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
김영랑
모란이 피기가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어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작품해설]
이 시는 영랑이 남달리 좋아하던 모란을 소재로 하여 한시적(限時的)인 아름다움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비애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모란’은 실재히는 자연의 꽃인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의 꽃이다.
연 구분이 없는 이 시는 작품 속에 전개되는 시간의 추이로 보아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인 첫째 단락은 1~2행이며, 미래인 둘째 단락은 3~4행, 과거인 셋째 단락은 5~10행, 현재의 넷째 단락은 11~12행으로 첫째 단락의 반복이다.
첫째 단락에서 시적 화자는 모란이 필 그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둘째 단락에 이르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모란이 떨어져 다시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셋째 단락은 그가 설움에 잠기게 될 맬의 상황을 증명해 줄 뿐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삶의 구도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오직 모란이 피어있는 순간에만 삶의 보람을 느끼는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모란은 봄과 등가적(等價的)가치로 그의 소망을 표상한다.
그가 추구하는 소망의 세계가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이 모란으로 대유된 어떤 절대적 가치의 미(美)라고 한다면 시적 화자는 모란이 피어 있을 때는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여 보람을 느끼다가, 모란이 지고 말았을 때는 ‘봄을 여윈’-보람을 상실한 허탈감에 빠져 마치 한 해가 다 지나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감성적 유미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의 한 해는 ‘모란이 피어 있는 날’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9.10행에서 볼 수 있듯이 모란이 피어 있는 날을 제외한 그의 나날은 ‘하냥 섭섭해 우는’ 서러움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넷째 단락에 이르러 화자는 모란이 피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기다리는 봄이 다만 ‘슬픔의 봄’이 아닌, ‘찬란한 슬픔의 봄’임을 인식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찬란한 봄’이라는 의미보다 ‘슬픔의 봄’이 강조된 표현이라면, 표면적으로는 화자가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기대와 희망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란을 잃은 설움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란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비실재적 세계관의 소유자인 화자가 한 해를 온통 설움 속에서 살아갈지라도 그의 봄은 결코 절망뿐인 ‘슬픔의 봄’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봄은 또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모란은 또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슬픔은 다만 모순 형용의 ‘찬란한 슬픔’으로 언제까지 난 그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뿐이다.
모란이 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설움에 잠겨 있는 화자의 태도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 마음’의 세계를 한층 더 내밀화 시키는 것으로, 영랑으로 하여금 외부 사물과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취하지 못한 시 세계만을 펼쳐 보이게 하였으며, 결국 그의 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소개]
김영랑(金永郞)
본명 : 김윤식(金允植)
1903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
1915년 강진보통학교 졸업
1917년 휘문의숙 입학
1919년 3.1운동 직후 6개월간 옥고
1920년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 입학
1922년 아오야마학원 영문과 진학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49년 공부처 출판국장
1950년 사망
시집 : 『영랑시집』(1935), 『영랑시선』(1949), 『영랑시선』(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