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
이상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
듯한생각이 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
이길래 쫓아나가보니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들이깨끗이씩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 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 사랑인줄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어휘풀이]
-역사 : 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공사
-목도 : 두 사람 이상이 짝이 되어,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얽어맨 밧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작품해설]
이 시는 시인 특유의 알레고리 수법을 통해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룸이라는 표면적 주제 속에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를 감추고 싶은 욕망이라는 심층적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편에서 제시되는 ‘커다란 돌’과 ‘어떤 돌’, 그리고 나의 관계를 바로 첫째 단락인 ‘작문’에서 나타나는 ‘그대’와 ‘나’의 관계를 통해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시인의 전유물이다시피한 자아 분열 현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어도,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 분열의 형식적 반영물이라 할 수 있는 알레고리 수법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다.
먼저 첫째 단락에서 화자는 ‘커다란 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셋째 단락의 ‘사랑하던 그대’를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그 돌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은 ‘그대’가 험난한 세파(世波)에 놓여져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단락의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라는 구절은 인연이 아무런 예고없이 갑작스레 떠났음을 뜻한다.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는 ‘그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음을 알려 준다. 셋째 단락의 ‘작문’은 이시를 해석하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에서 ‘커다란 돌’이 ‘그대’를,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에서 ‘어떤 돌’이 ‘그대’에게 생긴 새로운 애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화자가, 떠난 연인에 대해 갖는 그리움의 마음을 자신의 연적(戀敵)에게 행여 들켜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은 것으로 표출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들통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화자는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다며 자신의 내면을 감추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시는 겉으로는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마지막 단락을 고려해 보면 자신의 내면 세계를 감추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자폐적 의식 세계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소개]
이상(李箱)
본명 :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 출생
1924년 보성고보 졸업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1930년 『조선』에 소설 「12월 12일」을 발표
1931년 조선 미전(朝鮮美展)에서 「자화상」 입선
1934년 구인회에 가입
1936년 동경행
1937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경에 체포, 감금됨
1937년 4월 17일 동경 제대 부속 병원에서 사망
시집 : 『이상선집』(1949), 『이상시전작집』(1978), 『이상시전집』(1989)