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작품♡]오장환, 성벽(城壁)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3.01.21|조회수432 목록 댓글 0

                                            성벽(城壁)

 

                                                                                   오장환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심처럼 검고

빽빽하거니 그러나 보수(保守)는 진보(進步)를 허락지 않어 뜨거운 물

끼얹고 고춧가루 뿌리든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하도다.

(『시인부락』, 1936. 11)

 

 

[작품해설]

오장환의 과거에 대한 부정은 다시 그 대상이 ‘성벽’으로 이동한다. 앞의 ‘성

씨보’와 마찬가지로 ‘성벽’이란 ‘보수’의 상징이다. 성은 쌓을 때는 그 내부에서

누리고 있는 안온(安穩)한 질서를 영원히 유지하기를 의도한다. 즉 성벽은 변혁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 외래의 서구적

문명이 도전하여 왔을 때, 재래의 무기인 뜨거운 물과 고춧가루로 그들을 물리쳐

보지만, 대세를 거역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성벽의 존재 의의

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한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

키어 면도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할 뿐이다.

 

시인이 이 시를 통해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

하리라는 성벽’의 ‘편협한 야심’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성벽을 통해서 지키고자

하였던 보수벅 세계관, 즉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으로서의 성벽이 지닌 이데올로기

(관념)이다. 그러나 실상 시인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가치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영원불변한 것으로 믿고 막무가내로 저항하려

한 조상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게 저항해 보았자 얻은 것은 식민지 현실일 뿐인

것에 대한 모멸감, 자괴감에 오장환은 극단적인 전통 부정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작가소개]

오장환(吳章煥)

 

1918년 충청북도 보은 출생

1930년 안성보통학교 졸업

1931년 휘문고보 입학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여 등단

1936년 『낭만』, 『시인부락』 동인

1937년 『자오선』 동인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맹원, 월북

 

시집 : 『성벽(城壁)』(1937), 『헌사(獻詞)』(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오장환전집』(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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