생의 재발견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는 육신의 허망함에 대한 비통과 탄식이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예리한 절제와 극기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우의 죽음 앞에서 그 절망과 슬픔을 이다지도 절제된 음성으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삶의 연륜이 어느 정도 쌓인 중년의 시인이 새롭게 깨닫게 된 삶의 비극성과 그것을 다스릴 줄 아는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시의 중심 이미지]
이 시의 이미지는 모두 '하강적(下降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이 하강적 이미지를 지닌 시어들은 모두 죽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하강적 이미지가 죽음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아래쪽'이 사자(死者)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대지(大地)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관이 내렸다, 밧줄로 달아 내리듯, 하직했다, 눈과 비가 오는 세상,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 등에서 나타나는 하강적 이미지는 모두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적 운동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태에서 안정되고 고정된 상태로의 이행을 암시한다.
[작가소개]
박목월 : 박영종시인, 전 대학교수
출생 : 1915. 경상북도 월성군
사망 : 1978. 3. 24.
가족 : 아들 박동규
데뷔 : 1939년 문예지 '문장’
작품 : 오디오북, 도서
<정의>
해방 이후 『난, 기타』, 『어머니』, 『사력질』 등을 저술한 시인.
<생애 및 활동사항>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상북도 월성(지금의 경주) 출신.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를 졸업하고, 도일(渡日)해서 영화인들과 어울리다가 귀국하였다. 19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47년 한국문필가협회 발족과 더불어 상임위원으로 문학운동에 가담, 문총(文總) 상임위원·청년문학가협회 중앙위원·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총무·공군종군문인단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 간사를 역임하였고 1960년부터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아 1973년 이후까지 계속하였다. 한때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또한, 잡지 『아동』(1946)·『동화』(1947)·『여학생』(1949)·『시문학(詩文學)』(1950∼1951) 등을 편집, 간행하였으며, 1973년부터는 월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을 발행하였다.
처음은 동시를 썼는데 1933년『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되었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지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많은 동시를 썼다.
본격 시인으로는 1939년 9월 『문장(文章)』지에서 정지용(鄭芝溶)에 의하여 「길처럼」·「그것은 연륜(年輪)이다」 등으로 추천을 받았고, 이어서 「산그늘」(1939.12.)·「가을 으스름」(1940.9.)·「연륜(年輪)」(1940. 9.) 등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6년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 등과 3인시집 『청록집(靑鹿集)』을 발행하여 해방 시단에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1930년대 말에 출발하는 그의 초기 시들은 향토적 서정에 민요적 율조가 가미된 짤막한 서정시들로 독특한 전통적 시풍을 이루고 있다. 그의 향토적 서정은 시인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특유의 것이면서도 보편적인 향수의 미감을 아울러 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청록집』·『산도화』 등에서 잘 나타난다.
6·25사변을 겪으면서 이러한 시적 경향도 변하기 시작하여 1959년에 간행된 『난(蘭)·기타』와 1964년의 『청담』에 이르면 현실에 대한 관심들이 시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나 사물의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시의 소재를 가족이나 생활 주변에서 택하여, 담담하고 소박하게 생활사상(生活事象)을 읊고 있다.
1967년에 간행된 장시집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찬미를 노래한 것으로 시인의 기독교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68년의 『경상도의 가랑잎』부터는 현실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소재가 생활 주변에서 역사적·사회적 현실로 확대되었으며,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사념적 관념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1973년의 『사력질(砂礫質)』에서는 사물의 본질이 해명되면서도 냉철한 통찰에 의하여 사물의 본질의 해명에 내재하여 있는 근원적인 한계성과 비극성이 천명되고 있다. 그것은 지상적인 삶이나 존재의 일반적인 한계성과 통하는 의미다.
수필 분야에서도 일가의 경지를 이루어,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행복의 얼굴』(1964) 등이 있으며, 『보랏빛 소묘(素描)』(1959)는 자작시 해설로서 그의 시작 방법과 시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면서도, 애국적인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대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55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1954)로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68년 시집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을, 1969년 『경상도(慶尙道)의 가랑잎』(1968)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우리시의 역사적 연구』(신동욱, 새문사, 1981)
『한국현대시론』(박두진, 일조각, 1977)
『현대시론』(정한모, 민중서관, 1973)
『한국의 현대시』(서정주, 일지사, 1969)
「향수의 미학」(김종길, 『문학과 지성』, 1971년 가을호)
[네이버 지식백과] 박목월 [朴木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